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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Joyfule 2021. 10. 2. 19:09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제1부 팡틴


6.

그 당시 파리 근처 몽페르메유라는 곳에 싸구려 여관이 하나 있었다. 여관은 테나르디에라는 부부가 경영하고 있었는데 여관 출입문 위의 벽에는 널빤지 하나가 못질되어 붙어 있었다. 그 널빤지에는 한 사나이가 다른 한 사나이를 등에 업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등에 업힌 사나이는 장교 견장을 달고 있었고 피처럼 보이는 붉은 점들이 몸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다른 화면 부분은 자욱한 연기로 덮여 있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전쟁 그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림 아래쪽에는 '워털루의 중사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테나르디에는 워털루 전투 때 부상자나 시체의 소지품을 약탈했던 비열한 작자였다. 그는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해 비참하게 몸부림치고 있던 싸움터에서, 시체에서 금반지나 시계 따위를 훔쳐냈다.


그러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어떤 장교의 몸을 뒤지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그 장교는 테나르디에가 자기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줄로만 알고서 그에게 깊이 감사를 표시했던 적이 있었다. 테나르디에는 물론 도둑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 대신 자기가 워털루에서 용감하게 활약하며 장교의 목숨을 구했다고 자랑하며 떠들어댔다.


여관 문 앞에는 고장난 짐마차가 한 대 버려졌다. 마차 쇠굴대 밑에는 가운데 부분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는 쇠사슬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두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듯이 거기에 올라앉아 재미있게 놀았다.


한 아이는 두 살반 가량, 또 한 아이는 한 살반 가량 되어 보였다.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생기가 활발해 보였다. 천진난만한 얼굴도 아주 귀여웠다. 퉁명스러워 보이는 아이들 어머니도 이때만은 자애스런 표정을 짓고서 아이들이 앉은 쇠사슬을 흔들어주면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그때 아이를 안은 또 다른 어머니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이 광경을 보았다. 아주 깨끗한 느낌을 주는 여자아이였다. 세 살쯤 되어 보였는데 옷에는 리본을 달고 고급 린넨 모자에는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치마 밑으로 포동포동한 하얀 넓적다리가 보였다. 환한 장밋빛 얼굴은 건강하고 뺨은 사과처럼 발그레한 것이 몹시 귀여웠다. 눈은 잠들어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속눈썹은 길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초라했다. 나이가 젊어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차림새는 초라했다. 눈은 오랜 세월 동안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었던 사람 같아 보였고 안색은 핏기가 없어 몹시 지쳐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팡틴이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일하러 갔다가 어떤 청년과 사랑에 빠졌지만 버림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미 임신한 뒤였다. 아기를 낳자 생활이 어려워진 팡틴은 고향인 몽트뢰유 쉬르 메르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파리를 떠났다. 하지만 고향에 가면 아기가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떼어놓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여관에 이르러 팡틴은 그집 아이들을 보고는 그만 그 다정한 광경에 매혹되어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들 어머니한테 나아가 무심코 말을 걸었다.


"따님들이 정말 귀엽네요."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고맙다고 말하고는 지나가던 그 여자에게 문가에 놓인 의자를 권했다. 두 여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팡틴은 자기 신상 이야기를 대충 들려주었다. 파리에서 여공으로 일하고 있었다가 남편이 죽어서 고향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동안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웃기 시작했다. 팡틴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셋이서 같이 놀아라."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그 또래 아이들은 곧 친해지는 법이라 일 분도 지나기 전에 함께 땅에 구멍을 파며 놀고 있었다.

"아기는 몇 살인가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물었다.

"곧 세 살이 돼요." 팡틴이 대답했다.

"우리 애와 같군요."


그 동안 아이들은 한데 모여 뭔가 신나는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큰 벌레 한 마리가 땅에서 기어 나왔던 것이다.

"애들이란 저렇게 금방 친해지지요. 마치 세 자매 같네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이야말로 팡틴이 기다리고 있던 불꽃이었다.


"우리 아이를 좀 맡아주시지 않겠어요? 딸을 고향으로 데려갈 수가 없는 처지예요. 애가 딸리면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 앞을 지나가게 된 것도 주님 뜻인가 봐요. 따님들이 저렇게 귀엽고, 깨끗하게 차려입고서 노는 모양을 보고 전 어머니가 참 좋은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곧 돌아올 작정이에요. 그 동안 우리 애를 좀 맡아주시지 않겠어요?"


"생각해 봐야지요."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매달 6프랑씩 내겠어요."

이때 사나이의 목소리가 여관 안쪽에서 울려나왔다.

"7프랑 이하는 안 돼. 그리고 반년 치는 선불을 내야 돼."

"그렇게 하겠어요." 하고 팡틴이 말했다.

"거기다 약조금으로 따로 15프랑." 하는 말소리가 또 들렸다.

