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걸음의 산책 - 권석하
붉은색 커튼을 드리운 듯 저녁놀아 비치어 거실 분위기가 아늑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40여년 전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오르간 소리로 들려온다. 아이들이 귀가한 방과후 노을빛에 물든 텅빈 교실에서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를 오르간으로 치며 눈물지던 시절이 불현 듯이 떠올랐다.
황혼이 지고 교실에 어둠이 깔리면 세상이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비관적인 생각만 했다.
이러다가 염세주의가 되겠다는 무서운 생각에 열 손가락으로 오르간 건반을 주르르 흩고 일어섰던 일이 회상되었다.
여학교 시절 시인이 되겠다고 문예반 에 들락거리던 가슴앓이 병이 이때 도진 것이다. 시 창작집 표지가 떨어져 나가도록 읽어도 글은 써지지 않았고 가슴만 답답했다. 그 갈증을 푸는 방책으로 해거름에 산책을 하며 지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집에서 서쪽으로 15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과수원에 심부름을 해거름에 다녔다. 해질녁에는 대낮에 볼 수 없었던 대자연의 신비스러운 정취가 펼쳐진다. 나이들며 그 정경에 흠뻑 빠져들며 시정에 젖어들기를 즐겼다.
1956년 초여름부터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어릴때부터 익혀서인지 어디서나 저녁놀이 비끼면 인생 무대의 조명인 양 습관적으로 사념의 휴희를 하게 된다. 42년 전 서울의 일몰은 내 고향의 노을 만큼 이나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공해로 오존층이 파손되고 높은 건물에 가려 그 정취가 옛만 못하다.
논어에 사십이불혹 이라고 했다.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흔셋이 된 해였다. 나는 삶이 권태롭고 회의롭기만 하니 불혹은커녕 미혹의 나이가 된 듯 삶의 의욕이 소침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신문 칼럼에서 여류 시인이 쓴 <열사의 삶>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그분은 쨍쨍한 햇빛에 달구어진 모래알처럼 하루하루를 뜨겁게 산다고 했다. 그 글은 나른해져 있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호나 필명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삶의 좌표로 하는 수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삶의 좌표를 석하(夕霞)라고 지었다. 햇님이 붉은 노을 빛을 뒤로 남기며 아름답고 장엄하게 넘어 갓듯이 살리라는 야무진(?)뜻에서 였다.
그 이후 수첩이나 잡기책에 석하라고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듯 17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이순이 되었다.
심신이 좀 한가하니 공부가 하고 싶었다. 사춘기 때부터 앓아온 지병이 40여년 동안 침잠 했다가 다시 도지는지 평생 염원인 문학강좌가 듣고 싶었다.
본명은 경애(敬愛)인데 마흔 셋에 지은 석하로 등록을 했다. 부모님이 내 이름을 지을 때는 남에게 공경(敬)받고 사랑(愛)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이 되도록 본명의 이름과 같이 "敬愛"의 참뜻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본명은 그렇다 치고, 석하란 이름으로 수필반에 들기는 했으나 일년이 넘게 배워도 원체 무지랭이라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를 않았다. 수강을 그만둘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각오한 바 있어 또 그 다음 학기에 자라목이 되어 등록을 했다.
새학기에 수강생끼리 자기 소개가 있을 때 구변없는 내가 머무적거리니 교수님께서 나이들어 배우려는 자세가 얼마나 고결하냐고 추켜 주셔서 참 위안이 되었다. 또 종종 수강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전력을 다하라"고 하는 채찍의 말씀은 자주 글을 쓰지 않는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아 무척 가책이 되었다.
드디어 3년6개월 만에 신인상을 받으면서 저녁 석(夕) 노을 하(霞)의 석하는 자연스레 필명이 된 것이다.
지지난해 8월 중순 휴가철 막바지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갔었다. 귀경 비행기표는 8월20일 저녁 7시 출발 이었다. 8월 중순의 제주도 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비행기 트랩을 오를 때부터 구름위에서 저녁놀을 감상하겠다는 생각으로 설렜다. 마침 좌석은 창가였다. 햇님이 수평선에 눈썹만 내놓은 상태를 보고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다시 보니 햇님은 보이지 않았고 수평선에 아홉 층계 무지개가 서 있지 않은가. 자로 그은 듯이 간격이 고른 아홉 층계 무지개는 어두워질수록 층으로 번진 선이 선명해지고 검붉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세고 또 세도 9층 무지개는 그야말로 비경이었고, 대자연의 절묘한 걸작품이었다.
나는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저녁놀의 극치를 감상하려고 해거름의 산책을 즐겨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은 공기의 분자 및 공중의 진애에 광선이 비쳐, 굴절 및 산란작용에 의하여 부유입자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다. 만약 대기 상층에 화산회 등의 미립자가 다량으로 펼쳐 있으면 대단히 농후한 색의 놀이 된다고 했다.
햇님의 신비스러운 힘은 미세한 물방울로 칠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새우고 티끌도 붉은 노을빛으로 채색하여 인간에게 무한의 선물을 한다. 과연 우리는 그 은혜를 얼마나 알며 살고 있을까?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비끼는 황혼이 너무 아름다워 자살자가 많아 황혼을 바라볼 수 있는 쪽은 인도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약간의 안개 낀 금문교에 황혼을 보게 되었는데 관광객이 모여들만치 과연 그 다리의 크기며 아름다움은 장관이었다. 그 이튿날 광막한 캘리포니아 사막을 횡단하면서 지평선의 일몰에 취했다.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온종일 받은 사막에 비끼는 붉은 저녁놀은 어쩐지 애 타는 듯한 절경이었다.
그 놀을 바라보며 언젠가 칼럼에서 열사의 삶을 산다던 그 시인의 뜻을 새겨보았다.
해가 중천에 있을때는 지는 해를 별로 의식하지 않듯이, 젊음을 그냥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고 이제사 문학을 붙잡고 있는 내가 가끔은 연민스러울 때가 있다.
문학이 순교는 못되어도 구도는 될 수있다고 했던가. 이순을 넘어 문학 수업하는 것을 내 저무는 인생길에 구도라 여기며, 이 길에서 사람살이의 참모습을 만나고자 해거름의 산책을 하듯 나선다.
수필가. 한국수필등단 . 한국수필작가회이사. 수필집 '파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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