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성경 이해를 돕는 몇 가지 원칙들
5.문자적으로 이해
모든 언어는 크게 두가지 표현방식이 있는데 문자적 표현과 수사적 표현이 있다 . 언어의 표현 중에서 일차적인 표현이 문자적 표현이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나 글을 읽을 때 문자적인 해석으로 이해가 안 될 때까지 우리는 먼저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다음 두 가지 원칙이 문자적인 해석과 이해를 요구한다.
첫째, 인간의 언어 관습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그 대화를 서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약속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한 사람이 “빵”을 말할 때 상대방도 먹는 빵으로 이해해야한다. 이럴 때 피차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그 진단 결과를 X- 사진 등 자료와 함께 분명히 보여주며 “폐암이니 빨리 입원하고 수술 준비를 하시오 ” 말했는데 듣는 자가 폐암을 폐암으로 알지 않고 수사적인 표현 ,즉 “감기기침을 강조하여 말했겠지’ 자기 임의대로 이해한다면 이 환자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둘째, 성경의 목적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계시인 성경을 인간에게 주신 이유는 인간이 그 계시를 읽고 이해해서 구원받고, 구원받은 후 변화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성경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수사적 표현도 신비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한 성경의 예언은 성취의 시간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여러 가지 사건을 함께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예언이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에 유의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바벨론 포로, 주의 날과 연관된 사건들, 바벨론에서의 귀환,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회복 등이 시간과 장소 구별 없이 뒤엉켜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특히 많은 혼동을 야기시켰다. 오늘 우리가 볼 때에 2,000년 이상의 갭(GAP)이 있는 사건을 동시에 언급되어있다. 예를 들면 사61:1~2의 말씀을 주님께서 눅 4장 18절에서 19절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에서 인용하고 계신데 두 곳을 비교 분석해보면 주님께서는 이사야 61:2의 첫 부분에서 인용을 생략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2절의 첫 부분까지는 주님의 초림때 그리고 그 이하는 주님의 재림때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이사야 61:1이하에서는 시간차가 없이 함께 예언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2절 상반 절까지와 그 이하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은 율법의 실체이신 예수님으로 오심으로 폐하여질 내용이 있다(히10:9).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기”(고전 13:10) 때문이다. 영화 예고편은 본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광고용이다. 본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면 폐기처분하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제사는 지금은 마땅히 폐하여야 할 예수님의 예고편과 같은데 오늘날도 유월절을 고집하는 류의 어리석은 이단도 적지 않다. 이와다르게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 내용은 오늘날도 계속 지켜야할 계명이 있다(레19:18,마5:17).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내용이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없다. 만약 없다면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주님께서 실수하셨다고 귀결시키는 우를 범하게 되는것이다.
또한 구약의 결론은 오실 메시야의 예언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임하실 만왕의 왕과 똑같으신 성령님을 증거하고 있다(렘36:26~27,욜2:28~29).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시면 우리가 비로소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성결의 소극적인 개념은 죄를 범치 않는 것이고 적극적인 개념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성결의 명령은 모든 시대의 도덕률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십계명은 신약의 예표가 아니고 영원한 도덕률의 규범이기에 신약의 성도들도 준수하여야 할 주의 명령이다(참고: 마22:34-40). 이러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문자 그대로 받아드리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받고 성령님에 의해 살 때 성결한 삶, 곧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수 있게된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롬8:29)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고 주님을 따라 가는 제자의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마16:24).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승천후 약속대로(요16:7)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나가는 세계 선교 사역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신약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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