12개 키워드로 읽는 이슬람, 이슬람 문화
이종화 명지대·아세아신학대 강사
9. 이슬람에서의 죽음과 장례
이슬람에서의 죽음이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어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본다. 즉, 내세는 이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차원적 삶의 양태가 보장되는 곳이다.
이처럼 이슬람교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의 매듭이고, 새롭고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이다. 따라서 죽은 자를 화장하는 경우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고 보아 매장하여 무덤이라는 영혼의 거주공간을 만들어 주도록 가르친다. 나아가 영혼이 분리된 이후에도 육체와 영혼간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그후로도 상당기간 지속된다고 보기 때문에 사체(死體)에 대한 손상이나 무덤 위를 밟고 다니는 행위는 금기시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슬람사회에서의 장례의 특징은 빠른 매장(보통 24시간 이내), 간단하고 엄숙한 상례(喪禮), 내세에 대한 강한 믿음 등으로 규정된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자는 세정의식을 행하고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한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샤하다’(신앙고백)를 낭송한다. 그럴 만한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샤하다’를 낭송하여 들을 수 있게 한다.
사자(死者)는 얼굴이나 머리를 메카로 향하게 한 다음 우선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한다. 발목을 묶고 두 손은 가슴 위에 놓는다. 가족이나 ‘무가실’(장의사)이 사체를 향료를 넣은 비눗물로 세정한 후 염(殮)을 한다. 이때 남편이 아내의 시신을 혹은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 고인의 머리털과 체모를 깎는 풍습이 일반적이다. 그런 다음 솜으로 입과 귀·코 등을 막으며 염습을 하고 하얀 무명천이나 자루를 이용해 한 겹 또는 여러 겹으로 둘러싼다. 이때는 하나의 천을 사용하며 천을 서로 연결해 쓰지 않는다. 흰색이나 초록색 수의를 입히기도 한다.
임종 순간에는 통곡으로 애도가 시작된다. 죽음을 알리기 위해 즉시 부고를 하되, 큰 소리로 울거나 비탄에 젖어 울부짖거나 뺨을 때리고 옷을 찢는 등의 행위는 이슬람 이전의 관습으로 금기시된다. 다만 조용히 흐느끼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장례 절차는 아침에 시신(屍身)이 집을 나설 때 모든 친지와 이웃이 상여꾼이 되어 모스크까지 간다. 가까운 모스크에서 홀수 열을 만들어 보통 낮예배에 이어 장례예배를 마친 다음 장지로 향한다. 상여꾼을 별도로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것은 강력한 사회연대 의식의 표현이다. 영구행렬의 맨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샤하다’를 읊으며 걸어가고 그 뒤로 죽은 사람의 친구들과 초대된 사람들이 따르며 그 뒤에 까리(꾸란 독경사)들이 장례와 관련된 꾸란 구절들을 낭송하며 따라가고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들과 관 그리고 곡하는 여자들이 뒤를 따른다.
시신이 도착할 때가 되면 이미 무덤은 매장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시신은 관 없이 매장한다. 사람 키 높이로 비교적 깊고 넓게 판 묘실에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안치하고, 하얀 천으로 싼 시신 위에는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상태에서 공간을 두고 그 위를 큰 돌이나 석판으로 덮는다. 그리고는 흙을 다져 봉분 없이 지표면보다 약간 높게 평분을 만들고 표식을 한다. 비문을 세우기도 하는데, 여자의 경우 남편의 이름 대신 친정 아버지의 이름을 표시한다. 그런 다음 장례행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묘지 위의 흙을 어루만지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풍습은 내세에서 영혼과 함께 육신도 부활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묘실은 3~4명을 매장할 정도로 넓게 파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 한 무덤에 또 다른 가족을 매장하는 복장(復葬) 관습 때문일 것이다. 묘소에 집을 짓고 비석을 세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는데, 후일 아랍 이외의 지방에서 왕묘나 성자들의 묘소에 대규모 묘당을 짓는 유행이 생겨났다.
장례식 당일에는 고인의 집에서 일절 음식을 만들지도, 대접하지도 않는다. 음식은 모두 동네 사람들이 분담하여 만들어 온다. 장례후 첫 3일간 밤새 꾸란을 낭송하는 관습이 일반적이고, 지역에 따라 3일째, 40일째, 1년째 가족들이 고인의 추모집회나 기도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매장후 3일째 되는 날 무덤에 가서 꾸란을 외우는 추모의식을 갖기도 한다.
다음날은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무덤을 방문하고 그 음식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추모의식을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는 장례후 하루가 되면 영혼은 육체를 완전히 떠나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대기 장소로 이동하지만, 처음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의 무덤으로 되돌아온다는 민간신앙 때문이다. 그 영혼들은 주로 금요일 오후예배 이후 무덤으로 돌아와 육체에 접목돼 밤새 지내다 일출과 함께 돌아간다고 믿고 있다.
