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당신의 아이를 칭찬하는 방법
지은이: 세키네 마사아키
제4장 칭찬할 때 배려해야 할 것
1편 함께 달린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잘 살펴 칭찬하는 것
5. 베푸는 행복
누군가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면 가여운 마음이 들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도움을 주게 된다.
재해를 겪은 사람들, 불운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적으나마 위로의 금품을 전달한다.
그러면 자신이 선행을 했다는 작은 만족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 일이 있다.
나름대로 정성껏 도왔는데 상대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변변히 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개의 사람들은'그렇게 도와줬는데......신세진 걸 모르다니......'
하면서 섭섭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섭섭한 마음을 갖는 것은 감사의 인사를 받고 싶거나
선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학생들이 잘 따라주지 않거나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이 있다.
또 도움을 줬는데도 학생들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일도 있다.
아니,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생기기조차 한다.
그럴 때면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가르치려 했던 내가 바보야.'라든가
'부모의 마음을 자식들이 모르듯이 교사의 마음을 학생들이 알 리가 있겠어?'
하는 푸념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런 푸념을 내뱉는 것은 결코 좋은 자세가 아니다.
마음이 빈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푸념을 학생들에게 직접 한다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정도 도와주고 은혜가 어쩌고저쩌고 한다면
차라리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게 낫겠다."
"내가 언제 도와 달라고 매달렸나 뭘!"
인간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내가 그렇게 해줬는데
하고 푸념을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 해줬으니 감사하다는 말이 있겠지.
그렇게 도왔으니 무언가 보답이 있겠지 하고 바라면 그것은 이미 보시가 아니다.
대가를 바라면 인간관계가 무너지게 된다.
함께 달려 줄 수 있으면 기쁜 것이다.
도움을 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며
상대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보시의 마음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나는 그 선생님에게 은혜를 입었어.'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도록
알게 모르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보시가 아니다.
그런 교사는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서 도움을 준 것이다.
학생이 스스로 교사의 은혜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좋다기보다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 자신이 나서서 학생에게 "내 은혜를 조금이라도 느껴야 해."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은혜는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은혜의 보답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내가 그렇게 해줬는데 하는
푸념이 터져나오지 않는 범위내에서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
일도 학생을 돕는 것도 기쁨에 넘쳐서 해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면 학생에게 감사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