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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Joyfule 2021. 9. 29. 10:52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제1부 팡틴

3. 

그날 저녁 디뉴의 주교는 꽤 늦게까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여덟 시가 넘도록 글을 쓰고 있는데 하녀가 들어와 여느 때처럼 침실 벽장에서 은그릇을 꺼내갔다. 주교는 식사 때가 된 줄 알고 책상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식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식탁은 벽난로 가까이 있었고 난로에서는 불이 제법 잘 타오르고 있었다. 주교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하녀는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늘 바티스틴 양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주교도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바로 출입문 빗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어떤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수상한 부랑자가 하나 들어왔는데 다들 문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하고 주교는 말했다.


한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문을 열어놓은 채 한 걸음 걸어 들어와 멈춰 섰다. 어깨에는 배낭을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으며 눈에는 거칠고 대담하며, 지치고 사나운 빛이 어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하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벌벌 떨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바티스틴 양은 깜짝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교를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지극히 침착하고 평온한 빛을 되찾았다. 주교는 말없이 사나이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들어보십시오. 전 장 발장이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19년 동안 징역을 살았습니다. 나흘 전에 석방되었지요.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습니다. 저녁에 어떤 여관에 들었다가 쫓겨났지요. 전과자의 누런 통행증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시청에 가서 신고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모두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절한 분이 이 댁에 가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긴 도대체 어딥니까? 돈은 있습니다. 19년 동안 감옥에서 일해 번돈 109프랑이 있습니다. 배가 몹시 고픕니다. 재워주시겠습니까?"


"마글루아르 부인." 하고 주교는 말했다.

"한 사람 몫을 더 가져와요."

사나이는 서너 걸음 걸어나와 식탁 위에 있는 램프 옆으로 다가섰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 징역을 산 사람입니다. 죄수라고요."


그는 주머니에서 커다란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제 통행증입니다. 이것 때문에 어디를 가든 쫓겨났습니다. '장 발장, 석방된 죄수. 19년간 징역살이를 했음. 가택침입 절도죄로 5년, 네 번의 탈옥 기도로 14년. 극히 위험한 인물임!' 이렇게 써 있습니다. 모두 절 쫓아냈지요. 그런데도 절 받아주시겠습니까?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 있을까요?"


"마글루아르 부인." 주교는 말했다.

"손님용 침대에 흰 시트를 깔아놓아요."

하녀는 주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식당에서 나갔다.

주교는 사나이에게 몸을 돌렸다.


"자, 앉아서 불을 쬐도록 하시오. 곧 식사가 준비될 것이오."


그들은 팡틴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가냘픈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얼굴은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핏기 없던 얼굴은 맑아져 있었고 뺨은 보기 좋게 발그레했다. 그녀의 순결과 청춘에서 남겨진 단 하나의 아름다움인 긴 갈색 눈썹은 감겨진 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는데 아마 인간의 육체는 죽음의 신비스러운 손가락이 영혼을 꺾으려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마들렌 씨는 한참 동안 침대 옆에 가만히 서서 병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팡틴이 눈을 뜨더니 시장을 보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제트는요?"


그녀의 온몸은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 짤막한 물음에는 깊은 믿음과 강한 확신이 넘쳐 있었다.


"진정해요. 아이는 저쪽에 와 있으니까요."


팡틴의 눈이 환히 빛났다. 기도할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도 고요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얼른 이리로 데려다 주세요."

"아직은 안 돼요."하고 수녀가 말렸다.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만나면 흥분하게 되어 몸에 해로워요. 우선 병이 나아야지요."


팡틴은 흥분에 들떠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마들렌 씨는 그녀의 손을 꼭 쥔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온 것이었는데 좀처럼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팡틴은 말을 하면서도 기침이 나와 말이 자꾸 끊어졌다.


