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의 저자.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라는 것이 기독교 학자들의 보편적인 학설입니다.
물론 모세오경이 모세가 저자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며 학문적인 다양성은 인정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전통적인 견해도 모세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보고 있습니다.
(1) 15세기 아빌라의 주교였던 토스타투스는 신명기 마지막장에 나오는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글이 모세에 의해서 쓰여질리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스피노자는 신명기의 34장에 있는 "그후로 이스라엘에는 다시는 모세에 비견할 만한 예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의심스럽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의문점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명기34장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후세에 추가된 것이라고 봅니다.
학자들은 34장이 후계자인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 엘르아살이 기록하였다고 봅니다.
또 위대한 고인의 작품에는 대개 그의 사망기사까지 기록하여 첨가시키는 히브리 문서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신명기 34장만을 이유로 모세오경 전체를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입증할만한 증거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신명기31:9은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31:9은 "모세가 이 율법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또 모세오경은 3인칭 시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서도 모세오경은 모세가 집필한것이 아니라 그저 내려오던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인칭 기록은 성경 어디에서도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문학적 양식은 자신을 삼인칭으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굳이 모세오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삼인칭으로 기록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만 모세는 자신의 모든 기록을 삼인칭으로 했다는 것이 차이일 뿐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기록할려고 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반대적인 증거로 신명기 1:16, 18, 3:21, 29:5등 여러 곳에서는 모세가 일인칭(내가...)으로 기록된 적도 있습니다.
또한 모세가 직접 모세오경을 기록하였다고 보기보다는 제삼자인 대필자를 시켜 기록케 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제삼자인 대필자에게 알려주어 기록케 하였다면 모세가 3인칭으로 표시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쨌든 모세오경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직접적인 영감으로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거나 모세 오경의 신적 권위를 제거하려는 시도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3) 문서설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소위 문서설은 어떤 증거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하나의 가설입니다.
문서설은 한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문서설이 존재합니다. 만약에 어느 하나의 문서설이 진리라고 가정하면 다른 문서설은 모두 허위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스스로 모세가 성경을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적인 내적 증거로는 모세가 그 저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성경에서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눅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요5: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고후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예수님의 친히 말씀하신 내용에서도 구약을 모세와 선지자의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성경기자드도 모두 모세와 선지자의 글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성경적인 증거로는 당연히 모세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7:14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혹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되”라는 구절이 매우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또 출애굽기24:4은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계명에 관한 기록은 모세가 혼자 직접 여호와하나님께 받은 것이 분명하므로 다른 사람이 저자라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4) 모세오경이라는 명칭은 맛소라사본에서 “토라”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율법"이라고 번역되어지는데, 구약에서는 “모세의 율법”(왕하23:25. 수8:31)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신약에서도 오경은 “모세의 율법”(마5:17, 눅16:17, 행7:53)이라고 불러집니다.
또 탈무드와 같은 AD160년경에 나온 랍비문헌들은 “율법의 5분의 5”(the five-fifths of the law)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헬라어로는 “헤 펜타튜코스 비블로스”(the five-volumed book)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즉 유대전통적인 해석에서도 모세오경은 한권의 책으로서 모세가 기록하였다고 봅니다.
모세 오경의 저자 모세.
모세의 일생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모세의 일생은 크게 탄생부터 미디안으로 도망하기까지의 기간(1세~40세), 미디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기까지의 기간(40세-80세),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에서 죽기 까지(80세-120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1세-40세 기간을 본다면, ‘건져내다’, ‘들어 올리다’라는 뜻을 가진 모세는 레위의 후손으로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 사이에서 아론과 미리암의 동생으로 출생한다. 출생당시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며, 번성을 막기 위해 태어나는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경건한 믿음의 부모는 석달 동안 숨겨 키우다가 갈대 상자에 담아 강에 띄워 보낸다. 이때 바로의 공주가 갈대상자를 발견하여 모세를 양자로 삼고, 하나님의 섭리로 모세의 친 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들인다.
바로의 궁에서 세상 학문을 배우며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던 모세는 40세 되었을 때 동족을 돌아보게 되고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감독을 죽이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도구로 부름 받을 때 까지 생활 하게 된다.
다음으로 40세-80세 기간을 보자. 미디안으로 도망 온 모세는 그곳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게 된다. 여기서 양을 치며, 아들 게르솜을 낳고 살던 중, 시내산(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임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것을 명령받고, 아론과 함께 애굽의 바로 앞으로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80세-120세 기간을 보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 40년 길을 걷게 하신다. 광야 기간 중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 것을 요구하신다. 이 기간 중 홍해 도하, 요단강 도하,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시는 기적 등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셨다. 이 기간 중 모세는 오경(창, 출, 레, 민, 신)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모세는 많은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모세의 위험한 출생은 예수님의 출생을 미리 보여주었고,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직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신 것을 생각나게 한다. 출애굽 당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사역을 감당한 면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그러하다
모세오경의 문서설
모세오경"이란 이름은 성경의 처음 다섯 권에 붙인 명칭이다. 이 이름은 "다섯 두루마리"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모세 오경"이라고도 불리는 히브리어로는 이 책을 "토라"라고 부른다. 토라는 전통적으로 "율법"이라고 번역된다. 하지만 히브리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품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훈"이나 "계시"로도 번역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나타낼 때 그렇게 사용된다.
