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경영철학의 두 번째 덕목은 '인내'다.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경영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에 대한 묘사로는 1장에 흥미로운 예화가 소개되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각
하이쿠라는 일본 특유의 단시를 읊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라고 했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도쿠가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다.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여 마땅하다고 보는 냉철한 인간형이다.
히데요시는 천한 출신이지만 사람을 끄는 힘과 뛰어난 지혜로
노부나가의 신임을 받게 되고 노부나가가 죽자 전국통일을 이룬 인물이다.
자신감에 넘치며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든다고 불릴 만큼 지혜롭다.
한편 인내심이 강한 도쿠가와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2장 '운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는 도쿠가와가 자신을 평생 짓누른
노부나가라는 크나큰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 천하를 제패하는 도정을 묘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섯 살 박이 어린 시절부터 19세가 될 때까지
사무라이들의 싸움판 와중에서 인질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에야스는 처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수하에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를 거꾸러뜨리고 판도를 바꾸자 오다 노부나가 수하에 들어가
속국의 장졸로 있으면서 자기 자식까지 할복시키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뒤 노부나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이번에는 당시의 최고 실력자 히데요시의 수하에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변소치기를 하며 살다가 일약 장군(쇼궁)이 된 인물이다.
이에야스는 그런 히데요시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때를 기다렸고
히데요시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도쿠가와의 경영 스타일은 그를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할 만큼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생존양식을 겸비한 것이었다.
3장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부릴 수 있다'에서는 도쿠가와가
다른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데 능란했던 사실과 함께
그가 어떻게 사람의 심리를 능란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됐던가 설명되어 있다.
장군(쇼궁)이 통치하던 16세기 일본에서 정치가의 필수조건으로는
무력과 재력 외에 당시 장군의 통치 아래 지방에서 할거하던
세력인 다이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 입안 및 실행능력이 요구됐다.
다이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당시 패권자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는
제각기 다이묘들을 엮어 파벌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주로 다이묘들에게 패권자 자신의 姓(성)이나 이름을 쓰게 하거나
양자를 들이고 혼인을 하며 혹은 돈을 뿌리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런 식의 세력 만들기에 가장 골몰했던 패권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에 비해 이에야스는 賜姓(사성)이나
혼인, 돈 뿌리기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활용해 세력을 얻었다.
저자의 설명으로는, 인간관계에서는 욕심을 부리는 쪽이 약해진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쓰는 심리가 있는데
도쿠가와는 이런 인간심리를 잘 활용했다 한다.
이를테면 가까운 자보다는 먼 자를 선택해 가까운 자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서
자신에 대한 충성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채택한 인간경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인간경영에 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매우 비정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에야스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도쿠가와는 자주 "물은 배를 띄워주지만 다른 편으로는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친구를 믿지 않았고 단지 충성스러운 부하만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소년 시절을 인질로 생활하며 시련을 겪었던 도쿠가와의 성장배경이 자리한다.
인질로 살고, 내키지 않는 패권자에 복속하며 생존을 위한 적응을
첫째 명제로 삼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든가,
겉과 속을 달리 보이게 할 필요성 따위를 몸으로 체득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대를 산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살아남기 위해 익힌 요령은 비정하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들이 교재로 삼은 전략서 [손자], [한비자] 등속은 모두
'사람을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전국시대 일본의 리더들에게는 고독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던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법과 경영·정치 전략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경영의 기본인 인간관리 측면에서 현대의 기업 경영자를 비롯해 조직을 이끌고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풍부한 한 전형이다.
저자는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을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제시하며
그의 인간성, 여성관, 종교관, 건강법, 우정관 등까지 곁들여 다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간경영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생활을 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을 통일해
쇼궁이 되고 자기 아들에게 쇼궁의 지위를 물려주어
도쿠가와 막부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때까지를 설명해,
격동의 시기였던 일본 전국시대 역사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