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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Joyfule 2021. 9. 30. 10:47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제1부 팡틴


4.

장 발장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족이라고는 아이들 일곱을 데리고 과부가 된 누이 하나가 전부였다. 누나는 고아가 된 장 발장을 데려다 키웠고, 장 발장이 스물다섯 살 때 매형이 죽자 그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의 청년 시절은 고되고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 닥치는 대로 막일을 했고 누이도 열심히 일했지만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러던 중 혹독한 겨울이 왔다. 장 발장은 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고 집에는 빵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장 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보다 못해 거리에 나가 빵집 유리창을 깨고 빵을 훔치다가 붙잡혔다. 그는 가택침입과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아 5년형을 받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꼭 한번 누이 소식을 들었다.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누이는 막내 하나만 데리고 파리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영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감옥에 들어간지 4년째 되던 무렵 탈옥할 기회가 왔다. 하지만 곧 붙잡혔고 그 죄로 형이 3년 연기되었다. 또다시 탈옥을 시도했지만 또 붙잡혔고 마침내 모두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참하게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825년에 그는 마침내 석방되었다. 유리창을 깨고 빵 한 조각을 훔쳤기 때문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 지 19년만에 풀려난 것이었다. 그는 흐느껴 울기도 하고 몸을 떨기도 하면서 감옥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왔을 때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들어갈 때는 절망하고 있었지만 나올 때는 음울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원래 무지한 사나이였다.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원래 타고난 지혜의 빛은 그의 마음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몽둥이질을 당하고 쇠사슬에 묶인 채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 뙤약볕 아래 노역장에서 혹사당한 끝에 죄수용 널빤지 잠자리에서 자면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은 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는 자기처럼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사회가 이렇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은 사회에 있다고 단정하고 사회에 대해 미움을 품게 되었다. 자기 운명을 사회 책임으로 돌리고 언젠가는 그 책임을 따져 묻겠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그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나쁜 일뿐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따뜻한 말과 친절한 눈길을 만난 적이 없었다. 고생을 거듭하면서 그는 점차 한가지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인생은 싸움일 뿐이고 자기는 그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증오심 외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다. 마침 감옥에는 수도사들이 복역수를 위해 세운 학교가 있었다. 그는 배우고 싶었다. 마흔 살의 나이에 그는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배웠다. 지식을 쌓는 것이 곧 자기의 증오심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생활을 19년이나 하면서 그의 영혼은 향상되기도 했지만 타락하기도 했다. 그는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선량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기가 악해졌음을 느꼈다.


그는 말이 없었다. 웃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자연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도, 아름다운 여름날도, 빛나는 하늘도, 사월의 청명한 새벽도 그에게는 없었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의 영혼은 천천히 메말라갔다. 마음이 마르면 눈물도 마르는 법이었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린 적이 없었다.


성당의 큰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칠 때 장 발장은 잠을 깼다. 침대가 너무도 포근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자본지 거의 이십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해 보았지만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머리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이 뒤엉켰다.


그 중에서도 자꾸 끊임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식탁에 놓였던 은그릇이었다. 그가 자고 있는 곳에서 몇 걸음 안 되는 벽장 안에 하녀가 집어넣던 광경을 똑똑히 보아 두었다. 그릇은 순은으로 만든 것이었다. 적어도 2백 프랑은 나갈 것이다. 19년 동안 자기가 번 돈의 곱절이나 되었다. 그는 다소 반발하면서도 꼬박 한 시간 동안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세 시를 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배낭을 열고 거기서 쇠로 된 길다란 못을 꺼냈다. 그것을 오른손에 쥐고 옆방 문으로 다가갔다. 주교 침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장 발장은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내지 않으려고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가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침대 옆으로 갔다.


거의 삼십 분 전부터 구름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침 그 순간 구름이 갈라지며 한 줄기 달빛이 유리창으로 비쳐 들어와 주교의 해맑은 얼굴을 비췄다. 주교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수많은 거룩한 일을 했던 손은 주교반지를 낀 채 침대 밖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얼굴은 온통 만족과 희망의 표정으로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의로운 사람의 영혼은 신비로운 하늘을 바라보는 법이다. 그런 하늘의 빛이 주교 위에 비치고 있었다.


장 발장은 쇠못을 손에 쥐고서 숭고한 빛에 싸인 노인의 모습에 넋을 잃은 채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노인의 모습이 오히려 공포심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재빨리 벽장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를 부수려고 쇠못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열쇠가 벌써 꽂혀 있었다. 그는 벽장을 열고 은그릇이든 바구니를 들고는 방을 나갔다. 그러고는 은그릇을 배낭 속에 집어넣고 바구니는 뜰에 집어던진 다음 담을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