모세오경 문서설이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모세가 이 다섯 권의 책을 썼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 그것은 주전 15세기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을 부인하는 학자들과 반대론이 있는데. 그것을 문서설 (the Documentary Hypotheesis)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세오경 전체가 최소한 4개의 문서( J,E,P,D )를 기초로 편집된 것으로 본다. 창세기 1장에서는 엘로힘(Elohim)을 사용한 E문서, 2장에서는 야웨(Yahweh)를 사용한 J문서가 있다고 보는 가설적인 학설을 말한다. 오경은 이런 여러 개의 이야기와 시와 율법의 모자이크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18세기까지는 오경(五經)은 모세가 기록한 책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19세기는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는데 이들은 “분석분리” 하는 방법으로 학문을 이루어 나갔다. 이에 영향을 받아 성경연구에서도 이 방법이 도입되었다. 모든 성경학자들이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러한 견해가 수용되기도 한다.
문서설의 발단과정은 불란서의 Jean Astruc(아스트럭) 이다. 그는 의사이었는데 창세기를 읽어내려 가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두 가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는 “야웨(여호와)” 이고 다른 하나는 “엘로힘(하나님)” 이었다. 동일한 하나님이 두 가지 명칭으로 불리워진 이유를 알고자 하였다. 이런 아스트럭의 생각에 많은 학자들이 동참하여 연구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Julius Wellhausen(벨 허우젠)의 손을 거쳐서 마무리 지어졌고 마무리 지어진 연구결과를 문서설이라고 한다.
문서설에 따르면 주전 8세기-4세기에 이르는 동안, 네 권의 책이 쓰여졌는데 이 책들은 여러 편집자들의 손을 거쳐 하나로 편집하였다. 편집자들은 비슷한 문장이나 문단은 배합해서 하나로 만들고, 또 비슷하지만 하나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나 문단은 앞뒤에 나란히 놓았다. 그래서 이런 네 가지 문서가 하나로 편집된 것이 모세오경이라 한다.
문서설이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보지 않고 네 문서가 편집된 것으로 보는 이유는
1. 모세의 사망기록이 신명기 있는데(신 34:1-12) 모세의 생시에 자신의 사망에 관해서 기록한 것인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사망기록은 모세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쓴것임을 알 수 있다.
2. 오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Elohim” 또는 “Yahweh” 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명칭이 두 가지가 나오는 것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고 한다. 이유는 모세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3. 오경에는 같은 사건이 두번, 세번 나온다. 야곱의 개명 사건이 두번 나오는데 장소가 다르다. 한번은 브니엘, 또 한번은 벧일이라고 하였다. 만일 단일 저자라면 개명 장소가 다를 이유가 없다.
4. 오경에 나오는 율법은 광야 유목생활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가나안 정착생활에 맞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죽은 후, 오랜 뒤에 오경이 기록된 증거다.
5. 제물을 드리는 장소가 한결같지 않다. 노예에 관한 규정일정하지 않다. 출애급기에는 종을 사면할 때에 값없이 하라고 하였는데, 신명기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곡식과 포도주를 주어 가게 하라 하였다. 이것은 오경이 단일 저자 모세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저작이 하나로 합쳐진 것임 보여주는 것이다.
6. 오경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을, 시내산 그리고 호렙산이라고 하였고, 모세의 장인을 르우엘, 호밥, 이드로라고 하였는데 단일 저자 모세라면 장인의 이름을 세 가지로 나타냈을 리가 없다.
7. 이런 문제점들을 근거로 해서 오경을 분리분석 연구하여 네 가지 문서로 정리하였다. 네 문서는 각각 성명미상(unknown)의 저자가 쓴 책이며, 네 문서는 성명미상의 사람에 의해서 한권으로 편집되었다. 편집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주전 9세기부터 주전 5세기 사이에 편집되었을 것이라 한다. 문서설이 지니고 있는 큰 하자는 “성명미상” 그리고 연대를 막연히 언제쯤으로 나타내는 점이다.
문서설이 분리해 놓은 네 가지 문서
J 문서
첫 번째 자료는 이른바 "J"(여호와를 표기하는 영어의 머리글자)로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때인 주전 10세기(950-850)에 예루살렘에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이다. 천지창조부터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점령하고 그곳에 정착하기까지의 역사이다. J문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명칭으로 yahweh가 나온다. 사용돤 재료는 전설, 신화, 노래, 이방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등이다. 이 재료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과 문서로 내려온 것이다. 하나님을 나타낼 때, 마치 하나님을 마치 사람인양(anthropomorphsim)으로 나타내고 문장은 간결하다.
