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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 클라라 비달

Joyfule 2012. 3. 5. 21:32

 

나쁜 엄마/클라라 비달 (지은이), 이효숙 (옮긴이) | 메타포

 



 

애증이 교차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한 감정, 특별한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모녀 관계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 멜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엄마 밑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폭력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런 엄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멜리는 불안증세를 보이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멜리의 엄마는 요리도 잘하고, 친구들이 보는 데선 멜리와 잘 놀아 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지나칠 만큼 애정 표현을 하는 '완벽한' 엄마다. 한편으론 멜리를 안아 줄 때 숨막히게 하고, 자신이 기분 나쁘고 아픈 탓을 멜리에게 돌리며, 멜리가 여자로 성숙하는 증거인 2차 성징을 못마땅해 하는 '나쁜' 엄마다. 그러나 실상 그 자신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약한'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바는 흐지부지한 태도로 그저 "좋아, 좋아. 그렇게 해서 애가 좋아진다면야."라고만 했다.
'아니, 말도 안 돼!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자기 딸을 두 달 동안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보내다니!'
"그 요양소가 도대체 뭐예요? 난 거기 가고 싶지 않아요. 난 괜찮다니까요. 밥 먹을게요. 두고 보세요. 살도 찔 거라구요. 거기 가기 싫어요."
멜리는 용기 내어 고개를 들고 정신 나간 사람철머 보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렇게 처방을 내린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야. 넌 건강이 안 좋아. 그게 누구 탓이니, 응?"
엄마는 멜리의 말을 냉정하게 받아쳤다.
멜리는 수치심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몸이 마른 것에 대한 수치심. 키가 자라지 않는 것에 대한 수치심. 건강이 나쁜 것에 대한 수치심.
"두 달은 금세 지나간단다..."
아빠는 막연하게 위로의 말을 하려 했다.
멜리는 온몸을 흔들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엄마는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엄마는 멜리를 방으로 데려가 진정시켰다.
"아프면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한단다.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지금 그 꼴을 하고 있는 너를 딸로 두는 게 우리한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 본문 49쪽에서



클라라 비달 (Clara Vidal) -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영어 교사로 일했다. 작사가이자 작곡가이자 가수로서 앨범을 여덟 장이나 냈으며,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소설, 희곡, 그림책,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이효숙 -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불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일경제신문, 출판저널, 한국여성개발원을 거쳐, 2008년 현재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법의 분필>, <까미 시리즈>, <손가락 기린>,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안녕! 생텍쥐페리>, <레 미제라블>, <피에르 신부의 유언>, <어린 왕자>, <아무것도 아니야> 등이 있다.

멜리처럼 '엄마의 병' 때문에 고통 받는다면, 속이 뒤틀리고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운 구역질이 나게 된다. 하지만 이 병을 치유할 길은 멀고도 멀다. 왜냐하면 엄마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헤쳐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쪽은 오히려 상처 받은 아이다. 그뿐이다 하지만 그 길은 어마어마하다. 끝없는 바다처럼 망망하고 엄청나면서도 생생하니까. - 클라라 비달

    

멜리는 엄마가 쌍둥이라고 생각한다. 언행이 거칠고 포악하고 병약한 ‘검은 엄마’와 상냥하고 따뜻하고 건강한 ‘분홍 엄마’가 멜리를 나눠서 키우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멜리는 검은 엄마를 동정하고 분홍 엄마를 동경하며 자라는 동안,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눈치를 보며 왜곡된 성격을 갖게 된다. 결국 멜리는 검은 엄마를 몰아내고 분홍 엄마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각종 주문과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멜리의 엄마는 예쁘고 자상해 보여서 주변 사람들은 멜리가 좋은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며, 멜리의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혹 모녀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눈치 채더라도 민감한 가정사라 치부하며 모두 그 순간을 모면하려 애쓸 뿐이다. 멜리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서 점점 비정상적이 되어 가고, 참다 못해 외할머니에게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엄마를 옹호하기에만 급급해 오히려 멜리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자, 멜리는 그 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재수 없어!”라고 되받아치며 반항한다. 그리고 새로운 상담교사를 만나러 가는데, 그전과 달리 상담교사는 엄마가 아닌 멜리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멜리에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려 한다.

    

엄마는 왜 나쁜가?
-“엄마, 그 이름은 더 이상 따뜻하고 희생적인 표상이 아니다.”

