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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복(福)과 화(禍)가 있다.

Joyfule 2015. 1. 8. 21:44

 

 당신 앞에 복(福)과 화(禍)가 있다.

 

성경을 읽다보면 눈에 확 띄는 말들이 적지 않다. 위의 제목도 성경에 있는 말씀을 옮긴 것이다. 우리 앞에 복과 화가 있는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복을 선택하지, 화를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생각도 없고, 읽더라도 이런 말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마치 금광에서 금을 캐내듯이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 한다. 혹시라도 금맥을 발견했다면 횡재를 한 거나 진배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성경을 금광이라도 생각하지 않는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30:15~20)

 

다소 장황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성경의 말씀을 옮겨보았다. 15절과 19절에 복으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하토브’(posperity, 번영)브라카’(blessing, 축복)이고, 15절에는 화로, 19절에는 저주로 열거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화는 하라’(destruction, 멸망)이며, 저주는 하크랄라’(curse)이다. 복이라는 말은 번영이라는 말과 섞어 쓰고 있으며, 화는 저주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다. 단어를 좀 바뀌었지만, 본래의 뜻에는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복과 화가 놓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도 있고, 저주를 주실 수도 있는 분이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축복의 공급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한 셈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축복을 거머쥘 수가 있는지, 당신의 눈초리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내용은 그간 교회의 설교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내용이라 실망스러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다시 한 번 올려 드리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행하면 축복을 얻고 번영을 구가하게 될 것이고,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를 받게 되어 멸망당할 것이다. 이 내용은 당신도 잘 아는 내용이라고?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내용을 잘 모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조건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축복의 조건이 주일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 봉사를 하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며 담임목사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조목조목 나와 있다. 그것은 교회에서 정한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는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오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려고 애쓰며,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이,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행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신앙행위를 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나 목적, 속내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평일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며 살다가, 주일이면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경건한 모습으로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은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가증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와서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의 다른 신은 무엇일까? 다른 신은 불교나 힌두교 등의 타종교의 신만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죄다 다른 신이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신은 금이나 은으로 만드는 우상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맘몬신이다. 맘몬은 재물이라는 아람어로, 재물을 앞세운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탄은 재물을 앞세워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 불행에 빠뜨리고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 당신이 하루 종일 돈을 벌고 쓰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중이다.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는 불법과 불의를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고 있다면, 이 역시 돈을 섬기는 모습이다. 돈을 섬기는 속내를 버리지 않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찾아온다면, 이 역시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다른 신은 돈 뿐만이 아니다. 자녀나 육체의 쾌락, 명예나 권력 등도 얼마든지 다른 신이 될 수 있다. 음란과 불륜, , 도박, 게임을 즐기느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는 저주를 받아 생명과 영혼이 영원한 지옥의 불 가운데 던져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한 분으로 믿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든가 혹은 육체의 쾌락을 따르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 나와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한다고 착각하지 마시라. 하나님은 당신의 행위가 아니라 속내를 날카롭게 살펴보고 계신다.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 왜 평안과 형통함이 없었는지 찬찬히 곱씹어 보기 바란다. 당신이 생명과 축복이 아니라 화와 저주를 선택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