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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우리들을 위하여 - 신달자

Joyfule 2015. 10. 31. 10:12

 

 

우울한 우리들을 위하여 - 신달자

 

우울증이 있습니까?

그러면 저의 친구가 될 수 있겠네요.

갑자기 사람들이 싫어져 혼자 방 안에 처박혀 은폐의 공간 속에 캄캄하게 있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삶이 시들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아무런 의미 없이 느껴져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가능한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고 있는 일도 불필요하게 느껴져 손에서 놓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검불 같은, 먼지 같은 나 자신이 너무 무거워 후후 하고 불어 버리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드디어 이 세상이라는 그릇에서 자신을 깨끗이 지워 버리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어떻습니까? 캄캄하게 눈을 감고 있습니까? 사람들과 멀어져 홀로 있습니까? 모든 게 싫어 자꾸만 지구 끝으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자신을 지우려고 당신의 소지품을 정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을 먹고 있는 중입니까? 병원을 가고 있는 중입니까?

 

자, 우리들의 우울증을 위하여 우리 손을 잡읍시다. 우리들의 우울증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 그리고 우리 함께 큰 소리를 내어 웃어 봅시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정신적 질병이라고 합니다. 당신과 나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조금씩 혹은 조금 더 자주 앓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거리에 아름답게 차려입고 걷고 있는 저 여자도 우리와 같이 마음을 앓으며 우울해 있는 그런 여자입니다. 지금 막 우리 앞에서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싣는 저 여자도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해 끝내 수면제를 입 안에 털어 넣은 여자입니다. 저 사무실 속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흐트러지지 않은 몸매로 일하고 있는 저 남자도 우리와 같이 우울과 싸우는 사람입니다.

 

호화판 저택에서 고급 음식과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사람도, 내일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는 사람도, 세상의 권력을 쥐고 호령하며 고급차의 뒷자리에 등을 기대고 있는 사람도, 거리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굶주림과 절대피로를 견디며 생존에 목을 걸고 있는 사람들도, 새벽 3시 아직 귀가하지 않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도, 백화점에서 한 달 생활비를 잊어버리고 마구 물건을 고르고 있는 여자도 우리와 같이 우울증으로 마음을 앓는 사람들입니다. 조금도 우리와 다를 바 없거나 조금은 다른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우울을 병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생명은 늘 불안합니다. 생활도 늘 불안합니다. 미래는 더욱 불안합니다. 이런 연쇄적인 불안 속에서 누가 우울증을 앓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우리는 지극히 고독합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고독’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뛰어넘는 깊은 심연입니다. 우리는 가차 없이 거기 빠지고 빠지게 되면 그것이 곧 수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고독하지도 않은데 고독하다고 나팔을 불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못하고 말을 안 하고 깊이 고독합니다. 고독은 우리를 처량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에서 이겨야 합니다. 내가 고독하다고 누가 손잡아 주지도 않습니다.

고독은 고요하지만 총칼로 싸우는 전쟁처럼 피를 흘립니다. 얼마나 아픈지 고독으로 인해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래서 고독 속에서 고독을 부리며 고독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삶이란 보편적인 삶을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구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찮고 시시하고 볼품없는 보편성의 생활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바로 고독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당신은 압니다. 인생이란 마음에 그리는 미래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진정한 미래의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함께 외롭고 억울하고 슬프고 눈물겨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잘 살아가는데 나만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인데 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의 현재를 가장 큰 재산으로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시간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노동을 통하여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몸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뭐든 할 수 있는 천하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아낍시다. 이 세상 누구도 우리를 알아 주지 않는 그 무관심을 경멸합시다. 그 무관심을 경멸하는 힘으로 일어납시다. 혼자 많이 가진 척하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혼자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혼자 지식의 보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혼자 고독 따위는 쉽게 이겨 낸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우리는 배가 고픈데 혼자 배부르다고 고기 주문을 단절시키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별장이 두 개나 되니 관리가 귀찮다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사람도 경멸합시다. 왜 만나는 남자마다 날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도 경멸합시다. “돈이야 벌면 되지!”라고 큰소리치는 여자도 경멸합시다. 우리가 경멸할 사람이 너무나 많겠지만 우선 이들만 미워해도 우리는 바쁜 걸음을 치게 될 것 같군요.

 

자, 우리의 우울을 위해 세상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시다. 우리는 산다. 우리는 현재를 이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 사치는 부리지 않겠다. 나의 삶의 외진 그늘 한 조각을 열심히 사랑하겠다. 우리는 외치며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의 존재를 알립시다.

 

당신은 압니다. 우리는 가난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에 굽히지 않는 사람은 칭찬합니다. 우리의 우울증에 굽히지 맙시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게 합시다. 우리는 모두 안 되는 일이 많고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며 내장이 터져 나가도록 억울하고 분하며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비껴 나가 있습니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외롭고 고독하며 가장 많이 우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나만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나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상 삶이 맹수보다 무서운 순간이 너무 많았으며 삶이 지옥의 불바다처럼 뜨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살았고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친구들과 밤늦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칼로리가 많은 술과 안주를 잔뜩 먹고 돌아가는 길인데 집 가까이 포장마차 앞에서 발을 멈춥니다. 갑자기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이 남자는 뭔가 쓸쓸하고 외롭고 자신이 더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남자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맙니다. 사실 이 남자의 몸통은 불렀지만 왠지 이유 없이 허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정서적 허기라고 부릅니다. 별로 행복한 일도 별로 신통한 일도 생기지 않는 나날. 가슴속으로 생기는 허기는 어쩌면 우동으로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 여자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맘껏 웃으며 배불리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박장대소하며 즐거웠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왠지 소슬합니다. 갑자기 섬에 혼자 있는 느낌, 다들 잘나가는데 혼자 뒤처진 느낌이 갑자기 허기를 느끼게 합니다. 저녁밥을 많이 합니다. 너무 우울하고 식구들과 말도 하기 싫어집니다. 너무 많이 한 밥은 결국 이틀 후에 버리게 됩니다. 누렇게 뜬 밥과 함께 자신도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가난한 생각에 시장에 가서 싸구려 물건과 옷을 사 버립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허기는 싸구려 옷이나 물건으로 메우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들의 정서적 허기는 몸통이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것입니다. 그 허기를 위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밤늦게까지 서로 이야기라도 하면 어떨까요. 동네 산책이라도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하나를 정해 뭔가 배워 보면 어떨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꽃 이름을 외우거나 식물 이름을 외우거나 일기라도 적어 보면 어떨까요. 어머니의 자서전이라도 서툴지만 시작해 보면 할 일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 유령 허기는 슬슬 물러갈 것입니다. 하긴 근본적인 외로움이야 생명이 갖는 그늘이라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살았으며’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시인 릴케는 말했습니다.

“힘 내라고! BON COURAGE! 밤에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아무런 관련 없이 로댕은 곧잘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이 말이 나에게 매일매일 필요한 말이었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댕의 제자 릴케가 언제나 들었던 스승 로댕의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삶이라는 것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힘 내라고!” 라는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울해하는 나의 친구들이여!

나와 우리들의 새 삶을 위해 잔을 높이 듭시다!

자! 힘을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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