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쉽은 한 편으로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리더들은 영향력을 얻는 출처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리더쉽을 ‘리더의 영향력’이라고 할 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얻는가 하는 부분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장에서 살펴본 대로 리더의 비전의 출처가 다르듯이 영향력의 출처 역시 다릅니다. 세상적인 출처가 있을 수 있으며, 성경적인 출처가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영향력을 얻는 출처를 다루겠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영향력의 부당한 출처와 참된 출처를 그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부당한 출처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영향력의 부당한 출처는 세 가지 이상입니다. 다만 이제부터 소개할 세 가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위”가 영향력의 출처가 된 경우입니다. 지위가 영향력의 근원이 된 경우를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리더쉽은 지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서 한 세대만 앞선 세대만 해도 지위가 영향력의 출처가 된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란 지위만 가지고 있어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장관, 판사란 지위만 가지고 있어도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위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지위 자체가 영향력의 출처가 되면 지위가 남용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위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위를 얻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지위를 얻으려고 애를 쓰는 배경에는 보통 개인적인 야망이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야망 외에 사람들의 평가, 성공에 대한 자부심, 허영심이 토대가 보통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들이 토대가 되어 지위를 얻기를 힘쓰면 나타나는 특징이 인본주의입니다. 지위를 얻으려고 할 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노력이나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다루어지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알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지위만 얻어본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런 사람이 지위를 얻으면 정말 큰 일입니다. 이들이 리더가 되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직분을 얻으면 모두 다 함께 죽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함께 죽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슬픈 사실이지만 엉뚱한 이유로 직책을 구해 리더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 조직과 교회에도 숱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역 규모가 곧 자존심이다. 오스왈드 샌더스가 제기한 대로 사람이 직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책이 사람을 구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 교회의 경우, 장로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뇌물을 쓴다는 말을 들을 적도 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적 리더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지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영적 리더쉽은 성령의 사역과 성품에 근거한다. 즉 인도하시고 능력주시는 성령의 임재가 없다면 리더는 직위와 상관없이 영적 권위를 얻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영적 권세가 주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향력은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둘째, “권세”가 ‘영향력의 출처’가 된 경우입니다. 마오쩌뚱은 힘이 총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신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가 숭배하는 공산주의를 신봉하기 위한 전쟁에 몰아 넣어 희생시키기도 하였으며 백성들을 총칼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 시절을 보내며 권세가 영향력의 출처가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지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한 때 불같이 호령하며 나라를 다스렸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영향력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영향력은 권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 구(舊)소련연방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나라의 리더쉽에 따르지 않자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위와 같은 그릇된 자세가 교회 내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말입니다.
영적 독재야말로 가장 폭압적일 수 있다. 힘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반항을 불러오게 돼 있다. 내 방법만 옳다는 식의 접근은 기업체는 물론 교회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력 전략을 쓰는 목사들은 성질이 불같아 자기 리더쉽에 따르는 교인들에게는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면 불끈 화를 내며 감히 대든다고 질책한다. 설교 강단이 선거 유세장이나 되는 듯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목사들도 있다. 국회에 법안을 통과시키는 사람처럼 영향력 있는 교인들의 지지를 얻으려 로비 활동을 벌이는 리더들도 있다. 자기를 험담하는 교인은 목자가 필요한 양이 아니라 늑대라며 배척할 정도로 생각이 비뚤어진 목사도 있다. 교인들을 윽박지르며 복종을 강요하는 목사들은 결국 텅 빈자리에다 대고 설교하거나 구직 광고를 내거나 둘 중 하나의 신세가 된다. 그런 사태가 벌어져도 여전히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를 따르지 않는다며 고집스레 교인들만 탓하는 목사들이 있으니 더욱 기막힌 일이다.
헨리의 말은 권세가 리더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 직위나 직책은 파우어(Power) 즉 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직위에는 힘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힘이 영향력은 아니라는 것이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주장입니다. 직책에 존재하는 힘은 남용될 소지가 농후합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남용된 특징이 바로 ‘하나님을 자기 편 삼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내 지도자들 즉 목사나 장로에게서 이런 특징이 나타날 수 있는데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들 편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들은 자기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고 ale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세가 남용된 극명한 예입니다.
리더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리는 여호수아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리더 중의 리더였습니다. 여호수아 5장 13절부터 1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많은 신학자들은 위 구절에서 등장하는 군대장관을 성육신 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로 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나타나자 그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당신은 우리편입니까? 아니면 적군 편입니까?”라는 뜻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이 대답은 “둘 다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편도 아니고, 원수들의 편도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군대장관은 “너희들 편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장관으로 여기에 왔노라. 너를 도와 이기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을 주도하려고 왔노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 앞에 여호수아는 그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말하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군대장관의 말을 따라 신발을 벗고 군대장관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리더로서의 매우 중요한 자세를 만납니다. 즉 자신이 심부름꾼인 것을 알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앞에 납작 엎드리는 자세입니다. “종이 듣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여기서 리더쉽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자기 편 삼으려할 때 권력을 남용하게 되어지며 영향력 마저 나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아닙니다.
셋째, “성격”이 ‘영향력의 출처’가 된 경우입니다. 부당한 출처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어느 교수님이 계셨는데 성품이 너무 좋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곁에 있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꾸만 가까이 하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보고싶고, 가까이 하고 싶었습니다. 이상하게 그분만 만나면 편합니다.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는 분입니다. 이처럼 어떤 분은 성격상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카리스마적인 요소가 있어 사람들을 휘어잡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따르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것이 성서적 영향력의 출처는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끄는 힘이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영향력의 출처를 삼으면 하나님과는 무관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해 가는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꼴이 됩니다. 영적인 출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서적 리더쉽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서적 영향력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지금까지 부당한 영향력의 출처를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참된 영향력의 출처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뒷받침”이 ‘영향력의 출처’가 된 경우입니다.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출처는 “하나님의 뒷받침”입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말입니다.
영적 리더의 정당성을 가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나님의 인증이다. 하나님이 진정한 영적 리더로 인정하신 사람들의 예는 성경과 역사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인증”은 하나님의 뒷받침을 의미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진정한 리더 중 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인도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거역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광야를 통과한 사람입니다. 리더 중의 리더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디에서 그런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십만 명도 아니고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인도할 수 있는 영향력의 출처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모세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뒷받침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리더로서의 자질이 풍성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사람입니다. 우선 모세는 눌변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사회에서나 교회 내에서 리더에게는 커뮤니케이션(Communacation)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모세가 가장 먼저 핑계거리를 찾을 때 언변을 내세웠던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눌변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성격이 매우 급했습니다. 그가 40세 때 히브리인들을 구출하려고 했을 때나 반석에서 물을 낼 때 그랬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세는 자신의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를 혼자 다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장인에 의해서 중간 리더들이 세워질 때까지 그렇게 사역을 했습니다. 리더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살인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도망자로 수십 년을 살면서 자신감을 잃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리더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그 큰 영향력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왔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 전반부와 민수기 12장 6절부터 8절입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
보십시오. 모세의 리더쉽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왔습니다. 모세의 영향력의 출처는 하나님과의 사랑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200만 명을 수십 년 동안 이끈 영향력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함께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리더를 따르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 즉 성서적인 영향력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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