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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Joyfule 2021. 10. 1. 11:06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제1부 팡틴


5.

이튿날 해뜰 무렵 주교는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하녀가 허둥대면서 달려왔다.

"주교님! 은그릇 바구니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여기 있지." 주교는 방금 화단에서 그것을 주웠던 것이다.

"은그릇은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어머나, 어젯밤 그 사람이 훔쳐갔을 거예요." 하녀는 재빨리 침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뛰어나왔다.

"그 남자가 도망쳐버렸어요. 우리 은그릇을 훔쳐갔어요."


주교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정색을 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 하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그 은그릇을 그렇게 오랫동안 바로 옆에 간직해 두었던 것이 잘못이었소.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오."

"그러면 주교님은 이제부터 어디다 진지를 잡수실 작정인가요?"

"아, 그게 걱정이오? 놋그릇이 있잖소?"

"놋그릇은 냄새가 나는 걸요."

"그럼 나무그릇이 좋겠소."


잠시 뒤 그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두 노부인에게, 빵을 우유에 적셔 먹는데는 나무그릇도 필요 없다고 명랑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 발장을 에워싼 헌병들이 문간에 나타났다. 헌병 반장이 주교 앞으로 걸어왔다.


"각하!“ 장 발장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각하? 그럼 이 분이 주임사제였단 말인가!"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닥쳐!" 하고 헌병 하나가 말했다.

"이 어른은 주교 각하시다."

그러는 사이 주교는 있는 힘을 다해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당신이구려?" 그는 장 발장을 향해 외쳤다.

"어떻게 된 거요? 당신한테 촛대도 주었는데 그건 왜 갖고 가지 않았소?"

장 발장은 눈을 크게 뜨고 그 거룩한 주교를 바라보았다.

"각하." 하고 반장이 말했다.

"그러면 이 사람 말이 사실입니까? 이 사람이 도망치듯 걷고 있기에 조사해 보았더니 은그릇을 갖고 있어서..."

"그건 내가 준 거요. 오해한 모양이구려."


헌병들은 장 발장을 놓아주었다.

"정말로 날 놔주는 겁니까?" 그는 물러서면서 꿈꾸듯 말했다.

"그래, 놓아주는 거다. 못 알아듣겠나?" 하고 반장이 말했다.

"여기 당신한테 준 촛대가 있으니 갖고 가시오."


주교는 난롯가로 가서 은촛대 두 개를 장 발장 앞으로 가져왔다. 두 노부인은 주교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말은 한마디도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장 발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촛대를 받았다. 헌병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장 발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잊지 마시오. 절대로 잊지 마시오. 이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데 쓰겠노라고 약속한 일을 말이오."


꿈에도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주교는 엄숙한 말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내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값을 치르는 것은 당신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당신 영혼을 어두운 생각에서 끌어내 하느님께 바치려는 것입니다."


장 발장은 도망치듯 시내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정처없이 들판을 걸으면서 방황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생각들이 온종일 그의 머리속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쾌활한 소년 하나가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면서 손에 든 동전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중에 던졌던 40수 은화 한개를 떨어뜨렸다. 장 발장은 얼른 돈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아저씨, 내 돈 주세요." 소년은 믿음에 찬 말투로 말했다.

"네 이름이 뭐냐?"

"프티 제르베예요."

"꺼져." 하고 장 발장은 말했다.

"아저씨. 내 돈 이리 주세요!"


장 발장은 들은 척도 않고 땅바닥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돈을 달라고 외치면서 그를 잡고 마구 흔들며 돈을 밟고 있는 그의 신발을 밀쳐내려고 애썼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장 발장은 고함쳤다.

"썩 꺼지지 못해!"


소년은 부들부들 떨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하지만 얼마쯤 가서는 숨이 가쁜지 발을 멈추었다. 장 발장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중에도 소년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주위에 어둠이 내렸다. 그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그렇게 서 있다가 모자를 눌러쓰고는 지팡이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굽혔다. 그때 은화가 눈에 띄었다. 발에 밟혀 반쯤 흙에 박힌 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란 듯 멈칫했다. 발작적으로 그것을 집어든 다음 몸을 일으켜 들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년이 사라져간 쪽으로 달려가 힘껏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프티 제르베! 프티 제르베!"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판은 적막하고 음침했다.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고요뿐이었다. 미친 듯이 소년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니는 동안 어느새 달이 떠올랐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커다란 바위 위에 쓰러졌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 처박으며 부르짖었다.


"아, 난 불쌍한 놈이야."

그러자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울기 시작했다. 지난 19년 이래로 그가 운 것은 처음이었다. 주교 집에서 나왔을 때도 그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무소라고 불리는 그 추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온 그의 영혼에 주교는 고통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놀라움과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프티 제르베의 돈을 훔쳤던 것이었다. 그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확실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가 감옥에서 갖고 나온 나쁜 생각의 마지막 움직임, 마지막 시도였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훔친 것은 결코 그가 아니었다. 습관처럼 된 그의 짐승 같은 생각이 문득 그 돈 위에 발을 올려놓게 했던 것이다.


그가 저지른 이 마지막 죄는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지성 속에 있던 어둠을 갑자기 뚫고 들어가 영혼을 불러일으켰던 것이었다. 그는 어떤 신비로운 깊숙한 곳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빛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주교였다. 주교는 이 가엾은 사나이의 영혼 전체를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 발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비참했던 과거 생활, 처음에 저질렀던 죄, 차차 짐승처럼 변해버린 외모와 냉혹해진 마음,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차 기다렸던 석방, 주교 집에서 일어났던 일, 마지막으로 소년에게서 돈을 훔친 일, 주교가 용서한 뒤에 있었던 일인만큼 더 비겁하고 더 흉악했던 그 죄. 그런 모든 것이 뚜렷하게 그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는 자기의 지난 삶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끔찍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부드러운 빛이 그 삶과 영혼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가 몇 시간이나 그렇게 울었는지, 운 다음 무엇을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밝혀진 것은 바로 그날 밤 어떤 사람이 새벽 세시쯤 디뉴 주교관 앞을 지나다가, 한 사나이가 어둠속에서 기도를 드리듯 그 문 앞 길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