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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변호사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9. 16:53





 명품 변호사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대한변협 신문의 편집인을 맡은 적이 있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감옥의 철창 안에서도 별을 보는 사람이 있고 바닥의 진창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세상에 좋은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는 명품변호사를 인터뷰해서 기사로 내보내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십이년간 판사를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분을 찾아갔었다. 자존심 강한 판사들도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로 존경받는 것 같았다. 법지식과 함께 인격과 감성 모두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판사가 참 드문 세상이기도 했다.

“변호사가 되어 아래서 판사들이 재판하는 걸 보니까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한 법정에 들어가서 젊은 판사가 재판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당사자들이 두서없이 지루하게 하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거예요. 그 판사는 제출된 서면들을 미리 꼼꼼하게 다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고 법정에 나온 것 같았어요. 의심스러운 점들을 지적하면서 그 설명을 구하거나 해명의 기회를 주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 젊은 판사의 태도를 보면서 법원이 발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본인의 판사 시절은 어떻게 했다고 생각합니까?”

“처음 판사를 할 때는 사람을 일정의 거리를 두고 추상적 인간으로 보려고 했었죠.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죄를 심판한다는 입장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세월이 가니까 형을 선고할 때는 국가의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인생을 살펴봐 주어야 하는 거죠. 변호사가 되어 보니까 내가 했던 판결 하나하나에 대해 슬퍼했거나 억울해 했을 사람이 많은 걸 알았어요. 판결이 한 개인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거죠. 그걸 보니까 너무 겁이 나서 판사를 하라고 해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옆에서 지켜본 판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판사들이 ‘지적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실관계든 법률이든 워낙 똑똑하다는 소리들을 들어왔던 사람이라 본인의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견해나 생각에 귀를 막는 경우가 많아요. 내 생각이 절대라고 하면 다른 말과 증거는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겉으로는 법대에 앉아 듣는 모습을 취하지만 판사 중에는 이야기를 듣는 판사와 안 듣는 판사가 있죠.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경청하는 아까 말한 젊은 판사의 모습에 법관 생활을 한 저도 감동했다니까요.”

성경속의 솔로몬왕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는 것 같다. 그가 덧붙였다.

“판사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전관예우라는 말이 언론에 많이 나지만 친분만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을 못합니다. 판사들을 설득하려면 더 좋은 논리와 증거를 제시해야죠. 그게 친분관계보다 더 중요합니다. 저는 판사들이 공정한 판결을 하려는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전관예우의 덕을 보지만 현실을 보니까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판사와의 인연이 미치는 영향을 과장하거나 사기까지 가는 것 같아요. 언론이 지적하는 전관예우가 일반인들에게 역효과를 일으키면서 오히려 전관을 찾아가는 폐해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면 변호사가 되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론을 합니까?”

나는 부장판사를 하다가 변호사가 된 사람이 법정에 나와 하는 걸 보고 속으로 얼굴을 찡그린 적이 있었다. 그는 재판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변론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변호사는 변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왜 법정에 왔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전관을 알리고 눈도장을 찍으러 온 것이다. 그런 종류도 현실에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변론을 할까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를 할 때 보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억지 논리나 포인트를 알 수 없는 변론, 정리되지 않는 변론을 듣는 순간이 고통이었어요. 그 반대로 핵심을 찌른 이해하기 쉽고 정리된 변론은 사건의 본질 파악에 도움이 되고 판사들이 저절로 그 변호사의 말에 집중하게 되죠. 변호사가 된 저는 글과 말 두 방향으로 변론을 잡았어요.

저의 경우는 변론서에 이해하기 쉽게 사례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리고 그 변론서를 압축해서 법정에서 십분 정도 이내로 말을 할 수 있도록 원고를 다시 만듭니다. 재판 전날이면 구술변론을 연습하고 녹화한 걸 틀어서 내 변론태도를 관찰하죠.”

그의 말에는 판사와 변호사가 갈 길이 정확히 들어 있었다. 나는 그가 대법관의 자리를 향하지 않고 변호사가 됐는지 궁금했다. 그가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털어놓은 그의 변호사 개업 배경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런 명품같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 짝퉁과 가짜를 보고 욕하고 때리기 보다 명품 인간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따라가야 사회가 한단계 오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