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3.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정말 슬픈 편지였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증오해요. 제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만일 평안과 예수님을 찾지 못하면 나중엔 결국 자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콜린 로버트(가명)는 교회 생활과 대인 관계에서 심한 고통을 겪었고 그러한 경험은 그녀로부터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 내가 쓴 책 「학대하는 교회들」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적어 보냈다. 콜린은 높다란 마음의 장벽을 쌓아 두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 상담인, 특히 목사 - 그 장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도 저의 요새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두터운 성벽 밖에는 아주 작은 우편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우편물이 있지만, 저는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믿음조차 잃어버린 채 외로움에 젖어 성벽에 갇혀 있습니다. 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다시 회복될 것 같지 않아 죽고 싶지만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도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게 마지막 희망 한 조각이 남아 있는 동안 하루 속히 데려가 달라고 기도합니다.” 콜린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저 작은 우편함에 도달할 수 있었고, 영적이고 인격적인 온전함을 향한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가정을 잃은 아이
그녀의 부모는 콜린을 구제 불능의 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녀가 십대였을 때 양육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콜린은 부모님과 달랐다. 그녀는 가족에 관한 소재를 다루는 많은 텔레비전 쇼를 보아 왔고, 부모 형제 자매들이 ‘진짜 가족’이 되어 함께 살 수 있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저는 엄마와 아빠가 저희들을 돌보아 주시길 바랐습니다. 부모님은 부자이긴 했지만 저희를 돌보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차 자주 여행을 가셨고, 어머니는 거의 집에 계시질 않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그 아이를 플레이펜(울타리로 둘러싸인 어린이 놀이터)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건 저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고립되어 있었고 외로웠습니다.
제 여동생은 그러한 상황들을 생각지 않으려고 과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점점 비만해졌죠. 저는 부모님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고함을 치곤 했습니다. 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가출도 해보았고 저를 배려해 준다고 생각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콜린이 1973년, ‘그의 집’ 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쏟아 주는 관심과 그 곳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만 했다. 사랑 많은 ‘아버지’ 와 그 단체 사람들은 자신들이 콜린을 얼마나 배려해 주고 있는지를 말해 주곤 했다. 그 곳의 생활은 콜린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은 그러한 생각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탠은 예전에 군대에 있었던 경험 때문에 저희들을 군대식으로 대했습니다. 그 집에서 고기를 먹어 본 것은 누군가 거북이를 잡아 왔을 때뿐이었습니다. 수면 시간과 식사량은 너무 적었고, 저는 세탁을 하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시 해야 했습니다. 저희들은 요리뿐 아니라 20명이 식사를 하고 난 후의 뒷정리까지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스탠은 우리에게 그러한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콜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스탠과 성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저는 ‘그의 집’ 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처음 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굳게 신뢰했고 그들에게 사랑받고자 했습니다. 스탠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는 어쩐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다지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스탠은 아침이 되면 저를 깨우러 제 침실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아버지란 어떠해야 한다는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단지 아버지가 곁에 있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스탠을 통해 아버지는 저러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순진했던 거죠.
‘그의 집’ 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언제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 순종했습니다. 스탠과 성 관계를 가진 후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도망가라는 그의 말에도 고분고분 따랐습니다. ‘그의 집’ 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스탠은 중심 인물이었고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을 모두 행했습니다. 그 곳에는 스탠 이외에 두 명의 여자 상담원이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제가 받은 상담은 전문적인 상담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원들과 만나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중요한 결정은 스탠이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빠’ 가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리스도와 권위와 성에 대해 가르쳐 준 한 기독교인 가정으로 갔습니다. 저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두 번 강간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명의 낯선 사람들로부터 강제적인 강간을 당했지만, 이제는 ‘아버지’ 인 스탠과 성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스탠은 저를 완전히 거부해 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주었고 그렇기에 저는 스탠을 아버지로 사랑했습니다. 저의 불행했던 가정을 스탠과 그의 가족들로 대신해 보려 했던 겁니다. 그러나 저는 가정을 가진다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습니다. 스탠은 2년 반 동안 저와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의 성 관계를 가졌습니다. 제가 그의 아이를 가졌을 때 그는 제가 도망간 것처럼 상황을 조작했습니다.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은 스탠이 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를 배신한, 행실이 나쁜 딸이며 원래 그런 아이라는 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스탠은 ‘그의 집’ 근처에 저와 딸을 위해 아파트를 장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이의 아버지임을 시인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저는 복지 기관을 찾아갔습니다. 스탠은 제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딸이 같은 방에 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 저를 안던 스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탠이 저의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만일 제가 그의 곁을 떠난다면 아무도 제 곁에 없다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스물한살 되던 해, 저는 메릴랜드 주로부터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저를 얽매고 있던 사슬이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멀리 달아난다 해도 뒤쫓아와서 붙잡아 가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저는 메릴랜드로 되돌아가서 그 공동체에 참여했습니다. 공동체의 명칭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동일한 지역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그 집단을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콜린은 미혼모라는 자신의 위치와 사랑을 갈급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이 상처 입기 쉬운 입장이 되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도자들은 콜린에게 육체적, 성적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콜린의 여동생은 콜린의 몸 여러 군데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염려했다. “저는 그 공동체에 오도록 소개한 제 여동생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원에서 어떤 사람이 밀어 넘어뜨려서 생긴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지도자에게 무언가 이상하다는 말을 전했다. 콜린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종말을 향한 출발점’ 이 되었다. 지도자들은 콜린의 여동생 말을 믿지 않았지만, 콜린은 자신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여러 가지로 학대받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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