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활동 및 사업
그렇다면 그들이 한국여성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들은 무엇일까?
그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전파함에 있어
가장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즉 유대 나라에서 시작되어 서구에서 생성되고 발전된 기독교를
한국에 전한 것은 여하튼 선교사들이었다고 그들은 한국교회의 기초가 되는,
실질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다.
1907년 12월호 The Korea Mission Field지에 실린,
"한국여성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심포지움에서는
선교사들이 한국여성의 복음화(Evangelization)와 계몽(Enlightenment)을
가장 시급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덟명의 여성들 가운데,서울의 존스(Margaret B.Jones)여사는
전도부인(Bible Women)의 훈련을 위한 학교,
젊은 부인들과 과부들을 위한 학교가 가장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펜위크(Fannie Belie Fenwick)여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탄생을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울의 버너(D.A.Buner)여사도 역시 한국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원자로 아는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서울의 무스(J.R.Moose)여사는 기독교 종교를 가르칠 수 있는
훈련받은 교사들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원산의 롭(A.F.Robb)여사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도록
예수의 복음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40)
즉 교육을 통한 전도야말로 한국 여성들에게 가장 시급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1) 교육
여성의 교육이 복음전도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선교 초기부터 세워져 온 원칙이었다. 선교사들은, 1889년에 조직된 "미국 북장로회 미션 및 빅토리아(호주)미션연합공의회"에서 1890년 중국 지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네비우스 (John Nevius)목사 부처를 초빙하여 한국의 선교사들의 명심하고 실천할 선교방법의 원칙을 제공받고 이를 한국 교회에 적용할 가능성을 연구했다. 즉 연합공의회는 네비우스 방법을 밑바탕으로 하면서 핵심적인 몇 가지 원칙을 첨가 확대해서 선교정책을 정식으로 채택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는 바로 "부녀자에게 전도하고 크리스천 소녀들을 교육하는데 특별히 힘을 쓴다"는 것이 들어 있다. 그것은 가정주부들, 곧 여성들이 후대의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1)이는 선교사들이 여성의 교육을 전도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보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좋은 예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감리교단에서 발간한 신학체계의 부인부에서는 특히 어머니의 종교적 역할을 강조한다. 반복귀라는 부인은 '종교를 가라치는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어느때부터 어린 아희에게 종교를 가라칠 수 잇느뇨?이 갓흔 것은 여러신자 어머니가 간절히 무러보는 것이올시다.디답흘 것은 출싱한 후 즉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겟다."42)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종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머니들, 장래의 어머니들이 될 소녀들의 교육이 시급하다.
이러한 생각과 그 당시 종교를 직접적으로 전파할 수 없었던 상황이 선교사들로 하여금 교육기관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스크랜톤 여사는 여성교육을 수단으로 한 기독교의 전도와 한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점진주의에 입각한 방편으로서 이화학당을 시작했다.43) 스크랜톤여사는 1898년 그녀의 교육이념으로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드는데"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여아들로 하여금 우리 외국사람들의 생활, 의복 및 환경에 맞도록 변하게 하는데 있지 않다. 우리는 단지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들므로 만족한다.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아가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완전무결한 한국인을 만들고자 희망하는 바이다."44)
말하자면 스크랜톤 여사는 교육기관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완전무결한 한국인을 만들고자 한 것이"그 목적이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여성들은 보다 나은,기독교를 아는 한국인이 될 것이고 그때 그들은 직접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혜택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그 효과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했겠는가? '보다 나은 한국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화학당의 제2대 사감인 프라이 당장은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손으로 하는 기술만을 연마함으로써 세상 일엔 어두워지고 비젼도 좁아지는 여성의 교육은 더 이상 할 수는 없으며 아들들을 정의와 정직의 원칙 아래 그 국가나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과 딸들을 그들 남편의 진정한 반려로서 교육시키는 넓은 지식을 여성들은 가져야 한다"45)고 보았다.
그녀의 견해는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보다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가지고 남편의 반려자, 자녀들의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것 정도를 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볼때 선교사들은 대체로 가부장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높이려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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