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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arseillaise`와 함께 하는 `Casablanca`

Joyfule 2006. 12. 12. 01:13
'La Marseillaise'와 함께 하는 'Casablanca'
 
 
과연 우리가 이제껏 치부해 온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릇 우리가 줄곧 인식해 온 '사랑'이란 기실, 사랑이 아니라
한낱 이기적인 소유욕과 편집(偏執)의 발로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그 '사랑하는 이'조차 과감히 떠나보낼 수 있는
희생적 관용과 체념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가장 위대한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 걸작으로 꼽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La Marseillaise -Mireille Mathieu  

 
1943년 처음 개봉된 이후
지금껏 수많은 극장에서 리바이벌되었고
TV에서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빈번히 방영되었음에도
카사블랑카'의 인기는 왜 아직도 식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보면 볼수록 더욱 깊게 빠져들 수 밖에는 없는 것일까?
  
 
O.K. Rick"이라는 사인(sign) 장면
.
명장 마이클 커티스는
그러한 '보기(Bogie : 험프리 보가트의 애칭)'의 강렬한 흡인력을
영화초반부터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유도해 내고 있다.

바로, 릭(Rick)이 힘찬 필치(筆致)로 "O.K. Rick"이라고
사인하는 모습의 '클로즈 업(Close Up)' 장면이 그것이다.
이 순간부터 관객은, 보가트의 시선으로, 보가트와 거의 완전히
동화(同化)된 상태로 영화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AFI 선정,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에 '시민 케인' 다음 순위로 랭크(rank)되다.
 
1998년 미국 영화 협회(AFI)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들로서
'시민 케인(Citizen Kane)' 다음으로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꼽았다.
그러나 만일 AFI의 심사위원들이 아닌, 일반 영화 애호가들을
상대로 투표를 실시했다고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시민 케인'이, 천재적인 영화작가 오손 웰즈의 탁월한 창의력이 빛나는
위대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은
'카사블랑카'가 지니고 있는, 한 마디로는 도저히 형언키 힘든 독보적인
'컬트적 매력', 즉, 아무리 봐도 결코 식상하게 만들지 않고,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감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고유의 미덕을 결코 능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1988년 미국 상원(上院)은, 귀중한 문화자산인 명작 영화필름들의 영구적 보존을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1000편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25편의 보존처리 작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카사블랑카'는 '0 순위'로 채택되었다.
 


La Marseillaise를 선창(先唱)하는 빅터 라즐로(폴 헨리드 粉)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담고 있는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seillaise).
2차대전 당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자유 프랑스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미국인들도 다 함께 기립자세로 이 노래를 제창(齊)했다.
 

 
 
 
"We'll always have Paris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의 추억이 있잖아!)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관용'의 미학적 극치를 보여준  ' 카사블랑카 '에서
사랑했던 여인 일자 를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 떠나보내며 릭 이 남긴 말이다. 

"오늘 밤에 당신을 만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일자 에게 릭이 던지는 대사
"I never make plans that far ahead."(그렇게 먼 미래는 알 수 없어.)

포성이 울리던 파리에서 릭이 일자에게 와인으로 건배를 제의하며 하던 말인
"Here's looking at you kid!"(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그리고 라스트 신에서 루이 에게 릭이 던진 말 
"I think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역시 압권이다.  이 세상 그 어떤 詩 못지 않은
 

 

 

 




겉으로는 모든 일에 있어 엄격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 속 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인정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에게는 언제나 관용의 미덕을 잃지 않았던
릭 블레인(Rick Blaine)

그는 일견, 원칙주의자이자,
자신의 일에만 몰입하려 드는 냉정한 남자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묵과하지 않는 사나이의 혼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남자가 추구하는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에는
반드시 '사나이다움(manliness)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은 때로, 과감한 결단을 요하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정'이 됐든, '이념'이 됐든, 아니면 '사랑'이 됐든

 
영원한 베아트리체, 잉그리드 버그만을 추억하며



Charles Boyer & Ingrid Bergman In Gaslight

 이 영화 '가스등(Gaslight)'은
1944년에 MGM(Metro-Goldwyn-Mayer)이 제작한 흑백영화다.

이 영화는 안개가 짙게 깔린 음습한 도시 런던을 무대로
막대한 상속재산을 노리고 아내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탐욕과 이상심리를 추적해 나가는 고전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다.

여주인공 폴라(Ingrid Bergman)의 남편인 그레고리(Charles Boyer)는
기실 그녀의 숙모를 죽인 살해범이자 보석도둑에 불과한 자이지만,
처음엔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폴라에게로 귀속될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던 비열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숙모를 살해한 이후, 이미 짜놓은 완전범죄의
시나리오대로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 나가기 시작한다

 아내인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유산을 가로채겠다는 사악한 음모의 발로였던 것이다.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거의 패닉(panic)상태나
다름없는 극도의 불안심리에 매몰되면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여인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냄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생애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아나
(처녀성과 사냥의 수호신)와도 같은 청초함의 화신으로 불리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자신의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정열적이고
도발적인 여인으로 살다 갔다는 점이다.

'카사블랑카'의 대성공 이후 '누구를 위하여 鐘은 울리나'
'성(聖) 메리의 종(鐘)', '가스등' 등의 연이은 빅히트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그녀는, 1948년 우연히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인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감독한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감독의 심오한 지성과 격조 높은 창의력에 대한 외경의 마음은
곧 그에 대한 흠모의 감정으로 표면화되었고, 이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열은 결국 그를 만나기 위해 이역만리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만드는 결정적 단초가 된다.

7년간의 스캔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유부남인 한 이탈리아 감독과 불륜에 빠진 그녀에 대해
세계의 전 언론은 신랄한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50년 2월 로셀리니의 아들을 낳는다.

곧이어 미국의 상원의원 에드윈 존슨은
"버그만은 헐리우드의 타락의 마녀다!"라고
외치며 공개적인 비난을 본격화한다.

이 사건은 잉그리드 버그만 스스로가 
나다니엘 호오돈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그녀의 실제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제작,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감행함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세기의 스캔들이었던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그녀의 영혼을 옥죄던
'마녀사냥식 헤스터 플린의 여론재판'은 그들 사랑의 진정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인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게 되나, 로셀리니의 이혼을
결코 허용치 않았던 보수적인 이탈리아 정부와 여론 및 사법부의
단호한 입장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결국 결별의 고배를 마시고야 만다.


Ingrid Bergman & Humphrey Bogart In Casablanca


(대포 소리인가요? 아니면 제 가슴이 뛰는 소리인가요?)
"Was that cannot fire, or is it my heart pounding?

이는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자신들 앞에 예정된 이별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일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릭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아무 말도 그에게 해주지 못하는 애절한 심리를  묘사한 명대사다.

하지만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찬연한 청초함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당돌하기까지 한 도발의 용기는 대체 어디서 솟아나온 정열의 분출이었을까?

청초함과 도발적 정열은 결국 극과 극에선 서로 통할 수 밖엔 없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역설의 제시인가? 그렇다면 이는 '러셀의 역설' 이후
가장 흥미로운 역설의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를 '버그만의 역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쨌든 그녀는 세상 남성들에게 있어 적어도 한번 쯤은 상사병에 버금가는
열병을 치르게 하기에 충분한, 영원한 '베아트리체(Beatrice)'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