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우의 햇볕같은 이야기
본질에 대한 고민
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동물인데 인간과 원숭이는 다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묻고 설명하는 것을 본질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성인(聖人)인 마더 데레사 수녀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아무개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의 책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신앙적 방황’을 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아, 마더 데레사 수녀도 어느 순간 신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한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불교’를 기웃거려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얻은 불교에 대한 지식은 지금도 제가
불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기독교신앙의 본질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대충 믿다가 대충 천국 가려면 모를까
(대충 믿어도 예수님만 믿는다고 고백만하면 그냥 천국 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제대로 한번 신앙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마더 테레사 처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기독교는 바울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의식 중심의 제사 신앙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다 보니 그냥 대충 생각 없이 배운 대로 믿으면 그냥 편하지만,
본질(本質)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순간,
눈앞에 예수님 대신 바울이 딱 서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