"전부 합해서 57프랑이에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그러지요. 80프랑을 갖고 있으니까 그래도 여비는 남는군요. 돈을 벌어 조금만 모이면 곧 아이를 데려가겠어요."

남자 목소리가 또 들렸다.

"갈아 입힐 옷은 있겠지?"

"우리 주인양반이에요." 테나르디에 아내가 팡틴에게 속삭였다.


"그럼요. 모두 고급 옷들이에요. 호사스런 옷들이고 모두 타스로 되어 있는 걸요. 비단 드레스도 몇 벌 있어요."

"그걸 두고 가야지." 하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물론이지요."

주인이 드디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럼 됐소."


흥정은 끝났고 팡틴은 그날 저녁을 여관에서 묵고 이튿날 아침 떠났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원래 미천한 계급과 몰락한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잡다한 계급에 속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동자의 씩씩한 열정도 없었고 중류계급의 고지식한 성실성도 없었다. 어떤 어두운 불길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일어나기만 하면 당장 흉악해져 버리는 뒤틀린 성질을 갖고 있었다. 여자는 원래 사나운 짐승 같은 성질이었고 남자는 무지막지하고 음흉했다. 둘 다 나쁜 방면에 있어서는 아무리 지독한 일이라도 태연히 해치우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악인이기만 해서는 장사가 번창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싸구려 여관에는 손님이 별로 들지 않았다. 팡틴이 준 57프랑 덕분으로 테나르디에는 빚을 갚을 기한을 간신히 넘겼다. 다음 달에 또 돈이 필요하게 되자 아내는 코제트의 옷가지를 파리로 가져가 전당포에 잡히고 60프랑을 벌었다. 그 돈을 다 써버린 뒤에 이들 부부는 아이를 공짜로 길러주는 것처럼 다루었다.


코제트에게는 이제 남은 옷이 없기 때문에 딸들이 입던 헌 치마나 못 입는 속옷 같은 누더기를 입혔다. 먹는 것도 그들이 먹고 난 찌꺼기를 먹였다. 가엾은 코제트는 테이블 밑에서 개와 고양이와 함께 나무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 팡틴은 고향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딸 소식을 알기 위해 사람을 시켜 달마다 편지를 썼다. 처음 6개월이 지나자 달마다 정확히 양육비를 보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테나르디에는 12프랑씩 보내라고 요구했다. 팡틴은 딸이 행복하게 잘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순순히 그 요구에 응했다.


한쪽을 사랑하면 다른 한쪽을 미워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성질의 인간이 있는데 바로 테나르디에 아내가 그랬다. 자기 딸들은 몹시 사랑했지만 코제트는 미워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런 부류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날그날 일정한 양의 매질을 하고 욕을 퍼붓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만약 코제트가 없었다면 분명히 그 딸들이 코제트가 당하는 일을 모두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남의 딸이 그 딸들을 대신해서 매를 맞고 욕을 먹었다.


테나르디에 딸들은 여전히 그저 귀여움만 받고 자랐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제트 머리 위에는 항상 심한 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 가엾은 아이는 바로 곁에서 자기 같은 두 아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이 벌을 받고, 꾸중을 듣고 갖은 매를 맞으며 자라났다. 그래도 마을에서는 테나르디에 부부를 칭찬하고 있었다. 버려진 아이인 코제트를 가엾이 생각하고 키워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테나르디에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몰라도 코제트가 사생아라서 팡틴이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고는 코제트가 커서 이제 많이 먹게 되었으니 한 달에 15프랑을 내지 않으면 아이를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했다. 그래도 결국 팡틴은 그 돈을 지불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랐지만 그럴수록 고생도 늘어갔다. 아직 어렸을 때는 코제트는 다른 두 아이의 놀림감이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나자, 다섯 살도 채 되기 전에 그녀는 여관의 하녀가 돼 버렸다. 심부름을 했고 방과 안마당과 바깥 길을 쓸고, 접시를 닦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까지도 시켰다. 이제는 팡틴이 돌아와도 자기 아이를 쉽게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그렇게도 귀엽고 포동포동했던 코제트는 이제는 야위고 핏기 없고, 어딘지 모르게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옛 모습이라고는 오직 아름다운 눈뿐이었는데, 그것을 보면 더욱 가엾었다. 눈이 컸던 만큼 더욱 많은 슬픔이 어려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이 가엾은 아이의 모습은 정말 애처로웠다, 아직 여섯 살도 채 안 된 아이는 누더기를 입고 떨면서,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 새빨갛게 언 손으로 커다란 비를 들고서 해도 뜨기 전에 마당을 쓸어야 했다. 마을에서는 그녀를 종달새라고 불렀다. 새보다도 더 조그만 것이 언제나 벌벌 떨며, 날마다 그 집에서나 마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날이 밝기 전에 한길을 쓸든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쌍한 종달새는 결코 노래를 부르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