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가다 - 이사명
백제 25대 무령왕릉을 가기 위해 공주시를 걸었다. 높은 산이 거의 없는 시는 안정된 분위기로 편안함을 주었다. 산보를 겸하기도 한 그 날은 봄을 자축하듯 진달래꽃이 길목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낡은 철교를 지나 왼편산성 맞은편 대문을 지날 때쯤이었을까. 무령왕릉이 가까워졌는지, 눈에 익은 관장식이 길 양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관장식일색을 이루고 있었다. 무령왕릉의 상징이 된 관장식은 국보154호로 무령왕이 평소 비단모자에 즐겨 꽂았다는 장신구이다. 그런 애장품을 바로 눈앞에서 대하다보니 왠지 그리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왕과 왕비의 묘지명이 새겨졌던 능이다. 책이나 왕릉에 대한 여러 연구 자료에서 무령왕릉에 대한 사연을 보아서인지 입구에서부터 남다른 가슴이 되는 것 같았다. 능에 오르면서도 영상의 장면들이 연상되어서 미소를 머금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 중엔 이미 몇 번씩 다녀갔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처음이어서인지 감회가 남달랐다. 무덤 속이 주택의 방안 같은 느낌이 드는 가묘를 보고 올라왔지만, 능이 자리 잡고 있는 산세를 보면서 역시 복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인자하고 관대했다는 성품답게 누운 자리 또한 천하의 명당이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능의 잔디를 만져보며 넓은 안목을 지녔던 왕의 자상하고 인자했던 성품에 감명을 받으면서 일행과 무령왕만이 지닐 수 있었던 일화들을 더듬어보았다.
무령왕의 숨결은 많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주박물관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유독 왕과 왕비의 애장품인 장신구에 마음이 끌렸는데, 하나같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희망을 염원으로 담아 유장품에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국보 156호․157호인 무령왕과 왕비의 귀걸이가 그러했다. 크고 작은 하트를 두개나 붙여 달았는데, 하트가 합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애정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호방하면서도 열정적인 가슴을 지녔던 무령왕의 성품에 맞춰 애장품들 또한 사랑스러운 의미를 담아냈다고 생각하며 부여 박물관으로 향했다.
부여박물관 또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의 심벌이 된 금동대향로가 입구에 우뚝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국보 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가 62.5센티로 뚜껑 몸체 다리부분으로 만들어졌는데, 동양사상인 불교와 도교를 바탕으로 해서 백제사상과 융합한 조형예술의 완제품이라 한다.
나의 넋을 빼어버린 향로는 백제인만의 섬세한 예술감각으로 명장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곧 세사의 이치가 우주신비와 땅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이나, 그 가운데의 주인은 사람임을 말해 준다. 하늘과 땅을 기저로 상상의 동물과 실제동물을 안배했는데, 신선인물상과 함께 74곳의 산봉우리를 새겨 넣었다. 상징하는 것이 대부분 상상의 형체라는 것에서도 그 의도가 인간의 포부와 꿈인 것을 보게 된다.
향로 밑은 행운을 상징하는 용(龍)이 입으로 연꽃의 형상을 취하면서 향로의 몸체를 받들었다. 뚜껑은 횡(橫)으로 돌아가며 기러기 ․ 인물상 ․ 동물상 ․화염문 및 폭포 등을 등장시키었다. 당시의 생활상인 기마인물과 기마수렵상도 함께 새겨 넣었다. 한쪽은 지혜를 낚시하는 인간상으로 신선을, 다른 한 편은 피리와 배소를 불고 비파와 현금을 뜯는 5인의 주악상을 나열했다. 뚜껑위의 봉우리엔 행운을 염원하는 용이 몸통을 받치는 것처럼, 장수의 상징인 봉황이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펴 웅비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백제의 꿈과 희망을 표현했다. 한마디로 백제금동대향로는 인간의 생각을 금속공예와 주조기술로 배합해, 세공기술과 도금기술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낸 백제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사람이야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지만, 향로가 연기구멍이 적다해서 크게 장애가 될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도 향로에는 연기구멍이 열두 개나 뚫려있어 향내가 골고루 퍼져 스며들게 하였다. 짧은 내 생각이었지만, 인간의 향기와 우주법칙인 사계의 순리를 의식해 종교적으로 승화한 호흡법이 아니었을까 한다. 백제인의 마음이 개방되었음을 여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제가 주변국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켜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의 발로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의 패배자였던 백제문화는 한 때 사람들의 관심 밖에 등한시 되었다. 그러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의 요구로 백제가 다시 부활하는 영광을 보게 해주었다. 언제라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뒤늦게 발굴된 유물들이었지만, 출토 될 때마다 매우 충격적인 감격을 주며 조상들의 얼을 되새겨 보도록 하였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던 것처럼, 귀중한 유물 역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매장될 뻔한 위기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면서.
수필가.전남무안출생. 한국수필등단 . 한국수필작가회 부회장 수필집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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