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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속의 은혜를 절절히 깨닫고 있는가?

Joyfule 2014. 8. 12. 13:53

 

 

 

당신은 구속의 은혜를 절절히 깨닫고 있는가?|

신상래 목사

 

프로 스포츠 구단의 감독은 대부분 스타선수 출신이다. 왜냐면 스타선수들은 이미 선수로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기는 지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경기에서 이기는 법도 알고 몸 관리 하는 법도 알고 마음을 다스릴 줄도 안다. 이는 책을 읽고 세미나를 듣고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체육학을 전공한 대학교수가 해야 되지 않을까? 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체득하여 대학의 교수자리에 앉아있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학문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체득한 것은 다르다. 그래서 프로 스포츠 구단의 감독은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능력은 초라하기 그지 않을 것이다. 설사 대학을 나왔다하더라도 쉬운 영어 단어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이러한 일이 교회에도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공동체이다. (필자가 써놓고 보아도 참 멋진 표현이다.ㅎㅎ) 기독교의 모체는 유대교이다. 유대교는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한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믿는 종교이다. 두 종교의 구심점은 야훼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는 것이 확연하게 다르다.

유대교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황금의 문을 열고 올 메시야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메시야가 와서 천국의 문을 열어 놓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천국에 올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할렐루야!

그래서 당신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악에 물든 인간들과 멀어진 관계를 이어지게 해준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해 우리는 죄가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복음으로 말이다.

 

이는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의미를 가슴 깊은 곳에 깨닫고 살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에서 하도 많이 들어 알고는 있지만 절절히 깨닫고 있다고 하기에는 2% 부족하지 않은가? 아니면 2%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슴 속에서 절절히 깨닫고 있다고 하는 것과 머리로 믿고 있다는 차이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로 명백하게 나타난다. 내적증거는 십자가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고맙고 감사함으로 가슴이 저려오고 뭉클해져야 한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을 떠올려도 여전히 건조하고 담담하다면 당신은 단지 머리로 믿고 있는 것이다. 외적 증거는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당신의 삶에서 생생하게 드러나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의 상징하는 것은 죄를 용서함 받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가 눈 녹듯이 사그라지는 현상을 날마다 체험해야 한다.

 

아하 그거요? 그럼요. 날마다 죄를 회개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남아 있는 죄가 없어요.” 그렇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죄가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시기 바란다. 죄는 우리의 인생을 망치고 삶을 불행하게 하며 고통을 주는 원흉이며 생명과 영혼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다. 악한 영은 덫을 놓고 이 죄에 걸려드는 자들을 죄다 포로로 삼고 조종하여 삶을 파멸케 하고 종국에는 지옥으로 끌고 간다.

당신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누리며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행복하며, 성령과 동행하므로 놀라운 영적 능력을 받아 당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에 죄악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악령에게서 건져주는 하나님의 소중한 도구로 쓰이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구체적인 증거를 조목조목 들이대는 필자가 못 마땅하겠지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죄가 없는 증거가 객관적으로 드러나야 진짜로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면 보혈의 능력이 아직 당신에게는 없다는 증거이다. 보혈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죄를 용서하는 영적 능력이 내려오는 통로이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들어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선물과 은사가 넘쳐나게 된다. !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벅차오른다. 그래서 보혈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당신이 하는 신앙행위는 무엇인가? 사실은 여기서부터 바위투성이의 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과 같이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탁월한 영적 지도자의 지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당신 교회의 담임목사는 프로스포츠 구단의 스타 감독처럼 영적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충분한 경험을 갖고 당신의 삶과 영혼을 잘 이끌어주고 가르쳐 주고 있는가? 아니면 대학의 체육학과 교수처럼 지식은 많지만 구체적인 경험과 체험이 없어 말로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아요?” 그것은 가르치는 걸 보면 안다.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와 종교의식을 반복하면서, 믿으라고 다그치는 목사라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은 실전에 약하다. 악한 영과 싸울 만한 영적 능력도 없고 영안이 뜨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주구장창 열심히 믿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십자가 보혈의 의미를 가슴에 절절히 깨달을 수 있는가? 먼저 자신에게 십자가 보혈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 필요를 절실하게 느껴야 할 것이다. 필요를 느끼지 않는데 왜 찾으러 다니겠는가? 십자가의 보혈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은 다름 아닌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돕는 자’(helper) 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를 깨닫는 것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예배의식을 반복하며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이수한다고 알아지는 게 아니다. 보혜사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런 이후에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희생을 떠올리며 보혈의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해야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기도의 깊이가 깊어지면, 드디어 그 사건이 말씀에서 뛰쳐나와 눈앞에 생생하게 재연된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다는 게 가슴속 깊이 믿어지기에,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뭉클해지고 넘쳐나게 된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지며 가슴이 짠해진다. 그러면서 보혈의 의미가 점점 깊이 깨달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한 기도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그래야 한다.

필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면 성령의 내주를 간절하게 요청한다. 그래서 10~20분 정도 지나서 기도가 몰입이 되기 시작하면 으레 십자가 사건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 장면을 상상하고 기도한다. 그러면 그 장면이 가슴을 격앙시키고 마음을 뭉클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해서 입에서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깊이 깨달으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언제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며 내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는 기도를 매일 매일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보혈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와야 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고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알고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보혈의 능력이 자신의 삶과 영혼에 드러나지 않은 이유이다.

당신의 교회의 목회자가 이런 기도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당신만은 꼭 이런 기도를 날마다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생명이 당신의 가슴에 새겨져야 천국의 자격이 주어지며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하는 정예 용사로 하나님의 귀한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