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참된 복의 실체

Joyfule 2014. 9. 15. 08:02

 

 

참된 복의 실체

 

하나님의 선물
선물이란 받게 되는 순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의 특별한 날에 당사자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불러놓고 깜짝 놀라게 하여 축하를 나누며 그 기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선물은 다른 상이나 보수와 구별되게 다른 점은, 받는 사람의 자격이나 선물을 주는 이유가 오직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받는 사람과 상관없이 주는 사람이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평소에 갖고 싶고 소원하는 것이 있지만, 구입할 능력이나 소유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이 뜻하지 않게 받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이런 선물을 받게 된다면 주는 사람의 성품이나 은혜에 더욱 감복하게 되며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 평생 잊지 않게 될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요건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과 명령을 지키고 잘 따르는 조건을 붙이지만, 팔복으로 일컬어지는 예수님의 복은 그 조건이 없다. 가난하고 슬퍼하며 비천한 처지에 있는 자들이 조건이라면 조건일 것이다.

구약에서 말씀하는 복을 받을 자의 조건도 주어지는 복의 내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오거나, 전 재산을 털어 교회에 바치거나, 불가의 승려처럼 속세를 버리고 결혼을 하지 않으며 평생을 산속에서 도를 닦아야하는 가혹한 조건을 붙였다면, 이 땅에서 안락하고 형통한 삶을 살며 죽어서도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대가에 걸 맞는 조건이 될 지도 모르겠다.

 

구약에서 복을 받는 자의 조건이라고 해봐야 성대한 파티에 초대하면서 단지 정장을 입고 시간에 맞추어 오라는 것 같은 사소한 조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복 받을 자에게 내거는 자격은 조건이라기보다 복 받는 자가 영원히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베푸는 자의 세심한 배려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예수님은 그 조건마저 폐지하고 삶이 고단하고 가난하며 불쌍한 자들이면 누구에게나 내려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복이 당신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땅의 적지 않은 목자들은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복을 과대 포장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모양으로 덧씌우고 다시 고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자격요건을 걸어놓았다. 그 자격요건이라는 것이,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교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드려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는 필수이며 새벽예배, 수요예배에 참석해야하고, 목회자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지켜야 하며 목회자를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처럼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한다는 것 등이다.

 

어디 그 뿐인가?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 등의 임직 시에 가난해서 직분에 맞추어 교회에서 요구하는 특별헌금을 내지 못하면 자격이 없다면서 직분자의 명단에서 제외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하늘의 복을 받을 자격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가난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치 하나님이 자녀에게 선물로 주신 복을 가로채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다 파는 행위와 같을 것이다.

