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
발행일 : 2004.06.05 / Books D16 면
고정휴 지음
연세대 출판부
564쪽 | 3만원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일제하 이승만의 독립운동 활동을 비판적 시각에서 연구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91년 고려대 강만길 교수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연구’로 학위를 받은 고 교수는 그 후 재미한인사회, 한성정부, 워싱턴회의(1921~22), 미국의 임정 불승인정책 등 이승만과 관련된 주요 사건이나 활동들을 연구해왔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독립운동 전반을 비판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적임자다.
이 책은 이승만에 대한 전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중요한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승만이 어떻게 관련을 맺고 누구와 대립했으며 어떤 단체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서다. 그런 점에서 민족운동사와 개인 이승만의 접합지점을 모자이크식으로 추적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는 어떻게 이승만이 상하이 임정의 초대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1925년 탄핵을 받게 되는지를 민족운동 내부의 갈등구조 속에서 해명한다. 한성정부의 법통을 주장했던 이승만이 마침내 상하이의 통합임정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데는 안창호의 역할이 컸다. 고 교수는 안창호의 역할은 “자신이 주도하는 상하이 임정을 보존하고 동시에 미국에서 이승만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안창호의 국민회는 이승만과 철저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이승만을 상하이로 불러들임으로써 미국 내 교민들에 대한 이승만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안창호와의 이런 갈등은 결국 이승만이 탄핵당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작용을 했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면모를 살피는 데 가장 중요한 기구는 구미위원부, 오늘날의 주미대사다. 이승만은 탄핵 후에는 계속 구미위원부를 유지시키며 미국 정부와 의회, 언론을 대상으로 한 독립 ‘로비’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고 교수는 구미위원부의 활동을 초창기(1919~1922), 침체기(1922~1939), 재건기(1939~1945)로 나눠 분석한다. 묘하게도 이런 3단계는 이승만의 독립운동 성격과도 그대로 일치한다. 상하이에서 쫓겨난 후 태평양전쟁이 터질 때까지 이승만의 활동은 딱히 두드러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승만과 임시정부와의 관계와도 대략 겹친다. 갈등기(1919~1925), 단절기(1925~1941), 협력기(1941~1945)가 그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독립운동사의 굴곡과도 중첩되는 것인지 모른다.
저자는 이승만이 맺고 있었던 지지단체 및 반대단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이 차지했던 위상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는 대한인동지회, 대한인교민단, 대한부인구제회 등 하와이 중심의 교민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낸 반면 대한민국민회, 중한민중동맹단,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 등은 골수 반대단체들이었다.
더불어 고 교수는 국내에 있었던 조선기독교청년회, 범태평양조선협회, 흥업구락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내에도 이승만노선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만만찮게 조직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진행됨으로써 오랜 망명생활 끝에 돌아온 노정객이 단기간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건국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조직적 기반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게 된다.
이어 저자는 이승만이 구체적으로 전개했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즉 파리강화회의 참석시도, 구미위원부를 통한 활동, 워싱턴회의에서의 실패한 활동, 태평양전쟁기 미국정부를 상대로 한 임정승인 로비 등을 분석한다. 구체적 성과를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승만이 지향하게 될 정치노선을 미리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근거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승만은 ‘조숙한 냉전주의자’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섣부른 평가를 철저하게 억제하면서 사실에 의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불어 연세대 유영익 교수의 ‘젊은 날의 이승만’에 이어지는 우리 역사학계의 본격적인 이승만연구의 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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