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만 한다고, 입에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어떤 늦깎이 신학생 두 부부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부부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상가를 세를 얻어 교회간판을 달고 옥상에 십자가를 세웠다. 임대한 상가에 강대상과 장의자를 들여놓고 멋들어지게 인테리어를 했다. 이제 해야 되는 일은 전도를 하여 양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부부는 새벽기도 시간에 열심히 양들을 불러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한 뒤에,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나서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들고 시장과 공원과 상가를 돌았다. 그리고 저녁에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나서는, 교회에 가서 밤늦도록 또 하나님께 양들을 보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다른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내내 허드렛일을 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나서, 또 기도를 시작하여 자정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당신은 위에 소개한 개척한 목회자의 입장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첫 번째 소개한 목회자는 새벽과 밤에 기도를 열심히 하고 하루 종일 전도를 하며 양들을 모으는 방법의 사역방식이고, 두 번째의 목회자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일을 제외하고는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역방식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목회자의 사역방식을 지지할 것이다. 새벽과 밤에 열심히 기도하고 낮에는 열심히 전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목회자처럼 전도를 해서 양들을 모으지 않고, 주구장창 기도하고 성경이나 읽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또한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라고 여긴다.
그렇다. 당신의 생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게 성경적인가는 생각해보아야겠다. 목회자는 사역자이다. 사역(使役)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시키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목회사역을 맡기는 이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 경험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쨌든 수많은 신학교 졸업생들이 학교 문을 나서지만 개척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왜나면 10명이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10명 다 교회 문을 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가 지하실이나 옥상의 교회에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도를 게을리 해서도 아니고 전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새벽마다 기도하고 밤마다 철야를 하다시피 기도하며, 틈만 나면 전도지를 들고 구두 뒤축이 닳도록 돌아다녀도 대형교회를 선호하지 허름한 개척교회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역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허름한 지하실 교회든지 옥탑방 교회든지 무에 그리 중요한가? 하나님은 돌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게 해서라도, 복음을 전하게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 아니신가?
필자가 바로 두 번째 타입의 목회자이다. 필자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화장품방문판매를 하면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일을 제외하고는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세월을 보냈다. 필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새벽기도를 하다가 목회자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3년 뒤에 졸업했다. 그러나 졸업해서는 세상으로 도로 나가서, 7년 후에나 비로소 사역을 결심했다. 기존 교회에 전도사로 들어가 목회자 과정을 밟으려고 하지 않았고, 상가를 임대해서 개척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존의 사역방식이 비 성경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필자를 종으로 선택했다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만 있다면 필자가 할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노동을 제외하고는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세월을 보냈다. 기도내용도 사역을 열어달라거나 양을 보내달라는 투의 기도를 한 적이 없다. 오직 하나님을 부르고 찾으며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뿐이었다.
왜 그런 방식의 사역을 고집했느냐면, 말 그대로 필자는 사역자이기 때문이다. 즉, 시킨 일만 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면서 성령의 내주를 간청했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나서부터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보내주시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이라는 분별이 되는 일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철저하게 필자의 생각이나 계획, 목표나 속내가 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몇 년 후에 시내변두리에 원룸을 입대하여 교회를 세웠어도 교회간판이나 십자가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물어서 찾아왔어도, 필자의 원룸이 교회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필자는 개의치 않았다. 사업이 망한 후로 수중에 돈이 없었기에 상가를 임대할 능력이나 계획도 없었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역을 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아내와 단둘이 원룸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11년 차가 들어서자 2가정이 예배를 같이 드리게 되어 3년 동안 드리다가, 지금은 충주로 이사를 와서 영성학교만을 섬기고 있다. 충주에 오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이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역을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다시 칼럼의 주제로 돌아가, 구주장창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먹여살려주는가? 아니면 기도를 하고 당신도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음이 없기에, 기도는 하지만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능력이나 인맥, 자본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게 바로 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믿음이 아니라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믿음이다. 그래서 형식을 좇아 기도를 하지만 당신의 계획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지 마시라.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당신의 인생에 전혀 개입하시지 않으신다.
엄청난 빚을 얻어 럭셔리한 대형교회를 세워서 목회성공을 하는 방식은 세상의 방법이다. 그래서 거룩한 예배가 아니라 눈요기를 해주는 이벤트로 변질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외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가 아니라 달콤하고 감성을 터치하는 세련된 설교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런 교회에서 당신이 배우는 것은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마귀의 방식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겠으며.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고사하고 천국에 들어갈 꿈이나 꾸겠는가? 쯧쯧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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