복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
세간에 우스갯소리로 뇌물과 선물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밤에 잠이 잘 오면 선물이고 잠이 오지 않으면 뇌물이라는 얘기가 있다. 맘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 즐거운 선물이지만, 뇌물은 주는 자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청탁의 목적으로 주는 것이기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복잡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교육시킬 요량으로, 잘 지키는 자에게 상으로 복을 내려준다면 단순한 선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자신의 믿음이나 신앙행위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은 위의 성경말씀은 허탈한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단내 나는 의지로 행하는 신앙행위를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책망을 들은 사건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의 신앙행위는 요즘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은 철저히 지켰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도시간을 정해 기도생활에 힘썼고, 토색, 불의, 간음을 결코 하지 않고 몸을 성결하게 유지하였으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금식을 하였고, 텃밭에 가꾸는 채소조차 구별하여 드릴 정도로 철저한 십일조를 기본적인 신앙의 덕목으로 지키고 있었다.(눅 18:10이하) 그들은 우리들이 겨우 지키는 주일 성수나 새벽기도, 십일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다면 우리가 드러내고 싶은 믿음이나 신앙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복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악한 행동을 밥 먹듯이 하였지만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라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기만 하여도 넘치는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신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라면 누구나 영생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듯이, 하나님의 복도 우리가 수고한 대가로 얻어지는 삯이 아니라 베푸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선물의 내용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면 선물의 내용물과 함께 보낸 사람이 누군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린 학생이 아빠의 생일선물로 보낸 것이라면 마음과 정성이 듬뿍 담긴 내용물일 것이고, 회사 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내는 것이라면 제법 값나가는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만드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어떤 내용일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며 평생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스타일이 늘 그렇듯이, 이 선물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놓아 자격이 없거나 성의가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선물이 존재하는 지조차 모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이러한 비밀을 풀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하늘의 신령한 복
하나님이 주시는 복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복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주시는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밝히기를 온갖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된 말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 곳에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함이 넘치는 곳이라고 했으니 이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짠  하게 전율이 오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크게 들린다. 잠시 왔다 가는 이 땅에서 오랫동안 남의 집에 세를 내며 살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사서 들어가도 그 기쁨으로 몇 달 동안은 잠도 잘 오지 않고 꿈인 양 지내게 되는데 어찌 천국의 삶을 상상할 수 있으랴? 천국에 다녀 온 사람이 있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벌레만도 못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곳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물로 준비해 두셨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 땅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비천하며 고생이 평생 떠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도,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가게 될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그 곳에서 기쁨과 행복에 싸여 살게 된다면 잠시 왔다 가는 세상의 삶에 미련도 없고 안타까워 할 것도 없을 것이다. 도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숲 근처에 전원주택을 지어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평안하게 쉬고 있어도 꿈같은 삶 일진대, 영원토록 천국에서 살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렇지 모델 하우스에서 실제의 집을 상상해 보는 것처럼, 한번만 가 보아도 어서 빨리 천국에 살고 싶은 마음에 이 땅에서의 삶이 허접 쓰레기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우리가 바라는 지상의 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시고 천국에서의 복만 줄기차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마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이지 깨닫지 못하고 하찮은 세상의 복에 목을 매는 우리가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땅의 기름진 복
옛말에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생이 저승보다 좋다는 속담이 있다. 저승은 가보지 않아 어떤 곳인지 모를 것이니,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지금 사는 곳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일까? 어쨌든, 천국에서의 삶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내려 주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의 기름진 복은 생계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 기본적인 수준이다. 먹고 마시며 자녀를 기르고 평안하게 쉴 곳은 삶에 기본적인 필수조건이므로 이를 누릴 수 있도록 마련해 주셨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욕심을 내어 바라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애타게 소원하며 기도에 매달린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탐욕스럽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 탐욕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에 유의하라.(골 3:5) 우리가 생계에 필요한 재물과 탐욕스러운 재물의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절제와 자족의 성품을 갖추었다면 생계에 필요한 것만 구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탐욕과 쾌락을 위해 구하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려면 보다 많은 재물도 필요하다. 적지 않은 성도들은 필요이상의 재물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곳간의 엄청난 재물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허락하고 있다. 관리할 자격이 없는 자에게 분에 넘치는 재물은 생명과 영혼을 죽이는 재앙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분에 넘치는 재물과 세상적인 성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리자의 자격인 충성과 지혜를 갖추는 것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마 24:45)

하나님이 땅의 기름진 복을 약속하셨지만, 하나님의 원칙대로 살아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그것은 부지런함이 첫째이고 지혜가 그 다음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이 노동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며 가족을 부양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부지런히 살기만 하면 풍성하게 거둘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서 먹을 것을 얻지 못하자 매일 아침 만나와 때를 따라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그쳤다.

 

가나안 땅에서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풍성한 환경을 주셨지만 부지런한 노동은 사람의 몫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기름진 복을 준비해 주셨지만 우리가 부지런한 노동을 해야 하며 더 많은 수확과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지혜를 그 위에 보태야 할 것이다. 지혜 역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므로 구하는 자에게 넉넉하게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원칙을 잘 알고 삶에 적용한다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해주신다. 이 땅에 기름진 복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