"아, 들려요, 우리 아이 목소리가 들려요. 우리 코제트. 우린 얼마나 행복해질까. 우선 조그마한 뜰이 생기는 거야. 마들렌 씨가 주신다고 약속했는 걸. 그 애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어요. 앞으로는 5년 뒤에 하얀 베일을 씌우고 레이스로 짠 양말을 신기면 어엿한 아가씨가 되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들렌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이야기를 그치기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팡틴의 표정은 무서움에 질려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날에 대한 꿈으로 빛나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침대 위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방 저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들렌 씨가 뒤를 돌아다보자 거기에 자베르가 서 있었다. 법정에서 마들렌 씨가 나간 뒤 검사는 충격에서 깨어나 마들렌 씨를 체포하기로 했다. 체포영장이 바로 발부되었고 자베르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 왔다. 마들렌 씨의 눈길이 자베르의 눈길과 마주쳤을 때 자베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것은 지옥으로 떨어진 인간을 발견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드디어 장 발장을 잡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장 발장의 발자취를 놓치고 나서 잠시나마 혼란을 겪었던 굴욕감은 이제 자랑스러움과 승리감으로 바뀌었다. 그 고압적인 태도에는 만족감이 넘쳐 있었다. 자베르가 자기를 잡으러 온 줄만 안 팡틴은 고통스럽게 외쳤다.

"마들렌 씨, 살려주세요."


장 발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부드럽고 침착하게 팡틴을 달랬다.

"저 사람은 당신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니까 안심해요."

"빨리 나오지 못해!"

자베르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시장님,"하고 팡틴이 외쳤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하고 장 발장이 말했다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이 가엾은 여자의 아이를 데려오게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농담할 때가 아냐!"하고 자베르가 소리쳤다.

"도망칠 수 있도록 사흘의 여유를 달라는 거지? 저 창녀의 새끼를 데리러 간다고?"

팡틴은 부르르 떨었다.


"우리 아이를 데리러 간다구요? 그럼 코제트는 여기에 없는 거군요. 우리 코제트는 어디 있어요? 시장님, 마들렌 씨!"

자베르는 팡틴을 노려보고, 장 발장의 멱살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이젠 마들렌 씨도 시장도 없어. 다만 장 발장이란 전과자가 있을 뿐이야. 내가 지금 그 놈을 잡아 가는 거야. 알았나!“


팡틴은 뻣뻣해진 두 팔과 손으로 침대를 짚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장 발장과 자베르를 번갈아 쳐다본 뒤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왔고 이가 딱딱 마주쳤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팔을 뻗어 허공을 휘젓다가 베개 위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가슴 위로 수그러졌다. 팡틴은 죽은 것이었다. 장 발장은 자베르의 손을 떼어냈다.


"당신이 이 여자를 죽였소."

"허튼 수작 마라. 얼른 가자, 그렇지 않으면 수갑을 채울 테다."

방 한쪽 구석에는 낡은 쇠침대가 하나 있었다. 장 발장은 그리로 다가가 눈 깜짝할 새에 침대머리에 붙은 쇠막대를 뜯어냈다. 그것을 힘껏 쥐고는 자베르를 쏘아보았다. 자베르는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장 발장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잠시 동안만 날 방해하지 말아주시오."

장 발장은 가만히 누워있는 팡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과 태도에서는 말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나타났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는 팡틴에게로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나이는 죽은 여자를 향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의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단 한 사람인 수녀에 의하면 장 발장이 팡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을 때, 죽은 팡틴의 그 창백한 입술과 텅 빈 눈동자 속에 뭐라 표현할 수


그제야 사나이는 완전히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어둡게 굳어져 있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절 재워주시는 겁니까? 쫓아내시지 않고요? 저한테 반말을 쓰지 않고 당신이라고 불러주시는군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돈은 틀림없이 내겠습니다. 실례지만 주인 어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당신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여관 주인이십니까?"


"난," 하고 주교는 말했다.

"여기 살고 있는 사제요."

