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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초기의 교회여성 - 1.전도부인 (지위와 문제들) 2.

Joyfule 2007. 1. 30. 01:05

 4) 지위와 문제들

 

 

오늘날까지도 여성문제 중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바깥일과 집안 일의 분리는,집안일은 여성의 것이고 바깥일은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낳게 했고,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적인 미숙아가 되고 남성들은 가정적인 미숙아가 되어, 둘 다 미숙아가 되는 기형적인 상태에 이르게 했다. 이 가사일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남녀가 골고루 온전하게 발전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혼자 살면서 일한다. 하더라도, 여성의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을 받고 있는 남성들과는 경쟁이 안된다.

 

따라서 은둔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전도부인들의 일이었고 그들의 공로가 컸다 할지라도 교인이 늘고 교회가 발전되어 감에 따라 그들의 역할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인 남성들에게 빼앗기고 그들의 공로는 과소평가되고 지도적인 위치에서 밀려나고 소외되었다.

결국 가사일에 매달려 있는 전도부인들에 대한 불만은 1933년 [기독교 조선감리회 전도사업 여선교사회의 결의안]에서 전도부인의 지위와 사업을 규정하는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결의안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전도부인은 "과거에 특이한 처지를 가졌었고 현재에도 교회의 계획 실용상 없지 못한 사람들이다"라는 점을 밝히면서 종래의 전도부인의 역할을 장래에는 세 종류의 전도부인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1) 여집사...마땅히 고동보통학교와 감리교회신학교나 그 동등 정도의 학교 졸업자라야 할 것이요 또 그는 하나님께 온전이 헌신한 자로써, 가정의 책임이 없이 교회일에 전력할 자라야 될 것이며 또 맛당히 독신자로 교회에서 어디든지 임명하는 대로 마땅히 가야할 것이다.

 

(2) 전도부인...전도부인은 6년제의 보통학교와 성경학교나 혹은 그 동등정도의 학교 졸업자라야 할 것이오.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자로써 가정의 책임이 없이 교회일에 전력한 자라야 될 것이다...또 맛당이 독신자로 교회에서 어디든지 임명하는대로 반드시 가야할 것이다.

 

(3) 서리...당분간은 적게 교육받은 여자들이라도 불가불 사용하게 된다. ...그들도 전도부인과 동양으로 지방회 회원이 될 수 있다.56)

 

즉 전도부인은 가능한 한 집안일에서부터 풀려나올 수 있는 독신 미혼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여성이 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혼한 여성이 결혼한 남성보다 활동상의 제약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회는 그 지체가 되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어른들이 한 몸을 이루어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면, 불리한 조건을 가진 여성들을 불리하게 내버려둬서 안 될 것이다. 불리한 점을 제도적으로 개선하여 여성들이 보다 활동하기 좋은 조건에서 자기 발전을 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했을 것이다. 단지 여성들은 불리한 위치에 있으니까 독신으로만 활동하라는 것은 과도기적인 해결방안에 불과하며 진정한 인간해방의 길이라 할 수 없다.

 

물론 그 당시 여성들이 가정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한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훈련받은 전도부인들이 여성계의 지도자로 계속해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선교사들의 보수성과 잘못된 복음 이해가 그 이유들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모든 인간의 평등함과 귀중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천국과 지옥등 내세에서의 구원을 많이 이야기했고, 자주 귀신,악령으로부터의 해방을 언급하고 있으나, 참으로 해방받은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절대적인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도부인들은 그러한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전도부인들은 자신들의 역할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생각했을 것이고 교회여성들의 의식도 역시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즉 교회여성들의 활동은 가정에서의 어머니,아내의 역할, 즉 가사 노동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30년에 [기독신보]에 연재된 기사인 여전도인의 불평과 희망에 나타난 현역 전도부인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경성의 정마리아씨는 전도부인을 다음과같이 말한다.

"어렷슬 때부터 신앙의 생활을 하게 되어 이십년동안 여전도인의 책임을 하엿습니다. 여전도인의 별명이 하나 잇슴니다.[걸네]라구요... 알는 집에서 긔도하고 초상나면 렴장이 노릇하고 순산하는 분에는 조산부산파되고 경성을 포위하여 삼사십리식 나가서 촌교회가서 가정학이란 과정,아해 기르는 것,성경,국문 등을 가르치고 혼인집 장사집 락심한 집 두로단이는 책임이 걸네와 갓슴니다. 그런니 걸네 업는 집안은 깨긋지 못합니다..."59)

 

