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 제8권]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Two become one
제 8 과 부부 교제의 원리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 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가복음 10:7~9>
결혼한 순간부터 “죽음이 사이를 갈라 놓을 때까지” 부부는 그들의 사이를 갈라 놓는 어떤 것도 막아내야 합니다.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이 아무리 좋게 보일지라도, 부부가 “하나”가 되는 데 위협이 된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최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정리되어야 합니다.
이 과는 부부 교제의 원리입니다. 부부 관계는 교제가 성숙 되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제를 통해서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입도 하나가 되어 사는 이것이 행복한 가정 생활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은 교제가 성숙할 때 이루어 집니다. 연애 시절 구애 시절부터 죽기까지 서로 살아가는 삶이 교제입니다. 교제에 대해서 연애 시절부터 단계별로 생각해 보면 우선 첫째가 교제가 형성 되는 것입니다.
이 과에서 당신은 결혼 생활의 각 단계에서의 부부 교제의 중요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교제의 형성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혼과 약혼 단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곧 둘이 하나가 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1. 다음 항목에 기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가해 적어 보십시오.
(1)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적응함. → 약혼시기의 교제 (서로를 배우는 단계이다.)
(2) 인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서로 나누고 알아 봄.
(3) 결혼식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계획함.
(4) 서로 영적인 생활을 Q.T나 생활 간증을 서로 나누는 교제입니다.
내가 말씀 가지고 축복을 받은 것,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던 것, 내가 그 말씀을 통해서 결심 했던 것, 깨달 았던 것 등 이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영적인 교제도 아울러 있어야 된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런 응답이 있고 이런 말씀을 따라서 이렇게 살았더니 이런 결과가 있더라 그런 생활 간증을 나누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5) 생활 스타일을 일치시키는 일입니다.
생활 스타일을 가능한 하나로 일치 하려고 하는 교제를 말합니다. 교회 생활에 대해서나, 혹은 교회 봉사하는 생활, 혹은 주님을 섬기는 생활 이 외에도 취미 생활 등 이런 모든 생활 전반에 걸쳐서 가능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제는 연애 시절 때부터 나누어야 됩니다.
(6)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교제입니다.
비전에 대해서 인생의 목표가 서로 동의가 되어야 됩니다. 즉 ‘나는 이런 목표로 산다. 이런 목표를 추구한다.’ 라는 자신의 목표와 상대방의 목표가 하나가 되도록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 자체만 좋아하지 그 사람의 품고 있는 뜻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도 좋아해야 되지만은 그 사람의 속에 품은 뜻, 인생의 목표가 같이 일치가 되어야 되므로 이런 것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이런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하나가 되어야 되고 조화가 되어야 됩니다.
(7) 성경 혹은 자라온 환경 또 특별히 중요시 여기는 것 이런 것들을 잘 파악해가지고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교제하므로 그 사람의 성격도 파악하고 그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가정 환경에 대해서 또 자기가 특별히 중요시 여기는 것들을 결혼하기 전에 나누어야 할 교제들입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서 결혼에 이른다면 휠씬 결혼 생활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을 지을 때 채석장에서 돌을 다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짓는 그 자리 에서는 그냥 돌을 맞추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안에서는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돌을 다듬는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성전터에서 나지 않도록 돌 있었던 그 자리에서 다 다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지을때는 그 자리에서 맞추기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 결혼도 그래야 됩니다. 결혼 하기전에 적어도 약혼시절까지 서로 다음어가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서로 다음으면, 즉 돌이 딱 어긋맞어야 튼튼한 것처럼 ‘아! 이 사람은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서로 이런 교제를(연애) 통해서 하나가 되도록 잘 다듬어 결혼식에 임한다면 결혼 생활은 훨씬 행복하고 충돌이나 다툼이나 갈등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제는 결혼전에 있어야 됩니다. 이런 교제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건전한 마음으로 남녀가 결혼전에 교제하는 것은 괭장히 중요한 일이고 결혼 생활을 훨씬 행복하게 앞당기는 중요한 시기 중에 하나입니다.
다듬는 시기, 약혼시기는 다듬는 시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둘이 한 사람이 되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다듬어가는 시기입니다. 약혼시기때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서로 이해할 건 이해하고 다듬어져 있는게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결혼생활은 결혼 해서 다듬으려고 합니다. 이 속에는 괭장히 갈등이 많습니다. 더 힘들고 복잡한 것입니다. 항상 서로 사랑이 싹트고 서로 좋을 때 건전한 교제를 통해서 돌을 다듬어 성전 짓는 것하고 다듬지 않고 짓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연애를 하는데 이러한 교제의 중요성을 모르므로 커피숍에가서 커피 마시고 극장에 가고 조금 발전하면 룸에 가는 이러한 교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교제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지는데 같이 앉아 있다고 해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많은 대화를 나눌 때 즉, 자기 어렸을 때의 가정 환경, 자기 성격 등 좋은 것, 나쁜 것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다듬어 가야 합니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런 것을 싫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도와주고 감싸주고 격려해 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으로 하는 사랑은 낮은 수준의 사랑이고,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이 사람을 별로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되지만 내가 이 사람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해서 영광스럽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되겠다는 뜻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제를 통해 뜻이 같아 질 수 있고 사랑이 더 깊어 질 수 있다는 걸을 알아야 합니다.