“학교라, 사람들은 언제나 학교를 들먹거린다! 어른들은 뭔가 안 좋은 일은 학교에서 생겨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당연하겠지. 성적이 안 좋다거나 친구와 싸운다거나 하는 일들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까.” -본문 중에서

신체학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 ‘그 집 아이가 학대받고 있구나.’란 사실이 집 밖에도 알려지지만, 집 안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학대는 ‘다른 사람이 상관하기 어려운 그 집 사정’에 속한다. 신체학대보다 그 피해가 4~5배 이상 심각하다는 정서학대는 학대 사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더군다나 학대받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15세 이하로 물리적ㆍ심리적으로 자기 방어 능력이 미약하다. 따라서 이런 경우, 아이들은 학대받을 뿐만 아니라 학대받아 마땅한 ‘나쁜 애’ 취급을 당하게 된다.
『나쁜 엄마』의 멜리는 두 얼굴의 엄마에게 정서학대를 당하며, ‘못된 애’, ‘이상한 애’ 취급을 받는다. 멜리에게 엄마는 결코 따뜻하고 희생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춘기에 막 다다른 딸의 아름다운 성숙에 대해 병적인 경쟁심마저 보이는 엄마에게 멜리는 끝없이 억압당한다. 그런 엄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멜리는 불안증세를 보이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멜리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나쁜 엄마’를 인정할 것이냐, ‘나쁜 아이’로 남을 것이냐, 이제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딸은 어떻게 견디는가?
-“세상의 딸들은 자라서 또 엄마가 된다.”
멜리의 엄마는 요리도 잘하고, 친구들이 보는 데선 멜리와 잘 놀아 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지나칠 만큼 애정 표현을 하는 ‘완벽한’ 엄마다. 한편으론 멜리를 안아 줄 때 숨막히게 하고, 자신이 기분 나쁘고 아픈 탓을 멜리에게 돌리며, 멜리가 여자로 성숙하는 증거인 2차 성징을 못마땅해 하는 ‘나쁜’ 엄마다. 그러나 실상 그 자신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약한’ 엄마이기도 하다.
『나쁜 엄마』를 읽으면 책 속 설정이 왠지 낯설지 않게 여겨진다. 왜냐면 우리의 엄마들이 모두 완벽하기를 추구하지만, 좋다가 나쁘다가, 고맙다가 밉다가, 강하다가 약하다가를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이 모든 상황에서 엄마는 ‘엄마’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사악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슈퍼맨이나 천사일 필요도 없다. 문제는 엄마가 나쁠 때 ‘엄마 나빠!’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강당하기 버거운 엄마의 변화나 감정을 아이 혼자 책임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멜리는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쁜 엄마’를 인정했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치유의 길이 열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멜리는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며 결국 자신 또한 엄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될 가능성과 운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엄마』는 사생활이라고 여겨져 본격적으로 다루길 꺼렸던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부각시킨 문제작이다. 또한 아주 특별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보편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세밀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 냄으로써 가족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그러면서 애증이 교차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잘 포착해, 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심리가 독자들의 마음에 전율을 일으킨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나는 분홍엄마인가 아님 검은 엄마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멜리의 엄마처럼 분홍빛의 상냥한 엄마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검은빛의 악독한 엄마로 변하기 때문에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마음이 불편했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멜리에게는 엄마가 둘이다.”로 시작하는 문장은 낳은 엄마와 길러준 엄마가 각각 따로 인 아이가 겪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엄마와 살고 있는 멜리의 고통을 아이의 입으로 풀어간다.

멜리 엄마의 병명이 정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엄마로 느껴진다.
일괄적이지 못한 엄마의 양육태도와 그로 인한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은 아이가 겪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편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며 스스로도 고통스러울 멜리 엄마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기도 하지만 혼자서 아파하는 멜리 역시 자꾸만 아프게 다가온다.

방학을 혼자 요양소에서 보내고, 나오기 시작한 가슴을 자랑할 수도 초경을 함께 기뻐할 수도 없는 멜리는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점점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며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멜리가 엄마를 잘못 이해한 것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가장 편안하고 언제 불러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게 엄마이다.
하지만 나 자신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이기 전에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한다.
멜리의 엄마가 자신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의논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멜리의 모습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 혼자가 아니라 아빠와 가족 그리고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자, 들어오렴. 난 엘렌이란다. 네 이름은 뭐지?”라는 정신과 의사의 한마디에서 희망의 빛을 느꼈듯이 멜리의 인생에도 한줄기 빛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