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구두를 닦으며 - 엄정숙

Joyfule 2015. 5. 8. 11:16

 

 

 2006 대구매일신춘수필당선작

 남성 구두의 종류 제대로 알기!    구두를 닦으며 - 엄정숙

 

 

남편의 구두를 닦는다. 날마다 닦는 구두지만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손끝에 힘이 더해진다.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캥거루 구두약을 천에 묻혀 가죽을 문지른다. 사람의 피부에 영양크림을 바른 것처럼 촉촉하고 부드럽다. 리드미컬한 손놀림으로 솔질을 하면 한 쪽으로만 닳아진 구두가 절름절름 춤을 추어 박자를 맞추는 것 같다.
 현관 바닥에 앉아 발을 구두 속에 넣고 천 양쪽을 당기며 광택을 낸다. 무사히 하루의 무게를 잘 견뎌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듯 아침마다 힘껏 구두를 닦는다. 채 몇 시간도 안 되어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쓸 구두인데도.

 수협 공판장은 거칠고 살벌하다. 몇 초 동안에 물건의 품질을 판단하고 가격을 걸어 다른 이들과 고도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남편의 직업은 건어물 중개인이다. 그래서 그에게서는 언제나 건조한 바다냄새가 난다. 가끔은 해일이나 파도에 밀리는 난파선처럼 숨가쁜 고비도 있지만 바다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치유의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함께 했던 구두 역시 홍건히 젖은 돛단배처럼 무겁고 힘들었던지 집으로 돌아오면 옆으로 쓰러져 누워 버리곤 한다. 그대로 두어도 누가 탓할 사람이 없지만 나는 한사코 세상 쪽으로 구두를 일으켜 세워 놓는다. 그런 나의 재빠른 행동이 어쩌면 남편을 조류가 급한 바다 한 가운데로 내몰려는 몰인정한 처사 같기도 해서 주춤해질 때가 더러 있다.

 내 구두는 그럴 듯하게 닦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해야 할 때는 걸레로 슬쩍 문지르고 나가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사람의 구두를 닦아 보았다. 오빠의 구두가 그 중 하나이다. R. O. T. C.장교가 된 오빠의 군화를 나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가지런히 댓돌 위에 앉혀 놓곤 했다. 그리고 늠름한 사회인으로 잠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을 때는 더더욱 신바람을 내며 아침마다 구두를 닦아 오빠의 출근길을 밝혀 놓았다. 앞날이 너무 눈부셨던 걸까.
 흠도 결도 없이 투명한 가을날, 스물 아홉 살의 오빠는 위암이라는 병명으로 이승을 떠났다. 홀몸으로 여섯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은 채.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도 오빠의 구두는 현관 한 구석에 물음표처럼 놓여 있었다. 그 물음표 같은 구두를 버리지 못한 것은 오빠의 자취를 지워버리는 일이 두려웠던 때문일까. 아니면 오빠의 죽음을 묵살해버리고 싶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정말이지 오빠가 홀연히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오빠의 구두를 닦아 주고 싶었다. 구두약 대신 눈물바람으로 닦아 놓아도 구두는 금방 신었다 벗어 놓은 것처럼 생생했다. 반짝이는 구두 속에서 오빠의 체온과 웃음과 목소리까지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식구들은 장례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남편의 구두를 닦을 때면 가끔 그날의 시리디시린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스쳐가곤 한다. 내 영혼의 한 곳에 깊이 각인되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되살아난다.

 닦고 광택을 내야할 것이 어디 구두뿐이랴. 몸과 마음은 물론 학문과 교양까지도 매일 닦지 않으면 때가 끼고 먼지가 앉게 마련이다. 하루하루 거울을 닦듯이 먼지를 털고 닦아야 하는데도 제대로 닦아 놓은 것이 하나도 없어 쓸쓸함만 더해 간다. 오빠의 구두나 남편의 구두를 닦는 것처럼 나 자신의 길을 열심히 닦았더라면 그들이 비록 먼지 묻은 구두를 신고라도 하늘을 오를 듯이 기뻐하며 나를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구두는 구두닦이에게 맡기고 네 자신을 닦으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두코에 입김을 불어가며 광택을 내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나 자신이 참 한심해 보인다. 구두 닦는 손에 문득 힘이 빠지는 순간이다.

 아무래도 나의 전생은 구두닦이 소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 구두를 닦게 해 주세요.”
폴란드의 피아니스니트이자 정치가였던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보스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그에게 한 구두닦이 소년이 다가왔다. 꾸벅 허리를 굽힌 그 소년의 얼굴에는 구두약이 잔뜩 묻어 있었다.
“꼬마야, 내 구두는 닦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네 얼굴은 좀 닦아야겠다. 얼굴을 닦고 오면 그 값으로 은화 한 닢을 줄 테니.”
 순간순간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하는 따뜻한 대화의 한 토막이다.

 가을은 생각보다 빨리 깊어간다. 하룻밤 가랑비에도 노란 은행잎이 거리에 수북하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날들도 하루씩 떨어져간다. 하산을 서두르는 고운 단풍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들뜬 모습으로 산으로 간다. 남편의 가을은 남도의 푸르딩딩한 바닷가에 불경기의 수심처럼 머물러 있다. 나는 남편의 옷과 신발에 묻어오는 마른 멸치 비린내를 가을바다의 향기로 여기며 신발보다 더 낮게 엎드려 그의 구두를 닦는다. 하루치의 노역을 싣고 타박타박 사막을 가야 하는 낙타의 등을 쓰다듬듯 가슴 속의 얼룩과 주름살을 펴듯 정성을 다해 구두를 닦는다. 한 바탕의 신바람까지 곁들여 닦은 구두 한 켤레가 햇살처럼 집 안팎을 환하게 밝혀 준다.
 오빠의 구두가 내 기억 속에 아직 어두움으로 남아 있다면, 오늘 아침 내가 닦아 놓은 남편의 구두 한 켤레는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삶의 밝은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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