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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초기의 교회여성 - 2. 일반교회 여성(신앙형태)

Joyfule 2007. 1. 31. 00:45

2. 일반교회 여성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고 선교사들과 전도부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이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남존여비의 억눌린 상황하에서,호소할 데도 없이 한을 씹으며

어두운 그늘에서 살아가던 여성들은 복음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경위, 이유,그리고 복음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이

한국 여성들의 기독교 백년동안의 신앙유형을 형성시켜 놓았다.

우리는 여선교사들,전도부인들의 신앙유형이 비록 이 땅에서 변혁적인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한 그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도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러한 그들의 의식이 교회여성들의 신앙유형,태도 속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추적해 보고,평가를 하는 일은 내일을 위해서 중요하다.

 

 

1) 신앙형태

(1) 입교동기 및 과정 여성들은 주로 교육기관,의료사업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되고 전도부인의 심방이나 매서행위를 통해서, 또한 우연한 기회에 복음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여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에도 상당한 핍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가장이 다 함께 믿기로 작정하면 별로 묹베가 없었다. 오히려 주로 믿기로 작정한 가장은 부인에게 잘하기 때문에 환영받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기적이 일어나는데 그때 그드른 동물들과 또한 그들의 아내들, 자식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배운다."66)

 

그러나 여자들이 믿기로 작정한 경우,그녀들은 거의가 다 예외없이 핍박을 당하였다. 남편의 외도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던 김세지는 "예수를 믿으면 집안이 평안하고 남자는 주색잡기를 버린다는 팔존시아우되는 오셕형씨의 말에 먼저 예수믿기를 작정하자 남편은 '인제는 집안이 망햇고나'하고 나를 함부러 따렷다.그후부터 나는 남편이 업는 틈을 타셔 례배당에 단니는대 만일 그 눈에 뙤이기만 하면 죽도록 어더맛기를 한두번만 아니하엿다"67)고 한다. 또한 김덕신 여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예수 밋은지 사년이 되던 해에는 나의 남편이 내게 온갖 핍박을 다하여 예수를 못밋게 하다가 끗끗내 듯지 아니하니까 나종에는 나의 손목을 근허바리겠다고 하며 칼을 들고 내게 달려들어 손목을 쳐서 피가 말할슈업시 만히 흘넛스되 나는 조금도 남편을 원망하지안코 도로혀 그를 위하여 기도하엿스며..."68)

 

여성들은 남편과 시가의 박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 어떤 여성은 그 당시 기존의 가족제도로부터 벗어나면서까지도 신앙을 지켰다.

"그중에 (로살롬)녀사의 사촌쏘리씨는 그 남편의게 예수밋는 까닭으로 무수한 곤욕을 다 당하고 맛침내 강제이혼까지 당하게 되었다. 한번은 그가 그의 어린 딸과 노불부인집에서 열니는 기도회에서 갓슬 때에 그의 남편은 분이 충천하야 사람을 노블부인집으로 보내여 이혼하는 표적으로 져고리셥을 버히고 딸을 다려 오라고 하엿다. 쏘라씨는 이일이 잇슬것을 미리알고 딸을 숨겨두고 잇슬때에 그의 남편이 보낸사람이 드러오더니 그의게 달려들러 강제덕으로 그의 조고리셥을 버히고 또 그의 딸을 달나고하다가 내여주지안코 차즐수업스매조고리셥만 가지고 도라간 일도 잇셨다. 그러나 그의 모녀는 오늘까지 예수를 독실히 밋어 행복된 가뎡 생활을 하고 있다."69)

 

또한 조선 예수교 장로회사기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도 실려 있다.

