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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을 이기는 방법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11. 12:28





흉악범을 이기는 방법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변호사 생활 삼십육년동안 감옥에 가서 흉악범과 둘이서만 만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거친 짐승의 우리에 들어간 것처럼 두려웠다. 잔인한 살인범의 눈에서 야행성 짐승의 눈 같이 푸른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느낀 적도 있다.

도끼로 사람을 죽인 살인범을 봤을 때였다. 그의 눈 홍체 가운데 커튼 같은 막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나를 보는 실루엣 같은 존재를 느꼈다. 그의 속에 들어있는 악령같았다. 그 악령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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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주변에서는 탁한 회색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런 사건을 맡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의사가 병자를 대하듯 그게 나의 직업이었다. 능력이 부족해서 돈 많이 받고 노블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건은 내게 별로 오지 않았다. 밥을 먹고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그들과 만나고 그 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포였다. 독사가 나무 위의 다람쥐를 쏘아 보기만 해도 다람쥐의 운동신경이 마비되듯 흉악범도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흉악범들에게는 특수한 ‘촉’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공포를 꿰뚫어 보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눌리지 않고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했다. 나는 그들의 힘의 근원을 살폈다. 흉악범들을 보통 때 보면 너무나 연약해 보일 때도 있다. 또 착한 경우도 많았다. 판사는 그들에게 범죄의 동기를 흔히 물었다. 그들은 왜 그랬는지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짓이 아니라 진짜였다. 나는 그 원인이 악령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두려움을 주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 내면에 들어앉아 나를 보는 악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악령과 맞서기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빌기 위해 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경우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기도의 힘이 필요했다. 사상범같은 확신이 있어야 했다. 나는 흉악범과 마주할 때 그가 보는 앞에서 먼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성령이 나에게 와서 두려움을 이기게 해달라고. 짧지만 그 기도는 순수하고 절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이럴까 저럴까가 하늘에 계시는 그분과 영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다. 


예수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게 해 달라고 하면서 짧은 기도를 하곤 했다. 신기한 경우가 있었다. 내가 감았던 눈을 뜨고 앞에 있는 흉악범을 똑바로 보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위축되어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반대로 내 마음이 갑자기 담대해 지고 흉악범이 주먹덩이같이 작고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게 내가 체험한 ‘기도의 힘’이었다. 재판정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판사가 갑자기 커보이고 두려워질 때가 있었다. 그런때 일초정도 눈을 감고 기도했다. 그러면 바위 같았던 판사가 갑자기 어린아이같이 작아져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도의 힘이라는게 실제적인지 한편으로 궁금했다. 

한번은 전국구조폭 두목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그들이 연장이라고 부르는 칼을 사용하고 주먹으로 밤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이나 얼굴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런말을 했다.

“변호사들 참 이상해요. 처음에 현찰을 007빽에 가득 넣어다 주면 얼마나 말을 잘 듣고 양순한지 몰라요.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요. 그러다 재판이 끝나고 인사를 갑니다. 나는 그 변호사가 과시하면서 껍데기 변호를 했는지 아닌지 대충 압니다. 둘이 있을 때 슬며서 손으로 배를 밀어 벽쪽으로 조금만 뒷걸음치게 하면 얼굴들이 하얗게 되는 거예요. 아무 말 안 했는데도 먹은 돈을 바로 토해놓는 거예요. 그렇게 약해 빠져서 어떻게 과거에 검사라고 거들먹거렸는지 몰라.”

의미 있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정말 궁금한 점이 있어서였다.

“내가 맞아 죽을 각오를 가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당신에게 맞짱 떠 보자고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같이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싸우면 그에 대한 공포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에서도 용감해지는 순간은 죽을 각오가 된 때였다.

그냥 호기심에서 물었는데 그가 순간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제가 분명히 질 겁니다. 건달의 보스를 주먹만 가지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보스는 기(氣)와 머리로 하는 겁니다.”

나는 변호사업무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여러형태의 기도방법을 사용한다. 기도의 힘은 화려한 미사여구나 이기심에서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영적인 힘이 없다. 나는 토끼같이 약한 존재지만 그분의 영이 나의 연약한 영에 들어오면 나는 영화속 주인공 헐크같이 강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힘은 근육질의 힘만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