J문서를 기록한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종교를 보존 방어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 때에 가장 부강한 나라였는데, 따라서 이웃 나라들과 왕래가 빈번해졌고 그러므로 ‘이방적인 요소’가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켜졌다. 이것을 염려한 사람이 글을 썼다. 이방요소를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Yahweh이시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Yahweh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야웨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E 문서
"E"("엘로힘"를 표기하는 영어의 머리글자)라고 불리는데, 주전 9세기(850-750) 이래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J문서처럼 이스라엘 역사이다. 아브라함 중년부터 가나안 정복 정착까지의 역사이다. J문서와 다른 점은 법조항들이 역사에 끼여 든다. E문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불붙는 가시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기까지는 Elohim(엘로힘)이라는 신명(神名)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Yahweh가 나온다. 그래서 Elohim의 첫 자를 따서 E문서라고 한다. E문서는 J문서처럼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분산되어 있다. 사용된 재료는 북쪽 이스라엘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승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J문서와 동일하지만 어떤 것은 다르다. E문서는 꿈과 천사에 관한 말을 즐겨 쓴다.
D 문서
요시야 임금 때(주전 621년)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다. (왕하 22장) 문서설에서는 이 책이 오경에 들어있는 신명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Vulgate(벌게이트)역 의 명칭 Deuteronomium(신명기)의 첫 자를 따서 D문서라고 한다. D문서는 왕하 22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주전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D문서에는 Yahweh와 Elohim이 사용된다. 특색은 이스라엘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반 가나안적이며 인도주의적이다. 제물은 한곳에서만 드려야 하고, 레위족의 남자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면 잘되고 멀리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D문서를 기록한 목적은 종교개혁을 위해서이다. 와해된 종교의 힘을 재정비하는 데 있다. 오래 전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고 우상을 배격하라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모세의 강조를 재강조하는 데 있다. D문서는 법전집이고 서론에 역사가 첨가되었다.
P 문서
P문서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고 있던 제사장 또는 제사장의 group이 기록한 책이다. 주전 600년부터 500년경에 바벨론에서 만들어졌다. 내용 법전집이다. (a new code of laws) 법조항을 딱딱한 법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쓰지 아니했다. 역사(history)를 쓰듯이 했다.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 법조항들을 집어넣은 것이다. P문서에 들어 있는 법조항 가운데 H 법전 (the code of holiiness)라고 하는 법조항이 있다. H법전은 바벨론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 사람들하고는 구별된 삶을 가지라고 권하는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구별된 분이신 것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도 구별된 삶을 가져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P문서는 E문서처럼 신명(神名)이 두 가지로 나온다. 출애굽기 6장 2정 이전까지는 Elohim이 나오고, 그 뒤부터는 Yahweh가 나온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그리고 민수기에 분산되어 있다. 제사직과 제사 그리고 제물을 강조한다. P문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종교와 문화의 유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쓴책이다.
문서설의 목적은 오경을 분리 분석하는 데 있다. 이 방법은 구약전체에 확대 적용되었으며 나중에는 신약성경 복음서(공관복음서 문제)의 자료분석에도 사용되었다.
J 문서 :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여호와’에게서 딴 것
E 문서 : 보다 일반적인 하나님의 명칭인 ‘엘로힘’에서 딴 것
D 문서 : 신명기적 문서
P 문서 : 제사장적 문서. 주로 신학적이고 제사적인 문제
보수주의 신앙과 문서설
보수주의에서는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고 믿고 있다. 다음과 같은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1) 유대인들은 지금도 오경은 모세의 저작이라고 믿고 있다. 구약은 유대인들의 책이며 그들이 모세의 저작이라고 읻고 있는 이상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2) 창세기를 빼고는 오경 전권에 오경의 저자가 모세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출 17:14, 24:4 민 33;1-2, 신 31:9, 출 34:27) 구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수 1:8, 8;31, 왕상 2:3, 왕하 14:6, 왕하 21:8, 스 6:18, 단 9:11-18)
2. 예수님과 신약의 저자들도 모세를 오경의 저자로 인정하고 있다. (막 10:4-5, 눅 24:27,44, 행 15:5,21, 롬 10:5)
(3)그 밖의 내적증거가 있다. 문서의 내적증거를 찾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사건, 지리적 기후적 조건, 당대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것인데, 오경의 내용 중에서 애굽의 지리적, 기후, 식물, 명칭, 문화, 그리고 고대사회에 관한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 모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4) 결론적으로 이같은 문서설 내지 비평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고, 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고, 성경의 능력을 부인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성경은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유전, 전설, 역사적 기록, 고전 등에 불과하게 만들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평학적, 분리분석학적 방법으로 성경은 연구하는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하는데 큰 영향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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