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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자의 모습

Joyfule 2014. 9. 16. 08:32

 

복 받은 자의 모습

 

평안함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의 특징은 무엇일까? 백만장자로 주체할 수 없는 부를 가진 자일까? 아님,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대통령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부와 성공의 모습은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 하는 복과는 거리가 있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복을 주시기보다 우리의 삶이 평안하게 누리는 것을 더 원하신다.

삶이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뻐하며 섬기면서 천국의 평화를 느끼게 하고 싶어 하신다. 평안한 삶은 물질적인 욕구가 채워진다고 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걱정과 근심이 사라져야 느낄 수 있다. 불투명한 미래를 보며 가족과 자신의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비롯하여 예측할 수 없는 재앙과 불행이 이러한 염려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연히 임하는 불행과 재앙에 대해서도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간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돈에 기대고 있다. 엄청난 재산이 있다면 먹고 사는 걱정은 물론 어떤 재앙과 불행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과 재벌가족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벌들은 자신의 부가 사라지거나 빼앗길까 봐 두려워서 보통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물론이고, 겹겹이 경보장치를 설치하며 경호원을 두고 스스로 만든 숨 막히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 가끔 그들의 자녀가 이러한 삶에 견디지 못해 방탕하게 살다가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거나 자살로 생명을 끝내는 모습에서 이들이 처한 두려움과 고통을 설핏 보게 된다. 그렇지만, 막대한 부를 얻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돈만이 그들에게 걱정 없는 삶을 안겨줄 것이라는 철썩 같은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나 형편에 상관없이 마음이 늘 기쁘고 즐겁고 평화스럽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먹고 사는 걱정이 그들의 맘을 억누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먹고 사는 환경을 마련해주셔서 부지런히 일하기만 하면 생계에 충분한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에서 보호해주시고 악한 영의 공격을 막아주시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없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복이 임한 모습이다.

형통함

‘형통’이란 사전에서 찾아보면 모든 일이 뜻한 바와 같이 잘 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자신이 계획하고 뜻한 대로 세상일이 잘 풀려 나간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백만장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게 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복 받은 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형통한 복은 우리가 바라며 소원하는 복과 같은 것일까? 기복신앙을 하나님의 참된 복인 양 말하는 자들이 강단에서 앵무새처럼 말하는 복이 바로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형통한 복이다. 그들은 몇몇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자녀가 번창하며 부자로 살게 된다고 주문처럼 설교 때마다 외우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형통한 복이 우리가 바라는 형통한 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시는가? 우리가 성경을 분별하고 구별해서 알아야 할 이유는, 성경 한 구석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라도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구약의 성경원문은 이미 사라졌고 후대에 사본으로 남겨진 것을 토대로 학자들이 다시 짜 맞추어 재구성한 것이며, 오랜 세월 후에 한글로 다시 번역해서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통하여 모든 성경은 기자들의 속한 시대와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된다. 또한 변역하는 과정에서 다시 역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원문에 쓰여진 의미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이러한 오류를 줄이려면 원문에 충실한 주석과 다른 번역본, 성경사전 등을 토대로 원래의 뜻을 추론하는 꼼꼼하고 세심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 더불어 성경에 기록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성경구절에서 이러한 뜻을 뒷받침 해주는 다른 구절이 있어야 더욱 명확한 뜻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말이 바로, 성경은 성경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소원하고 바라는 형통함과 하나님이 뜻하시는 형통함의 구별은, 우리의 탐욕으로 인한 소원인가 아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람인가에 달려 있다. 하는 일마다 잘되어 부자가 되고 성공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은 자신의 생계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사용되는 데 있다.

그렇지 않고 끝없는 탐욕과 방탕한 쾌락을 위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형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별이 기복신앙의 거짓된 복과 하나님의 참된 복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수 없이 약속하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통함은 당신의 자녀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누리며 즐겁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는 데 그친다.

 

이웃과 비교하여 더 많은 것을 끝없이 요구하며, 살아가는 데 충분한 재물이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여 더 많은 것을 요청하고, 절제하며 자족하는 성품이 없이 방탕함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사용되는 형통이라면 아무리 간절히 기도하고 요청하더라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형통은 성경에서 약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는 이 땅에서 잘되는 현세적이고 지상적인 형통함이 제외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형통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당신의 자녀에게 필요한 생계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형통함이다. 하나님의 당신의 자녀에게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늘의 복만 주시는 게 아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평안하고 넉넉하게 살도록 부족함 없이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가진 재산이나 신분, 상황, 환경에 상관없이 모두들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복 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게 해주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혜로움

지혜는 성경에서 507번이나 나오는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지만 지혜에 대한 중요한 뜻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섭리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사람이 영혼이 잘 되는 것 못지않게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사는 비결은 다름 아닌, 이 하나님의 지혜를 얼마나 받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혜를 단지 성공의 수단이나 우수한 학업성취를 위해 필요한 요소인 이해력이나 기억력, 집중력이 뛰어난 정도쯤으로 여기고 있음이 안타깝다.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고 계시므로 지혜 덩어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동행하기를 바라는 성령님을 지혜의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에게 평안하고 형통한 비결을 얻게 해주는 수단으로 당신의 지혜를 부어주신다.

그래서 지혜는 행복한 삶의 요소인 동시에 만족한 삶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은 모두 지혜롭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로 구분된다.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일지라도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나름대로 하나님의 원칙을 발견하고 이를 대대로 덧붙이고 완성하여 성인이나 철학자, 사상가 등의 이름을 붙여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따르며 배우고 익혀 삶에 적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의 지혜는 오직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쪽에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완전한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 짝이 없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지혜는 세상과 타인의 삶에서 발견한 지혜에다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을 집어넣어 섞어 놓았으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것도 적지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의 사상가, 철학자, 종교가들이 말하는 지혜가 성경의 지혜와 비슷한 것이 적지 않은 것이 그러한 이유이다.

성경의 지혜서로 일컫는 잠언이나 전도서, 욥기를 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자세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누누이 밝히고 있다. 지혜가 단지 일상의 삶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되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명철하게 생각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를 부어주셔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게 되는 능력을 얻게 해주신다고 말한다. 물론 부어주시는 방법도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와 기도를 통해 명철해지며 분별력이 뛰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좆아 배우고 삶에 적용하도록 당신의 종을 통해 기록하신 성경을 통해 습득하게 해주시는 것이 중요하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삶에 올곧게 적용하므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뿐만 아니라 악한 영으로부터의 공격에서 보호받고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범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지혜는 성공과 부를 얻는 수단으로 부자가 되며 높은 권력을 얻어 떵떵거리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능력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탐욕과 방탕함으로 범하게 되는 사탄의 덫에서 피하여 영혼과 생명을 구원받고, 세상의 법칙과 원칙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무지함에서 빚어지는 고난과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해악과 위험을 피할 줄 알아 삶의 평안함을 파괴하고 생명을 빼앗는 무서운 인생의 지뢰밭을 피해 사는 능력을 갖추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비록 부자나 높은 신분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부자들이 얻지 못한 평안함과 형통함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행함으로 보호와 안위를 받아 주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음이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걸어가는 인생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