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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25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1.

Joyfule 2006. 12. 27. 01:51

목적이 이끄는 삶 - 25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1.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정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고통의 틀이 거룩한 금을 만든다.
귀용부인(Madame Guyou)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분은 우리의 성품을 개발시키려고 상황을 이용하신다. 사실,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시려고 성경보다도 상황을 더 많이 사용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어떤 상황이든 상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 많은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수님의 경고 하셨다(요 16:33). 그 누구도 고통에 대한 면역성은 없으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무런 문제 없는 삶을 순탄하게 살 수 없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또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메꾼다. 베드로는 문제에 지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하나님은 우리를 그에게로 가까이 오게 하시려고 문제들을 사용하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우리가 경험한 가장 깊고 친밀한 예배는 아마 가장 힘든때 드린 예배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내리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을 때,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심한 고통으로 신음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한다. 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정직한 기도를 배운다. 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기도를 할 에너지가 없다.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이렇게 지적했다. “삶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그분을 모방하고 인용하고 그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만이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하실 수 있었고(창39:20~22),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실 수 있었으며(단6”16~23),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지지 않도록 하실 수도 있었다(렘 38:6). 또한 바울이 탄 배가 세번이나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셨고(고후 11:25), 세 히브리사람이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셨다(단 3:1~26).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문제들이 모두 일어나게 하셨고, 그 결과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 자신보다 그분을 더 의지하게 한다. 바울은 이렇나 유익함에 대해 이렇게 간증했다.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을 당해, 삶의 소망조차 없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고후 1:8~9, 쉬운성경). 우리는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진 것이 하나님밖에 없을 때가 되어서야 깨달을 것이다.

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닥친 어떤 문제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미 아버지를 한번 거친 것이고, 사탄이나 다른 이들이 약하게 사용하려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을 선을 위해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주권 속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뜻밖의 사건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 뿐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달력에는 우리의 매일의 삶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시 139:16)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적으로 중요하다. 모든 것이!로마서8장 28~29절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8~29).

로마서 8장 28~29절 이해하기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잘못 인용되고, 잘못 이해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명백히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일이 이 땅에서 행복한 결말을 맺게 하신다”고 말하시지도 않는다.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불행한 결말도 많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직 천국에서만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을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도록 배우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8, 29절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구절별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어려울 때 우리가 갖는 희망은 긍정적인 사고나 소원 혹은 단순히 바라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약속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고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약하게 작용한다.

“모든 것이”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실수, 죄 그리고 우리의 상처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빚, 질병, 이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까지도, 하나님은 가장 악한 것에서도 선을 이끌어내실 수 있다. 갈보리 언덕에서 그러셨다.

“협력하여”

각각이나 독립적으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그것들은 각각 독립된 사건이 아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는 과정의 상호 의존적인 부분이다. “케이크를 굽기 위해서는 밀가루, 소금, 계란, 설탕 그리고 기름이 필요하다. 따로 먹으면 별 맛이 없고 심지어 쓰기까지 하다. 하지만 함께 구우면 아주 맛있는 케이크가 된다. 우리의 모든 불쾌한 경험들을 하나님께 맡기면 그분은 그것을 엮어 선을 행하신다.

“선을 이루느니라”

삶의 모든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악하고 나쁘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에서 선을 끌어내는 것을 전공으로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식 족보에는(마 1:1~16)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라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 다말은 시아버지를 꾀어서 임신한 여자였고, 라합은 창녀였다. 룻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남자와 결혼을 하는 죄를 지었고, 밧세바는 다윗과 간통을 하고 결국 남편은 살해되었다. 그들의 이런 전력들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 죄악으로부터 선을 끌어내셨고, 예수님은 그 핏줄에서 나오셨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문제, 고통 그리고 우리의 죄보다도 크다.

“하나님이……미리 정하셨으니”

모든 일에는 위대한 디자이너가 있다. 우리의 삶은 우연, 운명 혹은 운의 결과가 아니다. 삶에는 마스터 플랜이 있다.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조종하신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실수를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분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가 “당신의 아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게 하신 모든 문제는 그 목적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