"그렇군요. 제가 몰라보았습니다. 그럼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냥 갖고 계시오.“ 하고 주교는 말했다.

"109프랑을 갖고 있다고 했소?"

"네."

"그걸 모으는데 얼마나 걸렸다고요?"

"19년입니다."

"19년이라!"


주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녀가 그릇을 한벌 더 가져와 식탁 위에 놓았다.

"마글루아르 부인." 주교는 말했다.

"그 그릇은 벽난로 가까운 곳에 놓도록 해요."

그러고는 손님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알프스 밤바람이 무척 찹니다. 당신, 추우시지요?"

주교가 당신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나이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이 램프는 영 밝지가 않군."

하녀는 말뜻을 알아차리고 은촛대를 가져다가 불을 붙여 식탁 위에 놓았다.


"사제님.“ 하고 사나이는 말했다.

"사제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절 깔보지도 않고 댁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아시면서도 절 위해 촛불까지 켜주시는군요."


주교는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았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그 대신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어볼 뿐이오. 당신은 고통을 받고 있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니 잘 오신 것이오. 그리고 나한테 감사할 필요도 없소. 여기는 내 집이라기보다도 당신 집이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당신은 고생을 많이 했지요?"


"물론입니다. 시뻘건 죄수복, 족쇄에 달린 쇠뭉치, 널빤지 잠자리, 더위, 추위, 노동, 매질. 하찮은 일에도 쇠사슬을 두 겹으로 채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토굴 속에 집어넣고 병자한테도 쇠사슬을 채워놓지요. 19년! 그러느라 이제 제 나이 마흔여섯이 되었습니다."


"알겠소." 주교가 말을 받았다.


"당신은 슬픈 곳에서 빠져 나왔소.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하느님께서는 흰 옷을 입은 의로운 사람 백 명보다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죄인 한 명 쪽을 더 기뻐하실 거요. 만약 당신이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나 분노를 갖고 나왔다면 당신은 정말 가엾은 사람이오. 하지만 거기서 친절과 온정과 평화의 마음을 갖고 나왔다면, 당신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오."


하녀는 그 동안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물과 기름과 빵과 소금으로 된 수프, 베이컨 약간, 양고기 한 조각, 무화과, 신선한 치즈, 그리고 커다란 한 덩어리의 호밀빵. 주교의 얼굴에는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쾌활한 표정이 떠올랐다.


"어서 듭시다." 하고 그는 기분좋게 말했다. 주교는 평소 습관대로 기도를 드리고 손수 수프를 따랐다. 사나이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교가 말했다.


"그런데 식탁에 무엇이 빠진 것 같은데."


그 자리에는 필요한 만큼 세 사람 몫의 은그릇만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주교가 누군가를 식사에 초대할 때는 순진한 허영심에서 여섯 사람 몫의 은그릇을 식탁 위에 늘어놓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일은, 가난을 기품 있는 분위기로까지 끌어올린 이 집안에서는 애교스러운 일이었다.


하녀는 주교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식당에서 나갔다. 잠시 뒤에는 나머지 은그릇 세 벌도 식탁 위에 보기 좋게 놓여져 반짝거렸다. 식사가 끝나자 주교는 촛대를 하나 들고 다른 촛대는 손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당신 방으로 안내해 드리지요."


사나이는 그 뒤를 따랐다. 손님방을 가려면 주교 침실을 지나가야만 했다. 마침 그들이 그곳을 지날 때 하녀는 침대 머리맡 벽장에 은그릇을 넣고 있었다. 주교는 희고 깨끗한 잠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그럼, 편히 쉬시오."


"감사합니다. 사제님." 하고 사나이는 대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교에게 돌아서더니 험악한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면서 목쉰 소리로 외쳤다.


"아, 당신 곁에 절 재워주시는군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셨습니까? 제가 살인범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주교는 눈길을 천장으로 보내며 대답했다.

"그건 주님께서만 아실 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