즉 여전도인의 일을 잡일하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회령의 전경순씨는

"여전도인이라면 의지업는 단독 여자로 책 주머니를 들고 이집저집 단니면서 몃마듸 군소리나하고 월급이나 밧아서 호구지책을 삼는 사람으로 대우하는 경향이 잇습니다....이리하야 여사역자는 의식을 위한 일종 비열한 직업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의식을 목표로 하는 전도자가 결코 아니오 하나님의 나라이 세상에 임하게 하기 위하여 악거선취하는 임닌이 일가월증하기를 목적삼는 유일의 희망을 가지고 나갑니다..."60)

 

이렇게 여전도인의 임금문제는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일에 대한 댓가라는 적극적 방식으로 생각하는 전도부인들도 보인다. 예를 들면 춘천의 최경자전도부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一 ,'예수긔서 자유와 평등을 말씀하섯다'고들 하면서 오늘의 긔기독교내에는 너무나 계급과 차별이 만은 것 갓습니다. 가령 연회(年會),총회(總會)라 하면 예수교내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데 엇지하야 남전도인만 모히는 집회인가요?.... 二.교회를 위하야 힘쓰고 애씀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가만은 남전도인은 주택이 잇서도 여전도인은 업스니 전도부인 방 어드러 다니지 않토록..."61)

 

또한 경성의 박승호씨 역시 "첫째로 생각하는 바는 남녀 전도인의 차별적 대우"라고 쓰고 있다. 또한 아울러서 "일반교회에서 여전도인에 대하야는 외국 선교회를 의뢰하야서 자급갓흔 것은 의외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즉 '빈약하야서 할 수 없는 교회에 대하여 말함은 안니겠지요. 그러나 선교회와 교회 그 두사이에서 일하는 자신으로 지내여 보지 아는 자신이 안니면 그 사정은 모를 것"62)이라고 한다.

 

개성의 최호경 전도인도 "남녀교역자 사이에도 계급과 불평등이 잇는 것,녀전도인에게 너머 생활비를 적게 주는 것"63)을 하루 속히 고쳐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남녀전도인 사이에 차등이 생기는 것은 남존여비의 악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성의 전정길 전도인은 "一,녀전도인의 인격을 중히 역이자.二,녀전도인의 지력을 승인하라.三,녀전도인에게 사업의 권위를 주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64)

 

조선인 여전도인들이 이렇게 남,녀의 차별을 의식하고 그 시정을 외쳤지만 그 당시의 지도자들, 즉 복음을 가지고 온 여선교사들이나, 남선교사들이 이드르이 주장을 수렴해서 시정하려 했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선교사들이 식민주의 신학, 가부장제 문화를 비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교단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이들 지도자들은 주체의식을 가지고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을 주장하는 이들 여전도인들을 전통적인 여성의 미덕, 즉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순종하는 여전도인 상을 강조함으로써 차별받고,억압받는 위치에 스스로 만족하고 머물러 있도록 유도했다.

 

문선호씨는 [여전도사론]에서 여전도인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전도사는 마리아적 감화력으로서 소년,청년,장년,노년을 물론하고 종교적 정조와 인간이 神의게 대한 의무를 머리에 깊이 넣어 주어야 힘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도사업에 있어서 "이는 곧 그리스도적 봉사사업인 고로 여자가 가장 필요하다"고 보았으며,"우월감을 버리고 오만심을 버리고 오직 사랑 겸손 온유한 정신을 소유한 자라야만 진정한 봉사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남자에 비하면 여자가 훨씬 봉사의 선상에 서기를 좋아하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로 모성애를 가진 여자가 인민을 구제하며 기독적 봉사를 하여야 교회는 더욱 빨리 확장하고 진보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여전도사가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여전도사는 수동적인 "마리아"와 같은 모습을 띠고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즉 "남편과 자녀를 받는 것처럼"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이다.65))

 

물론 신앙은,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업은 끝없는 헌신과 봉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가 사회의 주인공 역할을 하던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바뀌고 농경사회로 정착되면서부터 생산활동과 가사노동이 분리되게 되었고,임신과 양육의 기능을 담당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사회가 강요한 특성일 뿐이다. 탐욕과 서로간의 투쟁과 대량살육으로 빚어진 인류의 역사를 볼때 공격적인 남성상보다는 포용적이고 자기를 희생하는 여성상이 미래사회를 위해 더 바람직한 특성으로 제시될 수는 잇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녀간의 대등한 관계를 기초로 해서 키워진 특성이어야 한다. 대등한 관게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 성이 다른 성을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억압하는 상황하에서 약자만의 봉사와 주체성이나 자존을 박탈당한 채 굴종하는 비굴한 인간으로 형성되어 가기 쉽다. 복음이 이 세상 안에서의 인간의 평등 즉 누르는 자도 눌리는 자도 없이,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창조적으로 성장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임을 확인한다면,여전도인들만의 희생과 봉사를 합리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