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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 김 경 순

Joyfule 2013. 11. 4. 11:32

   실수 - 김 경 순

 

담양의 대통밥집, 11명의 회원이 상을 중심으로 마주 앉았다. 주인이 문 밖에서 죽순 회를 시킬 거냐고 묻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시키지 않는다고 하자, 식사를 지금 내올 건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시장했던 나는 점심을 사기로 한 문우가 침묵을 지키는 걸 참지 못하고 주세요, 빨리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폭소가 터졌다.

 

엉뚱한 반응에 얼떨떨해 있는데 지가 사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오래, 회는 순이 보고 사라해, 우리는 먹고 싶어도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죽순 고장까지 와서 죽순 회를 안 먹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내 말을 계기로 각자의 참고 있던 언어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죽순 회가 추가되면 회 값은 별도라고 해서 오늘 점심을 내기로 한 S는 생각 중이고 다른 이들은 은근히 죽순 회 먹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안쪽에 앉았던 내가 잘못 듣고 가져오라 한 것이다.

 

나이 들면 귀도 눈도 말도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최근에 듣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저녁 늦게 들어온 남편이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아내는 지금까지 뭐하고 밥도 못 먹고 왔느냐하니, 남편은 여태까지 밥도 안 먹고 뭐하고 이제 기어들어 오느냐로 듣고 화를 내더라는 이야기, 길을 가다가 사란 말을 듣고 무슨 쥐를 다 팔러 다닐까하는 말에 새라 거니 쥐라 거니 우기다 쫓아가서 보니 새였다는 둥,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상대가 우길 때 정말 내가 그 말을 한 것도 같고 안 한 것도 같고 나까지 헛갈리게 된다는 이야길 들으며 남의 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4개월 전에 있었던 일에도 의문이 간다. K문우와 문학사를 찾는 길이었다. 이 근처가 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있어 물으니 길 건너편 큰 건물을 가리키며 그 앞이라 한다. 그 앞은 도로인데 이상하다 생각되어 건물 앞이요? 되물었다. 늙은이와 말장난하자는 거요 뭐요 내가 언제 앞이라고 했소 옆이라고 했지, 삿대질하며 말한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고 나는 죄인처럼 발걸음만 옮겼다. 그 노인은 앞이라고 말하고 옆이라고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잘 못 들었는지 그것도 이제 미지수다.

 

오늘 회사건만 해도 10명의 증인이 아닌 1:1이었다면 분명히 밥 가지고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우겼을 것이고 뒷일을 상상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오늘의 실수는 한 달 전 심한 감기를 앓고 난 뒤의 후유증이면 싶다. 아직도 감기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자주 귓속이 가렵고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러 실수를 하여도 감기기가 없어지면 괜찮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주 전만 해도 그랬다.

 

네 부부가 온천엘 갔는데 옆에 앉은 M이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묻는데 감도 잡을 수 없다. 물소리와 다른 이들의 말소리까지 겹쳐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네 번째 물을 때는 뭐냐고 반문하기가 미안해서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몇 시까지 나가기로 했냐고 소리 지른다. 그때야 남자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을 물었다는 걸 알고 멋쩍게 웃으며 시간을 말했다.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면 대체적으로 응응하거나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통하지 않을 때면 당사자는 한동안 멋쩍어진다.

 

S가 회까지 살 돈이 부족하거나 회를 살 생각이 아니었다면 나로 인해 얼마나 난처했을까. 마음 약한 이는 안 산다는 말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죽순과 우렁과 오이를 넣어 만든 회를 먹으면서 맛있다. 순이 덕분에 잘 먹네 하는 회원도 있다. 사주려고 해서 사준 거지 내 말 때문에 샀나, 사준 사람 생색 안 나게하니 S도 내가 사고 싶어서 시켰는데 왜 그래요 함으로 내 민망함을 감싸준다.

 

나이 들면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으며 정신도 깜박깜박 해진다. 그래서 생각대로 말해 놓고 안 했다고 하고, 해 놓고는 하지 않았다고 본의 아니게 우기게 된다는 것도 내 실수 담 끝에 들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심각하고 서글픈 일이지만 한 차원 높여 생각하면 다행이라 여겨진다.

 

처음에는 우기는 단계에 있다가 이를 지나면 자신의 변화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게 되고 이해함으로써 상대의 잘못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아량도 생긴다. 이러한 실수들을 통해 한결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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