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주변 사람들 - 다윗의 신하 요압
요압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다윗의 여동생 스루야의 차남이었다(대상2:15-16절). 그는 사울 왕에 의해 고난을 당할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다윗을 따랐다(삼상26:6절). 유다 지파도 할 수 없이 버린 다윗을 그가 따른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나 확신이 그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윗의 가까운 인척으로서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할 수 없어 다윗에게 합류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충성하며 헌신했다. 온 이스라엘의 초청에 따라 다윗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여부스인들이 시온 성을 점거하고 있었다. 이 성을 요압이 제일 먼저 점령했고 다윗의 약속대로 그는 다윗의 첫 번째 군대장관이 되었다. 이 산성은 나중 시온 성 또는 다윗 성이라 불렸고(삼하5:7절) 이 성을 요압이 또한 중수(重修)했다(대상11:8절). 이 성은 다윗 왕국을 세우는 데 있어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렇게 요압은 다윗 왕국을 세우는 일에 있어 일등 개국 공신이었다.
사울 왕의 죽음 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유다 지파 이외 지파들을 다스렸다. 이 때 다윗을 대표하는 요압의 군대와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의 군대 사이 싸움이 있었다. 그의 동생 아사헬이 희생을 당했지만 이 중요한 싸움에서 요압이 승전했다(삼하2:14-17절). 그는 갓 탄생한 다윗 왕국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동족에게 알렸다.
그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전하여 다윗의 이름을 날려주었다(삼하10:13-14, 12:26, 왕상11:15-16, )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놀라운 신앙 자세가 그에게 엿보인다.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삼라10:12절)
그리고 암몬 자손의 왕성인 랍바를 점령할 때 그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갈 것을 염려한 요압은 이렇게 다윗에게 보고했다.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삼하12:27-28절) 그는 대단히 충성스런 신하임에 분명했다.
그는 다윗의 비위도 잘 맞추는 지혜와 지략을 지닌 신하였다. 압살롬이 왕자의 난(亂)을 일으키고 도망갔다. 그러나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함을 알고 그를 다윗에게 데려다 주었다(삼하14장). 이를 위해 그가 쓴 꾀는 그가 대단한 지혜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2-3절). 다윗도 이를 잘 알았다(19-20절).
아주 중요한 사실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압살롬의 반역에 그가 동참하지 않고 처량하게 도망 갈 수 밖에 없었던 다윗을 끝까지 따랐다는 것이다(삼하18:1,2-5절). 압살롬과의 개인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어 아주 쉽지 않은 처지에 놓였지만 요압은 변함없이 다윗에게 충성했다. 이 점에서 그는 다윗의 아들들과 달랐다.
압살롬의 난이 진정되는 과정에서 다윗에게 충언을 하여 자칮 분열될 수 있는 이스라엘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요압이 또한 했다(삼하19:5-7절). 압살롬의 난이 진정된 후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난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때도 이를 평정하는 일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삼하20:20-21절). 이 공로로 그는 이스라엘의 온 군대장관이 되었다(23절).
그리고 이후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라고 잘못 명령했을 때 다윗에게 불순종함으로(대상21:6절)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삼하24:3-4절).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용맹한 장군이면서도 지략(智略)을 겸비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해 다윗에게 충성했다. 하나님의 말씀도 믿고 지키려는 진지한 신앙 자세도 보였다.
이런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신자들은 교회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교회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앞장 서서 일하고 목회자에게 충성하는 신자들이다. 이런 신자들을 목회자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신뢰를 얻으며 더 많은 일을 맡는다. 이들의 헌신과 충성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에 기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재능이 지나치다 보니 다윗에 대한 믿음보다 자신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반드시 성공을 가져다 주는 자신의 재능에 도취되어 자기 만족을 위해 다윗을 열심히 따른다. 다윗이 그를 신뢰하여 계속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윗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면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이 요압에게 보였다.
여기 긍정적 면은 다윗에게 지극히 충성했다는 것이라면 부정적인 면은 다윗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불충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온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기고자 했다. 다윗을 만나 합의한 후 합의 사항을 이행하려고 돌아갔다. 이를 알게 된 요압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에게 복수할 목적으로 그를 죽였다(삼3:27절). 동생을 죽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일등 공신이 되는 것을 그가 막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중 이를 안 다윗은 노했고 그를 저주하기까지 했다(28-29절).
요압이 개인의 복수심과 공명심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 되는 중대한 일을 그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소문이 난다면 온 이스라엘이 같은 복수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다윗에게 복속하기를 꺼릴 것이다. 이로 보아 그는 하나님 나라의 일보다 개인 일을 더 앞세운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아브넬이 다윗을 위해 큰 공헌을 세운다면 자기 위치가 약화될 것을 염려하여 사전에 제거했을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 나라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운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했다.
다윗에게 불순종하는 사건이 또 있었다. 압살롬의 난이 진정될 때 다윗은 자신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안전이 염려되어 장군들에게 그를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명했다(삼하18:5절). 이를 알면서도 요압은 긴 머리 때문에 나무에 걸려 꼼작 못하는 압살롬을 무자비하게 죽였다(삼하18:14-17절).
