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한 소고
II. 교회의 설립 (The Founding of the Church)
1. 예언적 고찰
이스라엘을 가리켜 교회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모든 다른 나라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불러냈기 때문이다.(행7:38)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 (이스라엘의) 회중이라는 말을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교회 (church)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회중 또는 교회이었다. 유대인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후에 그는 새로운 회중 즉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로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지상에서 계속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마16:18)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교회인데 오순절에 탄생하여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2. 역사적 고찰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순절에 탄생하게 되었을 때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헌납되었다. 성막이 지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으로 성막이 성별되었던 것과 꼭 같이 (출30:34) 최초의 교회원들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에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교회는 성별되었던 것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을 이 사건에서 속죄소 (shekinah)의 속죄를 보았다. 이 속죄소는 성전으로부터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 어떤 랍비들은 이 속죄소가 없음으로 대단히 슬퍼했던 것이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재료들을 수집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솔로몬이 이 성전의 건축을 완공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교회를 세울 재료들을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모두 수집하여 놓았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성령에 의하여 교회의 설립을 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사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저들을 설교와 가르침과 조직에 의하여 교회의 기초를 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것이다.
III. 교회의 회원권 (The Menbership of Church)
신약은 교회의 회원권을 위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절대적 신앙과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 진정한 신앙이다.(엡16:31).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대한 상징적 간증으로서 물세례를 받는 일과 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신앙 고백이다. (롬10:9,10) (물세례를 받는 일은 교회의 회원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초대 교회가 시작될 무렵에 모든 교회원들은 참으로 중생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7).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조직체의 일 회원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포도나무의 한 가지로 접붙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려감에 따라 교회는 수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명성을 떨치게 되자 물세례는 참다운 개종자에게 주어지기 보다는 교리 문답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하여 교회원의 수는 대단히 증가하게 되어 마음속에 새로운 변화를 받지 못한 사람도 교회에 들어와 기독교인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지 기독교계의 상태가 다소를 불문하고 이와 같은 경향으로 흘러온 것은 사실이다. 옛날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중에도 참 이스라엘이 있을 것과 같이 오늘날 교회 중에도 참 교회가 있는 것이다. 다만 입으로만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반면에 참다운 신앙심을 소유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기서 온갖 교파에 속한 참다운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유형적 교회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는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후자는 교회의 교인 명부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분이 마태복음 13장에 암시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천국의 비밀"이라는 표현은 "기독교국" (Christendom)이라는 일반적 명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본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는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기독교의 영적 역사를 취급하고 있다. 우리들은 여기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 안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한데 섞여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교회는 정화될 것이며 진짜 교인과 가짜 교인은 구분될 것이다. (마13:36-43,47-49)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진리를 어떤 큰집에는 귀히 쓰이는 그릇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천히 쓰이는 그릇도 있다는 비유의 말씀을 함으로써 잘 나타내 주었다. (딤후2:19-21)
그러면 교회의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한 것인가? 교회 시대가 천국의 일 양상 이라는 점이 마16:18.19.속에 암시되어 있으며 또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와 바울이 신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역사하고 있다는 말을 한 것등에 의하여 교회와 하늘 나를 동일시했다는 암시를 엿볼 수 있다.(골4:11).
"하늘나라"라는 말은 포괄적 용어이기 때문에 교회를 하늘나라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니노이스주를 미국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일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
고 윌리암 이반즈 (William Evans)는 말하였다. 교회는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요3:3-5, 벧전1:23).
IV. 교회의 사업 (The Work of the Church)
1.구원을 전하는 일
만민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업이요 사명이다.(마28:19,20) 그리고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구원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교회의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구원을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실제화 해야 한다.
2. 예배의 수단을 제공하는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예배 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이 인생의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 때와 또한 궁핍 속에 빠졌을 때에 저들은 이 예배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인간의 예배와 간증과 기도를 들으신다.
3. 종교적 친교를 제공하는 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는 교제를 갈망하고 있으며 또한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고 있다. 자연히 인간은 이해관계가 있고 같은 경험과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일을 친교의 기반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란 결국 같은 영적 체험을 나누는 사람들이 하나의 형제로 모인 유기체이다.
따뜻한 우정을 어디서든지 찾아 볼 수 있었던 현상이 초대 교회의 현저한 특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계와 같은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세계에서 개인의 인격은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고독과 절망의 의식을 망각해 버릴 수 있는 정다운 교제를 갈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의 힘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교의 힘이었다. 이와 같은 교회 안에서의 친교는 세속적 사교와는 엄연히 이와 같은 교회 안에서의 친교는 세속적 사교와는 엄연히 구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 교회 안에서는 계급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모든 남녀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 도덕적 표준을 유지하는 일
교회는 도덕적 無知를 추방해 버리는 "세상의 빛"이요, 또한 도덕적 부패로부터 세상을 보존시키는 "세상의 소금"이다. 교회는 인간에게 올바르게 죽는 방법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방법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는 인간의 행위와 생활의 영역에 있어서의 모든 규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는 도덕적 경고를 발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도덕적 위험 지구에 횃불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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