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션계학교의 문제들
그러나 비기독교인인 학생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게 어떻게 기독교적 이념을 수용하게 하나 하는 것이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1940년대의 감리회보에는 미션계 학교에서 기독교 신자로 개종하는 일이 점점 적어짐에 개탄하고,그런 중에서도 배화여고 학생들이 세례를 받게 된 것을 기뻐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는 기독교신자되는 데 등한한 일이 있다. 그러나 서울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이번 사십일명의 학생이 세례를 받아 그 학교학생들을 얼마나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하는지 나타내 뵈었다. 지난 2월14일 주일에 종교 예배당에서 신공숙 목사의 주례로 배화여자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세례를 받았으니 1학년에 십삼인,2학년에 오인,3학년에 팔인,4학년에 십오인 합 사십일인이었다."46)
(1) 신자와 불신자
이때는 이미 미션계의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기독교신자이거나 기독교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화학당의 경우 기독교신자의 분포가 1920년부터 1963년도까지 재학생의 49-50%선을 유지하였다고 하는데 47) 그렇다면 비기독교인인 50-51%의 학생들을 학교 당국에서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문제로 대두된 것은 당연하다. 비기독교인 학생들에게는 성경과목과 채플 등은 자기들의 의사에 반한 강요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리 말이 난김에 또하나 학교에 대하야 바라는 것이 잇슴니다. 나는 어느 종교적 배경을 가진 여학교에 다닙니다. 그런데 학교교육에 있서 아무리 종교선전을 목적으로 한 것일지라도 교육의 교육으러소의 다른 목표가 잇는 것이니깐 종교 그 물건과 혼동하지 말엇으면 하는게 입니다.
교과서에 종교선전문성경이 무슨필요가 잇슴낫가. 이거슬 교과서 중에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알고 이것에 점수가 적으면 막우 함부로 성적을 낫부게 합니다. 또 예배당에 아니가도 조행에 병정을 줌니다. 이거시 무슨 모순입닛가.학교와 종교와의 절대 연대관계가 잇는 것이 아닌 이상 웨 교육에 종교를 혼동하여 가지고 강제로 학생을 신자로 만듬닛가. 종교는 자유가 아님닛가.누구나 밋고 십흐면 밋고 아니 밋고 십흐면 그만인거신대 이거슬 한데 서꺼가지고 학생을 괴롭게 하는 그런 교육방침을 좀 개혁하여 주엇스면 다시 소원이 업슬 것 갓슴니다."48)
(2) 생활훈련
또한 학교가 언제까지나 설립 선교사들에 의해서 비기독교적이라고 규정된 것을 배제하고, 소위 기독교적인 교육방침,학칙을 밀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었다. 1920,30년대의 비미션계학교의 맹휴사건이 주로 항일운동었음에 비해 미션계학교의 맹휼는 학교당국의 방침에 대한 반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아 이런 문제들이 잘 해결된 것 같지가 않다.
예를 들어 1923년에 일어난 숭의여학교 맹휴사건의 발단은 조상 숭배를 미신으로 치부한 학교당국에 의해서 야기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해 추석날 이동옥이라는 학생이 세상을 떠난 친구 한숙원이란 학생의 묘에 성묘가자고 친구들에게 권유를 했고,그 권유를 받은 기숙사생 몇 사람이 나사감 선생에게 외출허가를 요청하는데 사감이 이를 거절한 데서 생긴 것이다. 이에 분격한 학생들이 선우교장에게 허락하기를 간청했으나 교장은 대체로 성묘라는 일은 불신자의 관습이라고 단정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평소부터 사감 선생에 대하여 품었던 불만-교육이 아니라 감옥에서 죄수를 다루듯 한다 하여 불평이 많았던 터이고 더구나 교장마저 학생들의 사생활을 이해 못하고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극도의 불만과 분개를 누를 바 없어 드디어 창립기념일을 앞에 둔 10월 15일을 기하여 일제히 동맹휴학에 들어갔던 것이다.49)
이러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동맹휴학은 그 동안 누적되어 왔던 불만을 터뜨리게 하는 발단이 되었다. 그 당시 동아일보 10월 18일자 기사에는 동맹휴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도를 싣고 있다.
"평양숭의녀학교학생 중 오학년생 이십삼명을 제외한 일백이십오명 전부는 지난 십오일 오후 한시부터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엇던 소원을 학교당국에서 들어주지 아니한다고 불평을 말하며 대부분 행장을 수습하야 본향으로 도라가버리엿다는데 동학교는 본래 예수교장로회의 경영인 중등뎡도의 학교인바 학생측에서는 항상 무엇보다도 기숙사 규측이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을 말하야 오다가 지난 십이일에 기숙사학생 일백명과 기타 몇몇 학생의 명의로 세가지의 요구조건을 들어 학교당국에 청원서를 뎨출하얏다.그 조건으로 말하면
一.동학교는 총독부 지뎡학교로 하야 줄 일.
二.긔숙사 규측을 개뎡하야 줄 일.
三.긔숙사 감독 라진경을 사면케 할 일.
등인데 동학교에서는 곳 리사회를 개최하야 의론할 터이니 삼일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후 십오일에 니르러는 학교를 총독부 지뎡학교로 하랴면 긔본금이 부족하니 이 부족익을 보충할 때까지는 학생의 요구를 들을 수 없으며 기숙사 규측 개뎡은 교장되는 선우리녀사가 미국에 갔다 도라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회답을 하얏스나 학생들은 도저히 하로라도 참고 잇슬 수 업다하야 전긔와 가치 휴학을 하고 말은 것인데 오학년생 이십삼영뿐 통학하는 중이며 문뎨의 해결은 도시 망연하게 되얏다더라(평양)."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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