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 버지니아 울프
어떤 소리가 나의 공상을 중단시켰다.
희미하게 떨리는 소리, 방향도 힘도 시작도 끝도 없이
거품처럼 떠올라 약하고 날카롭게 퍼지는,
인간적인 의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소리가 울렸다.
" 이이 엄 파 엄 소오, 푸우 쉬이 투우 이임 우우...."
나이도 성도 없이 땅에서 솟아나오는 태고의 샘소리.
그 소리는 바로 건너편 리전트 공원 지하철역 앞에 떨며 서 있는
키가 큰 거지가 내는 소리였다.
그 거지는 마치 굴뚝이나 녹슨 펌프나 또는 바람에 잎이 다 떨어진 채
가지만 아래 위로 흔들리며
" 이이 엄 파 엄 소오, 푸우 쉬이 투우 이임 우우...." 하고 노래하면서
끊임없이 미풍에 흔들리고 삐걱거리고 신음하는 나무처럼 보였다.
모든 시대를 통해서 - 이 보도가 풀밭이었던 시대, 늪이었던 시대,
커다란 맘모스가 다니던 시대, 고요히 먼동이 터오르던 시대를 통해서
이 누더기를 걸친 노파는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으로 옆구리를 움켜쥔 채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백 만 년을 지속해온 사랑, 결국 승리하고 마는 사랑이여." 라고
노파는 노래를 불렀다.
"백 만 년 전 그 옛날 지금은 가버리고 없는 그대와 함께
나는 5월에 거닐었나니,
그러나 여름날처럼 길고 빨간 들꽃만이 붉게 타오르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대는 저승으로 떠나갔노라.
죽음의 신이, 커다란 낫이, 거대한 산들을 쓸어가 버렸나니
백발의 이 머리가 땅위에 누워 차디찬 재로 변할 때면
신이여! 석양과 마지막 햇살이 어루만지는 언덕 위
나의 무덤가에 자주빛 들꽃 한 다발을 고이 던져 주시옵소서.
그 때면 우주의 화려한 연극도 막을 내릴 것이니....."
하고 노파는 노래를 불렀다.
건너편 리전트 공원 지하철역 앞에서 이 옛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 때
대지는 여전히 푸르고 꽃이 만발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도 지저분한 입, 나무뿌리와 잡초가 뒤엉킨 진흙땅에
팬 구멍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지만,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옛 노래는 끝없이
세대의 매듭진 뿌리를 적시고, 묻혀 있는 해골과 보물에까지 스며들면서
잔물결이 되어 보도와 메릴리보운 가를 따라 흘러내려가서
유스턴까지 젖은 자국을 남겨 놓으며 비옥하게 만들었다.
이 녹슨 펌프같은 노파.
한 손은 동전을 달라고 움켜쥐고 있는, 누더기 옷의 이 노파는
여전히 그 옛날 까마득한 시대의 어느 5월에 애인과 거닐었던 일을 회상하며
천 만 년이 지나도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바다가 된 그곳을 회상하면서,
누구와 함께 걸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남자와 함께, 그렇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와 함께.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그 옛날 5월의 밝은 햇살을 흐리게 해놓았다.
그때 " 그대여, 다정한 눈으로 내 눈 깊숙히 들여다 보아주오." 하고
연인에게 애걸할 때 -지금도 여전히 애걸하고 있듯이
-노파에게는 더 이상 그의 갈색 눈, 검은 수염,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다만 그림자같이 어른거리는 모습뿐이었다.
이 그림자를 보고 노파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세월은 흘러도 여전히 변함없는 새처럼 생기있는 목소리로.
" 그대 손을 내게로 주오. 살며시 쥐어보리다.
누가 본들 무슨 상관이리요." 하고 노파는 노래를 계속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도 아랑곳 없는 듯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내 사라져갔다.
마치 낙엽처럼. 발 밑에 깔려 짓밟히고, 물에 젖고,
촉촉히 허물어지다가는 영원한 봄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낙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