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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초기의 교회여성 - 2. 일반교회 여성 (3) 무교(巫敎)에 대해서

Joyfule 2007. 2. 2. 00:37

(3) 무교(巫敎)에 대해서

 

 

또한 기독교는 초기부터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나 종교적 현상,

즉 샤머니즘 등에 대해서 상당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 국민들의 잠재의식과 감정에 뿌리를 깊이 내린 토송종교나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불교나 유교를 전혀 무시한 선교 방법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었다.

기독교가 한국인들에게 친근감을 주지 못하고 항상 외래종교 취급을 받는 것은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마음 바탕을 무시하고,독선적이며 배타적인 선교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민중의 아픔을 알고 달래준 무속을 미신이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매도해 버린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강화항포교회 뎡씨의 힝흠 뎡씨부인의 년세난 지금 육십세이온대 본릭 시골 사부댁 따님으로 학문이 유여하여 재산이 넉넉하더니 뜻박게 집안이 망운이 들어 당신과 한딸만 남아 잇사니 무슴말 하리오 하실 즈늠에 .. 부인은 이왕 학문이 잇스니 됴훈 척당화주역을 공부하야 호구하라 하온즉...곳 공부하여 남의 돈을 쎄아셔 먹으며 생각하되... 예수밋기를 작뎡하고 성경을 보오니... 성신이 뎡씨의 감화하야 당화 주역칙을 손에 드시고 동리사롬의게 참리치로 말솜하시기를 내가 이 ㅊ을 불을 살우겟노라 하니 여러 사룸이 말하기를 지금돈에 천량은 더 갈터이니 팔나하거늘 당신이 대답하되 남쯔지 죄를 지게 홀수업다 하시고 곳 불을 상르고..."89)

 

즉 이 기사에서 자신의 생계까지도 포기하면서 역학책을 불태우는 신앙을 볼 수 있다. 또한 미신을 버림에 있어서 환난이 닥쳐와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려주 한 우물교회의 셕차장씨 부인 김씨가 갑진 삼월 초삼일에 즈긔 모친 상청을 거절하고 그 잇튿날 일노병이 들어 인소불성하고... 인동녀인 하나이와셔 문병히 후 한느말이 부모의 상청을 소멸하 벌이니 곳 다시 셜시하면 병이 날듯 하니 즈량하라 호듸 김씨부인이 말솜하시기를 내가한번 하느님의 밍셔하 거슬 다시 또 마귀의 죵노릇하리가 하고 그날부터 더 열심으로 밤낫 긔도 하야..."90)

 

더 나아가서 기독교이들은 실력으로 미신타파에 나서기도 하였다.

 

"...전도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우니 그대들은 회개하라... 무녀들이 낙심하고 기색하며 마귀 말은 간데없고 살려달라 청하거늘 교우들이 일시에 여러가지 화상들을 일일히 떼어 볼살으고 어리석은 부녀들로 공연한 재물을 헛되이 쓰게 말라 하였으니 지각있는 사람들은 상쾌하게 생각하는지라."91)

또한 기독교인들이 국사당이란 당집에 가서 그 당집에 걸려있는 어진이외의 다른 화상을 떼어 불태우는 기사도 보인다.

 

"이달 18일에 기독교인 몇이 남산에 올라갔다가 국사당이란 당집에 들어가 본즉 과연 태조대왕 어진이 다른 잡귀잡신 화상 가운데 계시어 추루한 대접 받으시는 것을 보고 임군을 임군으로 대접할 의리를 온전케 하고자 하여 그 당집 주인 김가를 불러 이치를 타서 논설하여 들린 즉 그 사람이 깨닫고 하는 말이 실상인즉 옳지 아니한 일이라 하기에 기독교인들이 그 당집속에 걸린 잡동산이를 다 떼어 소화하고 태조대왕 어진은 그대로 뫼셔 두었다 하니 이 사람들은 인민의 직무를 하는 사람들이다. 국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되거드면 왕실도 높아가려니와 인민들이 어리석은 사람의 일들을 아니할러라."92)

 

그러나 무교는 반만년 역사 속에서 결코 민중의 요구를 풀지도 듣지도 못했던 지배층의 종교, 불교,유교,기독교보다 민중의 아픔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냈다.

 

유동식 씨는 한국문화의 핵을 무교로 본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외래문명을 받아들이고 문화지칭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이 점차 무교를 억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이는 오백년 동안의 유교와 근대화의 물결을 몰고 온 서구문명이 무교에 대한 억합을 더욱 심하게 하였고 원초기의 무교에 접촉했던 불교가 그 열에 적지않게 용해되어 상당부분이 동질화되기도 하였지만 무교는 그 억압에 못이겨 문화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교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민중문화의 저변을 흐르면서 핵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의 심층에서 여전히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93) 문제는 한국인의 토착적인 종교성을 미신으로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을 달래준 무속의 역할을 인정해 주고 그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고 기독교 역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더더구나 무교가 한국의 대다수 민중의 지배적인 종교형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소외된 자들 중의 소외된 자들인 여성들의 지배적 종교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쌓여진 한을 풀 수 있는 합리적인 통로를 갖지 못한 여성들은 자연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통로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94) 무교가 진정으로 여성들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여성들의 한을 달래주고 해석해 주고 다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무교를 미신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인정하고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 주고 그 한을 푸는 역할을 기독교가 스스로 담당할 때 비로소 무교는 극복되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