통상 장례식후 40일간 추모의례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된다. 유족들은 화려한 차림을 피하면서 주로 금요일에 가족과 친지가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꾸란을 독경하는 주기적인 추모의식을 행한다. 1주기가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은 근신하는 자세로 경건하고 검소한 일상을 보낸다. 추모 기간 동안 집에서 음주가무는 물론 축제, 결혼식 같은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은 유보되며 붉은색 옷이나 진한 화장, 천박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1주기 추모식을 치름으로써 고인을 위한 일련의 통과의례는 끝난다.
10. 이슬람 세계의 축제문화
이슬람 세계의 축제와 명절은 아랍 이슬람권이나 비아랍 이슬람권, 순니나 쉬아 등의 종파나 정파에 관계없이 모두 이슬람력에 따라 정해진다. 나라마다 고유의 국경일이 있으나 모든 무슬림들이 함께하는 휴일과 명절로는 금요일의 집단예배일, 이슬람력 9월 라마단월의 단식이 끝난 후인 10월1일에 시작되는 단식을 깨뜨리는 축제인‘이들 피트르’ 축제, 그리고 이슬람력 12월 성지순례를 끝내고 양을 희생시켜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는 축제인 ‘이들 아드하’ 축제가 있다. 특히 위의 두 축제는 종교적 의무의 수행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무슬림들의 사회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피트르’ 축제는 이슬람의 5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단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달의 한달간을 종교적 의무의 수행을 위해 단식을 행한다. 라마단 성월의 단식이 끝나면 3일 간의 명절이 이어지는데, 이 축제가 바로 단식을 마치는 것을 축하하는 ‘이들 피트르’이다.
축제 첫날 무슬림들은 목욕재계하고 가장 좋은 외출복을 찾아 입고 아침 일찍 가까운 모스크로 향한다. 축제 예배에서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준비한 성찬을 들며 단식을 마무리한다. 이 기간중 친척과 친지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선물을 교환하는 방식은 우리의 명절과 너무도 흡사하다. 또 이때 대규모의 귀성이 이루어지고 조상의 묘를 찾아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모든 무슬림은 이 라마단달에 평상시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며 종교적 수행을 게을리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단식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또 이슬람으로 맺어진 공동의 유대감과 결속력을 느끼게 된다.‘이들 아드하’ 축제는 이슬람의 한 기둥인 성지순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지순례는 경제적 능력과 신체적으로 건강한 무슬림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성지순례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하람’ 성원에 가서 순례 의식을 행함을 말한다. 성지순례는 이슬람력으로 10월부터 12월10일까지 행해지는데 실제 의식은 12월8~10일 이루어진다. 이 기간 외에 행하는 성지순례는 ‘우무라’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의무사항이 아닌 자발적인 종교행위이다. 성지순례를 통하여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은 형제애와 평등사상의 실현을 목격하게 된다. 각 국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창조주의 부름에 응하여 성지순례에 나선 무슬림들은 같은 색깔과 같은 형태의 의복을 입고 같은 규정, 같은 예식, 같은 시간, 같은 목적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 기간에는 빈부의 구별, 상하의 구별, 지위의 구별 없는 보편성과 평등사상이 고취되며 서로를 함께 느끼는 형제애가 조성된다.
성지순례달인 핫즈달 10일에 순례객은 메카에서 그리고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은 가정에서 양이나 다른 동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희생시키게 된다. 이 날을 ‘이들 아드하’라 하며 무슬림들에게 가장 큰 축제의 날이 된다. 이 축제를 통해 무슬림들은 형제애와 공동체적 연대감, 평등사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슬람권의 양 축제는 종교적, 사회적인 면에서 이슬람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라마단월의 단식기간을 맞이하여 대부분의 관공서나 직장의 근무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생산량도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가족과 친척들 간의 빈번한 왕래와 식사로 인해 소비는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소비와 생산의 불균형이 물가상승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른 물가는 라마단월이 끝난 후 예전의 물가로 다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상승한 상태로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라마단달의 물가상승률이 이슬람국가에서의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척도다.
‘이들 아드하’ 축제는 성지순례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한 희생의 재물로 양을 잡아 바친 것을 본받아 모든 성인 남자 무슬림들은 각자 양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국가에서 축제에 소요되는 양의 수는 실로 엄청나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축제를 통하여 농촌경제는 큰 활력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매년 한차례에 걸쳐 도시의 돈이 농촌으로 유입되며, 농촌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1년간의 경제생활을 계획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경제적 교류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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