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양식은 무엇인가?
신상래 목사
요즈음은 양식이나 식량 등의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양식이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갖추어야하는 필수품이다. 사실 100여 년 전의 구한말시대만 하더라도 가장은 가족을 굶기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굶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조선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점심(點心)이란 말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먹지 않고 지낸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하루 두끼의 식사를 했다. 일찍 일어나 노동을 해야 하니까 아침밥은 먹지만 점심은 거르고 저녁 일찍 먹고 잠자리에 든다. 너무 늦게 자면 배가 고프니까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잠도 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점심이 일상화 된 게 근대시대가 들어와서부터니까 우리네 조상들은 늘 양식부족에 시달려 주린 배를 움켜쥐며 고단한 삶을 살다 이 땅을 떠나갔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양식걱정을 잊은 지 오래다. 노숙자도 굶어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양식걱정 대신에 돈에 대한 걱정이 생각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먹고 사는 일은 걱정 안하지만 부자가 되어 많이 쌓아두고 싶고, 그 돈으로 쾌락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게 그들의 속내일 것이다. 조상들이 현대인의 걱정을 알게 되었다면, 배부른 소리한다며 혀를 쯧쯧 찰 노릇일 게다. 그러나 시대는 엄청나게 바뀌었고 사람들의 생각도 빛의 속도로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굶어 죽을 일이 없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행복한가?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먹을 게 넘쳐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양식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조선시대의 조상들에 비해 우리네 사람들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떡 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자, 시험하러 왔던 사탄이 배가 고픈데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며 기도하라고 하자 대뜸 던진 말씀이 위의 성경구절이다. 떡이라는 말은 빵을 번역한 단어로, 양식을 함축해서 사용한 말이다. 사람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양식이 충족되는 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해석임을 다 아실 것이다. 육체는 빵이 있어야 유지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육체에 필요한 양식을 채우고 쌓아두는 일에는 열심인 이들도, 영혼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일에 소홀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 이유는 영혼이 배가 고픈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밥을 한 끼라도 굶으면 육체로부터 고통이 전해지기에 누구나 알게 되지만 영혼이 굶주린 것은 영혼의 상태를 깊이 살펴보는 자만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의 창은 마음이고, 마음의 창은 생각이다. 성경은 영혼과 마음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고, 마음과 생각을 교차하며 쓰고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상태를 잘 모른다면 마음의 상태를 알아보면 된다.
평상시에 당신의 마음의 상태는 어떤가?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만족스러운가? 아니면 어둡고 불안하고, 걱정과 근심에 가득차고,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목말라 있는 상태이다.
말하자면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당신은 영혼이 말라가고 죽어가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처방을 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 진통제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진통제를 준다는 것은 불안한 영혼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모든 행위이다.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며 음란의 쾌락에 빠지고 일에 몰두하고 과도하게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하는 것에서 차츰차츰 중독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현상은 마치 진통제의 양을 늘리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술을 조금 마시지만 매일 마시게 되고, 처음에는 약간 취하지만 만취하는 날이 늘어난다.
돈을 버는 것에도 끝없이 쌓아두는 탐욕이 바로 중독된 것이다. 이처럼 게임, 주식, 취미, 쇼핑, 운동 등 영혼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쾌락을 주는 진통제를 맞으러 다닌다. 그렇지만 이런 진통제는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다. 진통의 효과가 끝나면 다시 영혼이 공허하고 냉랭하고 우울하고 염려와 걱정이 찾아든다. 그래서 또 다시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 말하자면 진통제의 포로가 된 셈이다. 이런 현상을 사람들은 중독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에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알코올을 섭취하여야 한다. 술의 포로로 잡혀 있는 불쌍한 영혼이다. 알코올 뿐 아니라 담배, 쇼핑, 주식, 포르노, 게임에 중독된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은 돈에 중독이 되어 있어 돈을 쌓아두어도 만족이 없기에 죽는 날까지 돈을 벌어 쌓아둔다.
그러나 이런 진통제는 결코 영혼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잊게 해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이며 완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가 고장 나도 잘 고치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만드신 분이 영혼의 문제도 완벽하게 고쳐주실 수 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 채워야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게 설계 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게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시고 기도를 통해 만나신다. 그러니까 자신이 소원하는 목록을 외치는 방식의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닌 까닭이다.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기도를 해야 비로소 영혼이 쉼을 얻고 만족함으로 채우게 된다. 그래서 필자가 성령과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이유이다. 영혼을 만족시키는 기도는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셨다고 계속 내주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이틀만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도 지식으로 머리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가슴에 들어오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말씀이 쫀득쫀득해지고 기도할 때나 일상의 삶에서 문득 문득 생각나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태가 비로소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육체의 양식은 밥과 빵이지만 영혼의 양식은 기도와 말씀이다. 사람들은 육체가 배고프지 않기 위해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지만 영혼의 양식을 채우는 일에 소홀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늘 영혼이 주리고 목마른 현상으로, 마음이 늘 공허하며 건조하고 어둡고 두렵고 불안과 염려, 걱정과 염려로 살아가는 까닭이다.
지금이라도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가득 채우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땅에서 형통하고 평안한 삶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덤으로 얻는다. 지금 당신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가? 굶주리고 목말라 있는데 영혼의 양식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영양실조에 시달리다가 빈사상태에 빠질 것이다.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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