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트비 - ‘하나님·이웃·땅’ 3愛정신 번영 이끌어
(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농촌운동가들과 신학자들이 그 이름을 외치고
있는 인물이다.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외치며 국민 성격개조 운동과 농촌 부흥운동을 벌여 오늘의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기초를
마련했다. 부유한 나라를 떠올리지만 그룬트비가
살던 19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 상태였다.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국가 경제는 당연히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의식개혁운동을 주창했다. 그룬트비는 또 덴마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념을 갖고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성인기숙교육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토론하는 생활을 통해 소극적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갖도록 가르쳤다. 크게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룬트비가 내세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3애(三愛)정신은 곧 덴마크 국민의 구호가 됐다.
사실을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에게 깨우쳐준 것이다. 3애정신과 함께 낙농기술을 가르쳤다. 그룬트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용했다.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떠도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한 ‘세계사 연대기’를 발표했다.
비판이 담겨 있었다. 문학연구에 몰두했다. ‘교회의 대담’에서 당시의 신학이 지나친 합리주의 경향으로 신앙을 철학사상의 일종으로 취급한다고 다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살아있는 성례전 속에서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계시라고 주장했다. 직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주창하고 토지제도의 개혁을 역설했다. 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역설해 덴마크 특유의 소농제도를 확립했다. 높은 관심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었다. 북유럽의 역사와 언어,성서를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됐다.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이야기하며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다. 국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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