2. 성경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 어떤 지침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1) 고린도후서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調和)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같은 믿음에서 동의 해야 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인생이라는 멍에를 같이 멜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원리에 동의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과 사귀고 교제하면서 내가 이 사람을 구원시키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체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빗나간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시기는 전도하는게 아니라 서로 인생의 배후자를 찾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첫째 원리가 믿음이 같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다를 때에 오는 문제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일 큰 것은 영과 육의 싸움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영이라면 그 사람은 육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훨씬 행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가정보다 더 큰 교회도 영적인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야 행복하고 하나님의 살림이 발전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교인들이 있다면 진전은 되지 않고 자꾸 갈등이나 다툼 등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목회 자체도 영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참 재미있고 정말 은혜 가운데에서 우리가 보람있는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육의 사람들이 같이 끼어 있으면 이 사람들 때문에 교회 생활이 기쁨이 없습니다. 그저 갈등이고 짐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작은 가정이 영과 육이 다르다면 얼마나 내적인 갈등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믿음에 동의해야 됩니다.
(2)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意合)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같은 뜻에 동의 해야 됩니다. 믿음만 같으면 되는게 아니라 인생의 목표나 뜻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이런 목표로 산다. 나는 이런 목표로 신앙 생활 한다. 나는 이런 목표로 주님을 섬기고 산다’라고 사전에 서로 교제를하므로 동의 해야 합니다. 믿음은 같아도 그 뜻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겨우 구원받은 믿음으로 예배만 드리는 신앙 생활을 다로 알고 세상을 누리고 세상을 즐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리고 이 땅에서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더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헌신적인 봉사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격이 같아서만 되는게 아니라 믿음으로도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목회자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목사가 될 사람하고 결혼한 사람은 믿음이 있어 결혼 했는데 목회를 하면서 실제로 사모님이 안따라 준다거나 아니면 목사가 목회 하면서 자꾸 세상적으로 나간다면 가정안에서 얼마든지 갈등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뜻이 다른 것입니다. 예를들어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사명 받아서 길을 갔습니다. 여기서 만일에 사라가 ‘난 당신 못따라 가겠다’고 했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서 지시할 땅으로 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여자는 생활의 안정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데 사라가 나는 못떠나겠다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라는 떠났다고 했습니다. 동의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모험, 엄청난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길이지만 사라가 동의 할 수 있었던 것은 뜻이 같았는 것입니다. 그 뜻에 동의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의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삶을 동의 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을 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인데 두 사람이 도덕성에서 일치 해야 합니다. 도덕성이 없는 결혼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한쪽이 너무 세상적으로 음란으로 시작된 연애는 위험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13:14~15절에 암논과 다말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甚)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참 비극적인 일입니다. 암논이 너무 다말을 심(甚)히 연애해가지고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뒤에는 마지막에는 처음에 좋아 했던 것보다 더 싫어해 다말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쪽이 성적으로만 접근 하려하는 것은 좋은 교제가 아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전하게 교제를 하고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연애하는 기간에 남자쪽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육체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하고 다를게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육체적 접촉을 갖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는게 살아가는 것은 신앙인의 삶입니다.
3. 창세기 29:16~20절은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사랑의 증거를 적어 보십시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戀愛)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數日)같이 여겼더라”
이 말씀의 내용은 야곱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야곱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를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기다리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은 14년 동안 기다리면서 머슴으로 종으로 일하면서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기다리며 준비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런 자세가 뜨거운 사랑입니다.
오늘날의 사랑은 너무 가볍고 성급합니다. 그래서 육적인 사랑을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기가 쉽습니다.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를 위해서 기다리며 준비하며 열심히 일하고 맞아드릴 준비를 하는 것이 야곱이 14년 동안 그랬던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이 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4. 당신의 구애 기간과 약혼 기간을 돌이켜 볼 때 두 사람 간의 교제에서 미흡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며, 현재 그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결혼하기 전 사람이나 혹은 결혼한 사람들도 한번 생각해 보는 공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배필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는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침례교회 결혼은 식장에서 신앙 고백을하며 주례자의 물음에,
이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배필이라고 믿습니까? 예. 그러면 왜 그렇게 믿습니까? 이 때 수 많은 하객 앞에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까지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준비하고 또 그런 확신으로 결혼 할 때 결혼해서 훨씬 주님을 잘 섬기고 또 행복할 수 있고 성숙한 결혼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결혼 준비는 경제적인 면에서 마음과 시간을 많이 뺏깁니다. 심지어 신문에 의사가 결혼 예단이 적다고 아내를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너무 부수적인 것에 마음과 시간을 뺏겨버리고 실제로 가져야할 신뢰나 사랑이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식의 결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결혼 시킬 사람들입니다. 예물이 많다 적다는 것으로 자녀들을 마음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 아프게 해서 결혼하면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해 연애하는 결혼은 우선 좋은 점이 많습니다. 결혼에 대한 준비에 대하여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매해가지고 결혼한다면 서로 믿음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다면은 이런 준비 때문에 큰 상처를 입기 쉽고 결혼해서도 마음으로 해결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가능하면은 서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하는게 좋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남녀가 교제하는 걸 말릴필요가 없으며 그걸 자꾸 죄악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은 지금 이 사회에서 한 교회안에서 연애한는 걸 죄악시하거나 막거나 그럴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단지 좋은 교제를 하도록 건전하고 믿음의 교제를 하도록 지도할 필요는 있습니다.
U.B.F 선교회는 강력하게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선교원 사람들끼리만 결혼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것이 핍박거리가 될지 몰라도 선교의 자체로 볼 때 그것은 선교회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을 외적인 것만 보고 결혼하면 결국 교회 등한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끼리 결혼 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좋은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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