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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의 함성의 미학

Joyfule 2010. 8. 26. 10:51

 

 

‘괜찮아’의 함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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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한국 시각) 이집트 수에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8강전에서 가나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가
분패한 한국 대표팀 젊은이들이 그라운드에 누웠을 때 응원석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괜찮아’였다.
신문 사설들도 일제히 졌지만 ‘해피 엔딩’이었고 잘했다고 희망을 쏘았다고 전했다.
그 누구도 홍명보의 아이들을 향한 나무람은 없었다. 오래만에 이 땅에는 긍정의 미학이 넘쳐 나는 아침이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베스트셀러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그녀는 평생을 살아오며 자기 인생에서 가장 용기가 된 말이 바로 ‘괜찮아’였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하여 친구들의 놀이에 끼지 못해 서운했을 때 지나가던 깨엿장수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혼자 끝까지 남아 골든 벨에 도전하다가 마지막 문제를 풀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우리는 이 말을 전한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이런 ‘괜찮아’의 함성의 미학이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넘쳐 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민주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부지런히 비판을 학습해 왔다.
비판은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현실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지적 훈련이다.
그러나 비판만이 넘치고 비판으로 넘어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킬 에너지를 공급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분별의 은사’를 말하고 분별의 필요성을 격려하지만 ‘비판의 영성’을 오히려 경계하고 있다.
분별은 우리의 행동의 내적 외적 모든 요인을 살펴 상대를 이해하게 만들지만
비판은 한, 두 가지의 드러난 외적 현상만으로 상대를 쉽게 정죄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런 극단적인 비판의 영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회에서 국정 조사를 하던 야당 의원들이 잘못된 것을 분별하여 충고하는 책임을 다하면서도
나름대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주무 장관들을 향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일까?
이 땅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땀 흘리는 이들에게 꼭 한번 만이라도
국민들이 <괜찮아>하고 함성을 지를 수는 없을까.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괜찮아’의 함성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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