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령 물소리 - 安 貴 順
한국수필 8월 선수필 겨울호 선정
신새벽에 태산을 흔들며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듣고 있다. 지난밤 밤이 이슥하도록 달빛 샤워를 하며 향기롭게 몸단장을 하던 수목들은 안개를 휘감고 전신에 이슬을 매달고 있다.
여기는 좋은 풍광으로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대관령휴양림이다. 강릉에서 수필의 날 행사를 마치고 온 전국의 수필가들이 물소리 요란한 펜션에 짐을 풀었다. 긴 장마와 무더위 속에 먼 장거리 여행을 감행했으니 몸은 좀 나른하지만 그래도 귀한 자연풍경을 그냥 스쳐갈 수야. 지난밤 어둑한 숲에 들어설 때 맨발로 달려 나와 우리를 반겨준 우렁찬 물소리가 궁금하고, 태산을 지켜온 수목들과 그 속에 수줍게 피어 있을 야생화가 보고 싶었다.
살며시 일어나 가파른 언덕위에 오르니 좀 쉬어가도 좋다는 듯 팔각정자가 나른하게 졸리는 눈으로 손짓을 한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낭떠러지 아래로 속절없이 떨어지는 폭포수의 울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무작정 소리에 취해 신을 벗고 정좌하여 앉으니 숲속의 온갖 생명들이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다.
숲속의 정자는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무대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갑자기 절벽에 떨어지는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막막할까. 깨어지고 부서지며 멍들고 상처난 곳을 싸매고 치유해볼 틈도 없이 물은 허연 거품을 날리며 출렁출렁 흘러간다. 박하향기 같은 쏴한 바람이 가슴을 훑는다.
열하일기에서 호곡장(好哭場)을 쓴 박지원을 생각한다. 압록강을 건너고 작은 개울과 협곡을 지나다가 중원에 들어 일망무제로 확 트인 요동 벌을 바라보며 뱉어낸 첫마디가 인상적이다.
“참 좋은 울음터,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그가 태산을 흔들며 울고 있는 대관령 폭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야말로 마음껏 울어도 좋을 멋진 울음터라 할 것같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통곡한들 누가 말리겠는가. 바윗돌을 굴리며 호기 있게 절벽을 뛰어 넘는 용감한 저 물결은 인간의 슬픔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두어 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새벽바람에 성스런 자연 앞에서 청승맞게 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죄없이 부서지고 으깨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좌절은커녕 하얀 미소를 훌훌 날리며 흘러가는 저 물들의 생애야말로 우리네 인생여정을 보는 듯하다.
살다보면 별일도 많다. 깊숙한 인생의 골짜기에서 흘러온 생애를 돌아보면 한숨이 나온다. 느닷없이 다가온 삶의 낭떠러지가 어디 한두 번인가. 누구나 태초에는 수정처럼 맑고 상큼한 샘물이었으리. 촐랑대며 흐르는 천진한 개울이었고, 너와 나 정답게 손잡고 어울려 미워하고 사랑하며 둥둥 흘러가던 냇물이었고, 온갖 시름 안으로 삼키며 묵묵히 흘러간 강물이었다가 이젠 엄마의 바다에 이르렀다.
맑고 순해서 좋았던 맹물이 짜디짠 소금 맛이 되기까지 사연도 많다. 친구따라 멋모르고 뛰어든 재테크란 곳이 미리 짜놓은 사기꾼들의 함정인줄 모르고 사람에게 마지막 자존심인 재물을 속절없이 날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억울했지만 창피하여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울기도 했다. 몇 년을 끙끙 그렇게 속을 태우며 바보 같은 자신을 저주하다보니 몸속에 기생하던 불순한 세포들이 만만한 주인을 희롱하며 칼춤을 추었다. 분뇨가 흘러야 할 작은 개울(요관)에 집을 짓고 혹을 만들어 흐르는 물길을 막았으니 암이라 했다. 뜻하지 않게 복부에 칼자국을 그어대며 피냄새를 풍기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에야 그 사건은 잊기로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름만 불러도 그리워 눈물 나는 혈육들을 차례로 저승으로 보내며 많이도 울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시원하게 울어볼 눈물샘도 말랐는지 웬만해선 울 줄도 모르는 매정한 노파가 되었다. 한데 왕조시대 말을 타고 하인까지 거느리며 중원을 달리던 시대의 엘리트 박지원, 그는 왜 확 트인 평원에서 울음 터를 생각했을까. 지금도 그것이 궁금하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 시대 선비답게 인간의 근원적인 비애를 슬퍼했을 것이다. ‘인간은 아무대도 기댈 곳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라‘며.
문학에서 폭포수를 들추어보면 시인의 감성과 시대의 배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저항 시인 김수영은 망설일 줄 모르고 의연하게 흐르는 물결을 일러 ‘누가 보든 말든 밤낮없이 쏟아지는 노도 같은 희생, 순교자의 의연한 기백, 고매한 정신’이라 추켜세웠다.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던 자유당시절 시인의 폭포는 민중들의 봉기가 되었는지. 시를 발표한 3년 후에 나라는 민주화의 열망이 불같이 일어나 가면을 쓴 위정자들을 칼날처럼 베어낸 기적도 있었다.
시인 이형기는 ‘질주하는 전율, 무수한 수정체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 2억년 묵은 시퍼런 칼자욱’이라는 결연한 표현을 했고, 서정시인 정지용은 ‘산골에 자란 물도 돌베람빡 낭떠러지에 겁이 났다’고 애교서린 엄살로 폭포를 대변했으니 향수 시인다운 솔직한 고백에 웃음이 난다.
문학은 자연의 모방이다. 저 펜션에 든 이 시대 수필가들은 야멸차게 흐르는 폭포수의 울림을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수필가들의 맛깔스런 문장으로 칠월의 대관령은 새롭게 태어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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