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 한상렬
만년필은 가장 섹시한 필기구다. 뚜껑의 디자인이나 손잡이의 선 그리고 펜촉의 강렬함이 어우러져 성적 매력마저 풍긴다. 이런 이유로 만년필은 예로부터 남성 정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특별한 만년필을 애지중지한 일이 있었다. 문단의 제자가 선물로 사준 그 만년필은 아주 오랜 동안 내게 사랑하는 애인의 역할을 다해 왔다. 뚜껑에 하얀 별이 각인刻印된 몽불랑은 아니었다.
원고지를 이용하여 집필하던 때였다. 필기도구의 최상은 만년필이었다. 원고지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쓰는 버릇 때문에 집필을 하노라면 손가락이 아파서 여간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이 만년필이 필기도구로 변하고부터는 그 촉이 연출하는 부드러운 글자체며 강렬한 촉에 매료되어 손에서 그를 놓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그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집필을 할 때나 메모가 필요할 때마다 그는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자랑스레 자태를 드러내곤 했다.
그러구러 몇 해가 지나면서 아리땁던 모습도 서서히 상처투성이로 변해갔다. 애정도 점차 식어갔다. 끝내는 젊은 시절 그토록 못 잊어 하던 그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그를 떨어뜨려 촉을 상하게 한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 강하던 촉도 끝내 맥을 놓고 말았다. 유연하던 펜의 촉감은 이미 무디어졌고, 글자마저 휘어지고 잉크도 잘 흐르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뚜껑을 열면 펜에 흐르던 잉크가 덕지덕지 묻어있거나 잉크가 한꺼번에 흘러 용지를 버리기도 했으니 품에 안고 싶어도 그만 마음뿐이었다. 신혼시절 여우같던 아내가 세월 속에 어느덧 추레한 몰골의 아줌마로 변해버린 것인가? 이후 서서히 그는 연인의 자리를 시앗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서재 연필꽂이에 꽂히는 뒷방 아낙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무렵 내겐 요염한 자태의 새 애인이 나타났다.
젊은 시절 그는 내게 노출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게 하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나신은 나로 하여금 탐닉이 주는 쾌감을 마음껏 누리게 하였다. 본처가 주는 안온함과 평온도 마다할 수는 없겠지만, 관능의 미를 지닌 젊은 여인이 주는 미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한때는 용이 음각(陰刻)된 뚜껑이 있는 만년필을 오랜 동안 애인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중국엘 다녀온 이웃이 선물로 사다준 장식 없는 만년필을 오랜 동안 품에 안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는 여타의 만년필이 주는 아름다움을 애초 거부한 듯 밋밋한 디자인이었지만, 촉감만큼은 뛰어나 집필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내게서 떠나가고 말았다.
지금 내 호주머니에는 새로운 여인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을 다녀온 어느 문우가 돌아오면서 사다준 새 만년필이다. 나는 지금 이 새로운 애인을 맞아 다시금 젊은 시절의 열정을 그에게 모두 바치고 있다.
사랑하는 이가 어찌 이 뿐이랴. 우리 집 서랍 속에 깊이 간직한 내 애인들은 언제 자신을 찾아줄까 지금도 목을 꺾고 기다리고 있다. 유럽을 다녀온 벗이 독일에 들른 기념으로 내게 선물한 애인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아직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만년필이 이렇게 여럿이어도 내게는 이들보다 더 정겹고 소중한 만년필이 있다. 안두에 낡고 추레한 모습이긴 하여도 아주 오랜 동안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만년필이다. 비록 새 것이 지닌 미끈한 아름다움과 화려한 디자인이 있어도 오랜 세월 내게 정성을 다한 추레한 만년필에게 더욱 정이 가는 건 왜일까?
그렇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새 것만을 선호한다. 그래 옛것일랑 언제 보았는가 싶게 새 것에 넋을 빼앗기는 게 세상인심이다. 만년필은 그렇듯 로멘틱한 감성을 담고 있어 좋다.
만년필의 ‘파운틴 펜(Fountain Pen)’이란 이름은 샘처럼 마르지 않고 잉크가 솟아나 잉크를 매번 찍지 않아도 쓸 수 있는 필기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세 시대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는 백작들이 깃털이 달린 펜에 잉크를 찍어 편지글을 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펜의 위력이다. 여기 ‘만년필(萬年筆)’이란 한자어는 누리 만 년을 쓸 만한 필기도구라는 뜻이니 아마도 이것이 중국에 소개되면서부터 그들이 붙인 자의적 해석인 듯 하다. 이런 만년필의 대표는 뭐니 해도 몽불랑(Mont Blanc)일 것이다.
만년필 하면 떠오르는 수필 한 편. 김소운(金素雲)의 <외투>에 보이는 김소운과 유치환의 가슴 뭉클한 한 도막의 이야기. 유치환이 하얼삔(哈爾賓) 무슨 현(縣)인가에서 농장 경영을 하다가 볼 일 이 있어 서울에 왔다 돌아가는 역두(驛頭). 영하 40도의 북만(北灣)으로 돌아가는 청마는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 바람이다. 당자(當者)야 태연자약하지만 곁에서 보는 김소운의 심정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청마에게 줄 아무 것도 없었다. 생각다 못해 그에게 물었다. “만년필 가졌나?” 그리곤 그는 일본 안에서도 열 자루가 되지 않던 스승에게서 받은 프랑스제 ‘콩크링’ 만년필을 청마 손에 쥐어 주었다. 외투도 방한구도 아니련만, 그때 김소운은 자신이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이야기인가?
만년필을 선물로 내게 준 벗들은 그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었으리라. 글을 쓰는 내게 그들은 마르지 않는 샘이 되라는 뜻으로 만년필을 선물하였을 것이다.
어느 여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내가 받은 만년필에는 ‘끝없는 샘’이란 글자가 각인 되어 있다. 샘처럼 마르지 않는 작가가 되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품에 안고 살아간다. 생활 속에서 잠시 벗어나 사색하거나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나 상상의 순간. 즐겨 그녀를 통해 메모를 즐긴다. 또 혹여 사인이 필요할 경우 일필휘지 그는 내 이름 석 자를 남겨준다.
그는 내게 헌신적이다.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는 가까이 있다. 비록 지금은 추레한 모습으로 옛적 영화나 떠올리는 늙은 창녀와도 같은 만년필일지라도 내겐 가장 유순했던 그들이다. 지금 내 양복 호주머니에 꽂혀 현재적 영화를 누리는 새 여인과 사랑스럽기는 매한가지인 만년필들이다. 그들이 내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의 처지가 남다르다는 이유뿐으로 사랑의 득박(得薄)을 말할 수는 없으리라.
아마도 내게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글을 쓰길 바라는 벗들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래 나는 그 벗들에게 언제나 감사한다. 그리고 자랑스레 그 만년필을 양복 호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내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여인을 품에 안듯. 비록 컴퓨터로 자리바꿈한 필기구의 혁명이 있을지라도 그의 사랑만큼은 변함이 없다.
만년필은 내게 있어 가장 섹시한 필기도구이자,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 또한 언제나 내 곁에서 다소곳 나를 편안케 하며, 내 의중대로 필요할 때에 곁에 선다. 가장 사랑스런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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