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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롤드 테일러 선교사

Joyfule 2008. 9. 30. 00:21


 

테일러 선교사는 한국에 오기 전, 1945~1946년경에 티벳(Tibet)족의 선교로 유명한 러쎌 몰스(Russell Morses)를 도와 중국에서 선교한 경험이 있었고, 존 힐 선교사가 가정문제로 1955년 귀국하면서 테일러 부부와 두 아들이 일본에서 하던 선교를 그만두고 그 해 말에 내한하여 힐 선교사의 일을 이어 받았다. 그는 오자마자 새로 지은 신학교 건물을 포함해서 서대문구 송월동의 선교부 재산을 모두 팔았고, 그 때문에 북서울 역천동(현재 신사동)에 새로운 부지와 건물을 구입할 때까지 수년 동안 신학교 운영이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1955년 테일러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해서 미국에 보고한 한국교회 현황을 보면 교회가 65개, 교수가 1명, 고아원이 3개(서울, 대전, 부평)로 나타나 있다. 교인들의 교회 출석은 침례를 받은 사람보다 침례를 받지 않고 출석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했다.
 

테일러는 신사동에서 다시 시작한 서울 성서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역자를 양성하였고, 대전과 부평 고아원을 경제적으로 후원하였으며, 교회개척에도 힘썼다. 그는 또 그리스도의 교회 재단법인을 설립해서 선교부 재산을 관리하였고, 1957년에는 월간 {한길}(One Way)을 창간하였다.
 

채이스가 크리스챤 스탠다드와 함께 모금한 한국 교회당 설립을 위한 기금은 채이스가 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기금을 은퇴 때에 테일러에게 넘겼으며, 테일러는 이 기금으로 11개 처의 교회를 개척했고, 1개 처는 장로교회 건물을 매입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사용했으며, 34개 교회가 신축 및 수리 보조금을 받았다고 테일러 선교사는 1957년 6월 미국에 보고하였다.
 

테일러는 1955년 이후 19년간 서울에 머물면서 활동을 하였고, 모든 선교부 일을 후임자인 배도은(Gorden Pattern) 선교사에게 넘기고 1974년 은퇴하였으며, 미국에서 1976년 5월 15일 교회 제직소풍 중에 심장마디로 쓰러진 후, 오후 8시 13분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