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28) 두려워하는 것은 죄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18절
주님의 환상을 보고 엎드러진 사도 요한에게
주님이 오른손으로 안수하시고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두려워하지 않아야 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7절 하반부 말씀과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말은 주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는 말이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주님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정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두려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나 행음하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 이상의 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작게 보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보면 영적인 의미에서 '눈이 큰 사람'이 두려움이 많습니다.
뵈는 것이 많으면 두려움도 많아집니다.
뵈는 게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신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담대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두려움의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보려고 하는 것 때문에 생겨납니다.
사는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면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항상 두려움에 젖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죽기를 각오하면 그 가운데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살려고 하니까 시험거리가 많은 것이지
죽기를 각오하면 더 이상 죽어야 할 일도 시험받을 일도 없게 되고,
오히려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