압살롬이 살아있다면 자신의 출세에 방해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모른다. 일단 아버지의 신뢰에서 벗어난 압살롬은 앞으로 다윗의 2인자가 될 수 없음에 분명했다. 그렇다면 과거 그와의 맺은 긴밀한 관계가 오히려 요압의 장래에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판단한 요압은 사전에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반역한 원수이지만 아들이기도 한 압살롬을 또 다시 용서하고 받아드리려 했을 것이다. 다윗의 이런 마음을 알았다면 신하인 요압은 당연히 압살롬을 살려야 했다. 다른 한편 다윗의 그런 마음은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이 반역자를 철저히 복수하는 그런 이방 나라와 같지 않음을 보이려는 경건한 의도를 숨겼을 것이다.
오랜 동안 다윗을 핍박한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이 오히려 그를 슬퍼한 일을 요압은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이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들과 완전히 다름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다윗의 충성스런 신하였던 요압은 이를 배우고 실천해야 했다. 그는 이런 모든 것들을 두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는 또 다시 다윗을 거역했다. 압살롬의 난이 진정된 후 세바의 난이 발생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다윗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세웠다. 아마사는 요압의 어미인 스루야의 동생 아비갈이 낳은 아들이었다. 아마사는 요압처럼 다윗의 조카로 이종 사촌 형제였다. 그러나 아마사는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군대장관이기도 했다(삼하17:25절).
그렇다면 그런 아마사를 왜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다윗은 세우려 했을까? 요압이 그 동안 자라 세력이 너무나 막강했다(삼하3:39절 참조). 이제 다윗도 어쩔 수 없을 정도였다. 그를 견제시키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했다. 아마사는 이런 목적으로 세워졌다. 요압이 이를 용납할 리 없었다. 그는 세바의 난을 진정하는 과정에서 아마사를 다윗 몰래 제거했다(삼하20장). 그렇게 그는 평화의 시대 불필요한 피를 두 번씩이나 흘리는 살인을 저질렀다. 대안이 사라지자 다윗은 할 수 없이 그를 군대장관으로 다시 세웠다(23절).
요압은 자신의 출세를 막는 자라면 자신의 혈족이라도 무자비하게 제거할 수 있는 준비가 늘 되어있는 군인이었다. 그 동안 그의 악행들은 오히려 출세와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요압은 이에 맛들였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 반드시 오는 결정적인 계기에 비극을 맞을 것이 분명했다.
다윗도 노년에 이르렀다. 이를 본 요압은 다윗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권세와 영화를 보장받고 싶었다. 이를 위해 요압은 다윗의 넷째 왕자인 아도니야를 선택했다. 이 당시 다윗의 아들들 중 그가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다. 장남 암논과 삼남 압살롬은 이미 죽었고 차남 길르압은 그렇게 적합한 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군인인 요압의 눈으로 보기에 다섯째 솔로몬은 넷째 아도니야에 비해 문약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이 때쯤 아도니야도 왕권에 대한 욕심을 내며 자연스럽게 요압을 만났고 제사장 아비아들을 끌어들여 아버지 다윗의 뜻도 모르면서 왕위를 선포하려고 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장악한 요압의 후원과 제사장의 승인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다윗이 쥔 왕권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아도니야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수와 잘못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에 근거를 둔 하나님 나라임을 잊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과 선택이 없다면 다윗의 혈통적 후손이라도 마음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일부로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폭력을 이용해서라도 왕권을 강탈하려 했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물론 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 후 아도니야의 일로 인해 요압도 죽임을 당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왕상2:28절) 그의 비극과 불행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성경은 잘 설명한다. 그는 다윗에게 최선의 충성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였다. 결국 다윗에게 보인 충성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이었다.
요압처럼 다재다능한 목회자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이들은 목회에 성공한 유능한 목사들이다. 이들은 작은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큰 것을 선택하고 그 겨로가 많은 유익을 얻으려 한다. 그 영광과 영화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충성은 주님을 위한다기보다 자기 만족을 위한다. 목회가 성공해야 자신의 능력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자들에게 발견되는 특징은 삼손처럼 자기부정(自己否定: self-denial)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능함이 결국 이들을 서서히 파멸로 인도한다.
그리고 신자들 가운데서도 유능한 제직들이 발견된다. 이들은 성공한 목회자에게 지극히 충성한다. 큰 교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그 결과 칭찬과 명예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해 교회에서 충성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권력 이동이 생기면 이들의 자세도 하루 아침에 달라진다. 계속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후임자에게 더 가까이 한다. 전임자에게 충성한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탐심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춘 후 그리스도와 교회에게 열심히 충성하는 목회자를 비롯한 제직들은 큰 교회에 얼마든지 있다. 때때로 이런 교인들이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아주 혼란스럽게 만든다. 교회에서 인정받은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그리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를 피하려면 다재다능한 제직일수록 개인 욕심이나 탐심을 버리는 자기부정에 더 힘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해 관계를 극복하고 어떤 여건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따르도록 늘 훈련시켜야 한다. 일단 욕심과 탐심에 사로 잡히면 헛것이 진짜처럼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비롯한 신자들은 양들처럼 근시안이라 자기 마음의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을 진짜로 믿는다. 이렇게 욕심과 탐심은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자기부정이 신앙 삶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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