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5685

목련에 기대어 - 고영민

목련에 기대어 - 고영민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말할 수도 없이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고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검게 져내리는가

매화꽃 - 천상병

매화꽃 - 천상병뜰에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옛날의 시인들이매화꽃 시를 많이 읊었으니나도 한 편 끌까 합니다하얀 꽃송이가 하도 매력이 있어보기만 하여서는 안 되겠기에매화꽃과 친구가 되고 싶구나!지금은 92년 4월 30일인데봄을 매화꽃 혼자서만끽하고 있는가 싶구나!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천사와도 같구나!오래 꽃피어서 나를 달래다오

시편 42편 1 ~ 5

시편 42편 1 ~ 5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봄에 앓는 病 - 이수익

봄에 앓는 病 - 이수익 모진 마음으로 참고 너를 기다릴 때는괜찮았느니라.눈물이 뜨겁듯이내 마음도 뜨거워서엄동설한 찬바람에도 나는추위를 모르고 지냈느니라.오로지우리들의 해후만을 기다리면서... ...늦게 서야 病이 오는구나그토록 기다리던 너는 눈부신 꽃으로 現身하여지금나의 사방에 가득했는 데아아 이 즐거운 시절나는 누워서지난 겨울의 아픔을 병으로 앓고 있노라.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 정 호 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책과의 여행 - 김현승

책과의 여행 - 김현승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러이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 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城)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영혼의 무덤들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 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

지나간다 - 천양희

지나간다 -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인생의 절정에서 겸손을 구하는 기도 - 피터 마샬(Peter Marshall)

인생의 절정에서 겸손을 구하는 기도 - 피터 마샬(Peter Marshall) 미국의 목사 주님,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저는 주님을 잊곤 합니다.반면, 일이 안 풀릴 때는 삐뚤어진 아이처럼 주님께 불평합니다. 성공은 제 공이고 실패는 주님 탓인 것처럼 행동합니다.두려움이 아침 안개처럼 걷히고 나면 저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고 제게 있는 물질과 인력이면만사를 해결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태양이 비칠 때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그래야 폭풍과 어둠을 잊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저를 인정하고 칭찬할 때저에게는 주님이 더욱 필요합니다.그래야 제 마음이 부풀지 않습니다.오 하나님, 어리석고 성공에 눈 먼, 믿음이 적은 저를 용서하소서.성공할 때조차 저의 주님이 되어 주소서.자만심에서 구..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어릴 땐 그랬지요 나이 든다는 것이 높은 벼슬인 줄 알았지요 멋진 양복 입고 때론 동네 예쁜 누나들을 끼고 활보하는 삼촌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부러웠지요 그래서 그랬지요 매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떡국을 무려 네 그릇을 비우며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기원했지요 그 덕에 언제나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고 그렇게 세월은 화장실에서 익어갔지요 배설하는 동안, 코밑 수염은 굵어지고 세월은 내 키보다 더 자라나 이제는 사는 것이 괜히 서러운 나이가 되니 모든 것이 아슬아슬해 보이네요 목련꽃의 화려함을 즐기기 전에 괜히 곧 지고 말 초라한 모습이 눈물겨워 바라 볼 수 조차 없는, 백사장에 남긴 발자국 앞에서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하고 자꾸 등 뒤를 바라보고마는,첫눈이 내리는 ..

목련 후기 - 복효근

목련 후기 - 복효근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지는 동백처럼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돌아보라 사람아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두려운가사랑했으므로사랑해버렸으므로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피딱지처럼 엉켜서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낫지 않고 싶어라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춘설(春雪) ㅡ 정지용

춘설(春雪) ㅡ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다.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어른의 꿈 - 이정록

일러스트/이철원 어른의 꿈 - 이정록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시소와 그네는 마지막인 줄 알았죠. 어린이 놀이터는 끝인 줄 알았죠. 어른이 된 뒤, 깊은 밤 쓸쓸히 그네에 앉아있곤 하죠. 홀로 삼켜야 할 걱정이 많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새벽에 홀로 시소에 앉아있곤 하죠. 저 아래 낭떠러지로 미끄러진 나를 나를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하거든요.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색종이와 인형은 마지막인 줄 알았죠. 문방구 앞 오락기는 끝인 줄 알았죠. 어른이 된 뒤, 깊은 밤 쓸쓸히 인형을 안아볼 때 많죠. 함께 등을 토닥였으면, 토닥였으면. 나이가 들수록, 새벽에 담뱃갑 뜯어 학을 접곤 하죠.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린 꿈을 꿈을 어떻게든 다시 데려와야 하거든요. 슬픔도 걱정도 무지개 너머로 아픔도 한숨도 별빛보다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