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신앙인물

그리스도의교회 초기 인물 자료 - 리챠드 래쉬

Joyfule 2008. 10. 8. 01:21



 

래쉬 선교사는 1957년 한국에 도착해서 약 1년간 서울에 머물면서 테일러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국말을 공부했고, 테일러 선교사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서울 성서 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958년 5월 10일 강릉으로 선교지를 옮겼다. 당시는 도로 사정이나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서울에서 강릉까지 자동차로 1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강릉에서 래쉬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고생이 많았고 자녀들과 부인도 병으로 고생이 많았다.
 

래쉬는 1958년 8월부터 강릉시 옥천동에 장소를 마련하고 복음전도를 시작하였으며, 초등, 중등, 및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 당시 대전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은석 목사가 강릉에서 집회를 열어 래쉬의 선교 일을 도왔다. 주문진 교회는 서울 성서 신학교에 다녔던 어느 여학생에 의해서 설립되어 자립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영동교회는 어느 석탄 광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1960년 래쉬의 선교보고에 의하면, 교회에 출석하는 남자의 수가 70명이었고, 학생들이 약 150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 래쉬는 교회당 건물을 지을 때 한국인들과 함께 일하였으며, 부인 멜바도 기회 있을 때마다 전도에 힘썼다. 래쉬의 통역은 최종묵 씨가 맡아 수고를 했는데, 그는 후에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 이후 래쉬 가족은 부산으로 선교지를 옮겨 장성만 목사와 함께 부산 주례동에 실업학교를 설립하였고, 이 학교가 나중에 경남공업전문대학과 동서대학교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결정을 내린 후에, 자신들의 모든 일을 장성만 목사에게 넘기고 1971년에 한국을 떠났다.  

 

Copyright ⓒ Christian Church Studies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