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짐을 전부 맡기면 가볍다는 말씀의 참된 본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네 짐을 내게 모두 맡기라는 성경 구절을 사람들이 참 좋아합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본질을 오해하여 모두 맡기라고 했더니 거룩한 삶이고 뭐고 모두 힘든 것이니
이를 모두 내려놓고 부담 없이 세상 흐름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
육신의 부담을 주님께 모두 떠넘기는 것쯤으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과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육적으로 방종해도 주님께서 무거운 짐을 다 맡기라고 하셨으니까
영적 태만함과 육적 방종이 보혈 피로 다 용서되고 괜찮은 줄 압니다.
악한 육의 속성을 내려놓으라는 것인데 오히려 주님의 말씀(계명)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편리하게 해석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분들은 주님 말씀의 본질을 크게 오해하였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가령,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났는데 전도나 봉사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없이 방종의 삶을 자유함으로 착각한 사람의 눈에는 저 사람은 왜 저토록 어렵게
신앙생활 하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든지 행위 믿음이 지나치다고 손가락질하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고 냉소합니다.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거듭난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이런 모습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자유함이 없어 보입니다.
왜 저렇게 불교처럼 행위로 공덕이나 쌓으려 하냐며 질타합니다.
행위 믿음으로 보여 안타깝다 하면서 은근히 참소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사람에게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계시겠습니까?
성령님은 반드시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그리고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성령으로 함께하는 사람을 통해 반드시 일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 의와 노력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고 고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로만 했다면 그 짐이 너무 무거워 얼마 안 가 제풀에 지쳐버립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육적으로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힘들지 않으며 아주 즐겁고 힘이 납니다.
영적으로 아주 기쁘고 자유함을 느끼며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사장님으로부터 일을 받았는데 그 일이 내가 원치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언제까지 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사람은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려니 참으로 죽을 맛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꼭 해야 합니다.
참으로 자유함이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정말 억지로 합니다.
이 분은 심적인 속박 속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이 일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힘든 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까지 불면서 기쁘게 합니다.
몸은 약간 힘들어도 마음이 즐거우니 피곤함이 없습니다.
이 분은 심적인 자유함 속에서 즐겁게 일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음의 차이가 속박과 자유함을 가름한 것입니다.
이해가 편하시도록 일상생활의 예를 들었지만, 이 마음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 중요한지 이 글의 결론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두 남자가 있었는데 한 남자는 여자에게 덕 좀 보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만날 때마다 인위적인 미소가 가득하지만, 실제 사랑하지 않기에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덕 좀 보려는 의지 하나로 억지로 만나며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남자의 마음속에는 자유함이 없고 속박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남자는 그냥 이 여성이 무조건 좋은 겁니다.
다른 이유와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이 여인 그 자체 모든 것이 좋아 사랑합니다.
이 여인을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힘들지 않고 즐겁습니다.
이 여인을 위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려고 시도할 정도입니다.
이 여인을 위함이라면 자기 생명이라도 바치고 싶을 지경입니다.
만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두근거리는지 너무나 행복에 겹습니다.
이 남자는 부담 없는 자유함의 마음이 항상 있는 것입니다.
위 두 남자는 여인을 대하는 태도는 외형으로 보면 같아도
그 속마음의 차이에 따라서 속박과 자유함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역시 예를 들었지만, 이 마음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 중요한지 이 글의 결론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듭남도 없이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서 주님의 말씀을 이것저것 다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지키라고 하는 모든 말씀이 보통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마음에는 자유함이 없고 속박 속에 종교 생활을 합니다.
진짜 무슨 고행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니 내 힘과 의지로만 하려니 힘들게 됩니다.
모든 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에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짐은 주님과 함께함으로 인해 가볍습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드립니다.
내 이웃 형제들을 주님처럼 사랑하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하면서까지라도 내 이웃 형제들을 돌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는 사랑하는 방식이기에 심적으로 힘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듭나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먹고 마시며 동고동락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 혼, 육을 변화시키십니다.
육적인 우리의 악한 마음을 모두 녹여버리고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을 그 자리에 심어넣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육적 옛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6-27절)
이 성경 말씀이 위에서 예를 들어 말씀드린 글의 결론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옛 마음을 제거해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주님의 성품)을 그 속에 있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운 것이 되어 지키지 말라고 해도 지키려는 마음이 들도록 하십니다.
냉하고 게으른 영적 마음이 변하여 뜨거운 열정으로 바꿔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시기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거듭난 성도가 걷는 길을 행위 믿음이라고 냉소한다면 그 사람을 욕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주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이 거듭남이 없기에 거듭남을 이해 못 하는 자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누워서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행위입니다.
거듭남 없이 하나님을 아는 이론만 가득한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론 자체가 믿음이 아닐뿐더러 그분들을 구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거듭나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지 더이상 나가지 못하고 아는 지식에만 머물러 있으면
사랑도 없이 남을 훈계하고 정죄하는 교만의 도구로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한복음 14장 24절)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알기 쉽게 해석하면...
"사람이 거듭나면 내 말을 지킬 것이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지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거듭남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내 이웃 형제도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사람 안에서 하시는 일은 단발적이지 않고 지속적입니다.
그 안에 즐거운 마음이 들게 하여 기쁨으로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은 무거운 짐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볍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대신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육적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지는 것으로 보이나, 영의 세계에서는 주님이 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짐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기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행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주님은 너희의 짐을 모두 내게 맡기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거듭난 자에게 멍에가 될 수 없고 부담스런 무거운 짐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아)
내가 너희의 짐을 가볍게 하여 쉬게 하리라(거듭나게 하리라)"
이 말씀은 결국... 가난한 심령이 되어 간절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성령을 구하여 받으라는 주님의 애타는 표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짐(주님의 말씀)이 무겁길 바라시지 않습니다.
짐을 가볍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면(간절한 회개) 그리 해주시겠다는 단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무거운 짐이 되어 고통이 아닌,
가벼운 짐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가는 거듭난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곡히 권면 드립니다.
랑별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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