"....엇더한 부녀난 과거독신하난대 시문이 위집하야 박타기사에 오히려 신종하거날 종내가산을 박탈하고 축출하야 걸식케 한 일도 잇스며 엇더한 여종난 독신심신함으로 시가전족이 매일구타하야 전신에 완부가 업스며 두부에 여발이 업스되 오히려 신종함으로 수년후에 기전가가 귀도한 일도 잇셧느니라 차등여도개다."70)

 

즉 여성들은 오랜만에 맛본 해방의 기쁨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세례밧던 날은 내인생의 가장 깃븐날이엇다. 우리죠션녀자들은 몃 천년 동안을 남자에 압박아래서 셩명이 업시 살엇다. 만일 우리 죠션에 예수의 빗치 비치이지 아니하엿던들 죠션의 녀자게가 오날 이만치도 발달되기 어려웟슬 것이다. 바로 말하면 죠션녀자의 자유운동은 그리스도의 빗치 우리반도에 빗치던 날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71)

 

이러한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여성들은 기도와 열성으로 남편까지 믿게 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여성들은 지성으로 자신의 신앙을 키워 나갔다.

"남양숑동 김도현의 셋째자부 김씨는 지금 19세인데 년전에 령흥 친가에 가서 예수도리를 듯고 깁히 밋어 성선이 충만하야 녀인들을 맛나는대로 예수를 증거하더니 시집에 도라가니 그집사람들이 크게 악하야 성경찬미를 쌔아서 감춘지라. 김씨가 간구하대 책을 주면 두엇다가 친가로 보내겟시니 달나하니 아지못하야 주거늘 의장안에 감춰두고 밤이며 몃절식보아 외우더니 집사람이 알고 기름을 주지 아니하는지라 자긔머리기름을 머리에 바르지안코 실심지에 한방울식켜놋코 성경 몃절식 보아외우고 쩌지면 긔도 하고 매달 달빗 잇는 밤이면 집사람잠든쌔에 달빗에 나가 닑어외운것이 여섯장인데 교회부인이 가시면 강을 밧치더라 생그남편의게 돈몃푼씩 구청하야 례배전을 모흐고저하나 그 동서가 엇지 악한지 몃칠만큼 김씨의 의장을 뒤지는고로 땅을파고모회서 동화십팔전을 읍내회당으로 전하며 하나님께밧처달나하엿더라 이김씨는 방금 악다귀갓흔 마귀와 가시덤불갓흔 시험에 들어시니 여러형님과 자매는 이김씨를 위하야 긔도를 하야주시옵소서 아멘."72)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당하는 핍박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즉 남성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성은 가정을 신앙에로 인도하기는 커녕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처녀때 신앙을 가졌던 여성들도 남편이 믿지 않을 경우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는 예가 종종 있었다. 선교사들은 이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영리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한 어린 소녀가 이방인 가정으로 시집을 갔다. 그런데 지금 주일학교 예배가 그녀의 아버지의 집에서 열리고 있지만,그녀는 참석할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주일날 그녀의 시아버지의 논 가까이에서 새들을 쫓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결혼 후에 그녀를 본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나는 그녀에게 왜 예배에 참석치 않느냐고 물었다. '나의 시가가 믿지 않아서 갈 수가 없어요'라고 그녀는 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계속 기도하라고 말해 주었다."73)

 

또한 베어드 여사(Mrs.Rose M.Baird)가 쓴 [미인젼도 연구](A Course of Study in Personal Work)라는 소책자에는 '부모나 남편이 밋지 아니하뇨고로 예수를 밋지 못한다 하는'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라고 씌어 있다.

 一.당신은 당신의 령혼에 디ㅎ 칙임이 잇다할것.
 二.예수 그리스도를 밋지 아니하면 령혼이 멸망함을 밧느다 할것.
 三.예수그리스도를 밋으면 밋지 아니하는 가족을 그리스도로 인도할 수 잇다 할것.
 四.핍박을 두려워하면 그리스도께서 도아 견디게하신다 할것.
 五.핍박을 참아견디면 하나님의 깃버하심이 된다 할것.
 六.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야 핍박을 밧으셧다 할것.
 七.쟝츠밧을 영광을 싱각하라고 할것.74)

여성들이 이러한 핍박을 전부 다 견뎌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들은 자신들의 결단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