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고 대하는 방법
기독교인으로서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성경을 알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알 수 없으며 만나기도 힘듭니다.
고대 이스라엘이나 근세 이전까지는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아
극히 그 수가 적은 필사본으로 종교 지도자들만이 소유하여 가르쳤습니다.
중세 때 이 과정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자신이 유리한 대로 왜곡하여 잘못 가르치는 예가 빈번했습니다.
더군다나 가르치는 자가 거듭나지 않았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인쇄술을 발전시켜 대량으로 성경이 퍼지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좀 비쌌을 뿐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성경을 사서 읽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오히려 성경이 남아돌 정도로
집에 서너 개 이상의 성경을 즐비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성경 이름도 제각각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의 종류에 대하여 너무 잘 알기에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글의 본질은 성경의 종류가 아니라, 읽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느 한 곳에 집착하면 반드시 아전인수식 오류가 일어납니다.
단어 하나에 집착한다든지, 구절 하나에 집착한다든지
이렇게 되면 성경 해석의 오류가 일어나므로 다른 예수를 전하는 아주 큰 파장이 일어납니다.
이단이 생기는 이유가 성경을 자기 편한 대로 아전인수식으로 그
럴듯하게 합리화시켜 해석하여 전하기에 이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느 한 곳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단어보다는 앞뒤 구절을 더 봐야 하고,
구절보다는 앞뒤 문장을 더 봐야 하고,
문장보다는 내용 전체를 더 봐야 하고,
나아가서 성경 전체를 훨씬 더 많이 봐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에 집착하면 그 나무 한 그루만 보이게 됩니다.
그 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성경 전체를 논하려 들게 되면 안 됩니다.
산의 생김을 보려면 나무 한 그루보다 산 위에 올라가
산 전체를 한 번에 봐야 산 모양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코끼리 전체를 봐야지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를들면... 영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앞뒤 문맥을 거두절미해서 바라보면 자칫,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도 성공하여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류가 생깁니다.
실제 그 유명한 목사님이 이렇게 해석하여 세상에서 성공하게 되고 잘 먹고 잘살려면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살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못살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는 기준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실제 예전에 제가 있던 교단의 교회에서 구역예배 드리면 그런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성경은 아주 단순합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식들을 바라보며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며 효도하고 너희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지극히 사랑하고 경배하며
우리 이웃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가장 근본이 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10장 27절)
이 말씀을 좀 더 세분화하여 풀어놓은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주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섬기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4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내 이웃 형제 즉,
사람들끼리 어떻게 잘 지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십계명을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한 것이 성경 전체 66권입니다.
책의 내용만 길고 두꺼울 뿐...
산 정상에 올라가 산의 모양을 확인하면 산 전체 모양을 알듯
넓은 시각으로 보면... 함축적인 의미로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 형제와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라는 전체적인 의미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내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내 이웃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말처럼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주님을 갈급하게 찾고 찾아야 하고,
갈급하게 찾으려면 먼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역으로 다시 올라가면 성경을 알아야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알아야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회개해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되어 사랑하는 주님과 천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을 찾아 간절히 회개한 영혼들에게는 십자가 보혈 피로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거듭나게 하여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후 우리가 구원받아 사랑하는 주님과 천국에서 영생토록 살면서
주님을 경배하며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단어 하나에 집착하고,
내게 유리한 성경 구절만 따다가 내 임의대로 해석하면
성경 전체를 내 입맛대로 왜곡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은 66권 전체를 보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각자 번역하는 사람들이 다르고,
단어 의미를 자기 나라 단어로 풀자니 약간의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전체적인 큰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님께서 내 안에 함께하시면서 무슨 내용인지 다 열어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26절)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는 필수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는 도통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몰라
머리가 아프고 난해하여 성경을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머리가 시원할 정도로 그 의미 파악이 한순간에 다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성경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성경을 읽는 재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전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보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도 인간의 머리는 주님으로부터 창조될 때
다른 여타 생물들에 비교하여 가장 똑똑하게 창조되었기에
확실히 믿으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말씀이 확 다가와서 눈물을 흘리며 거듭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이런 분들은 그 전부터 진리에 목마르고, 갈급하게 진정으로 주님을 찾고 찾은 분들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내가 가진 성경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자부하며
다른 사람이 읽는 성경을 폄훼하거나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런 마음 자체가 이미 거듭남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형제끼리 서로 비난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게 됩니다.
성경은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믿음의 삶에 대한 주님의 명령으로 적용해야지
교만하게 지식 논쟁이나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님의 절대 계명인 네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에 정면 위배됩니다.
이렇게 형제를 비난하는 사람이 또 주님을 진짜 사랑할 리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내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또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니... 성령으로 거듭나면 지키는 게 아니라, 지켜지게 됩니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무리 믿음 있는 척 거룩한 척 흉내를 내도 이런 것 하나로 이미
그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별 되는 것입니다.
정령 꼭 상대를 위해 말해주고 싶으면 사랑을 담아 권면하십시오.
사랑도 없이 지적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만 증거할 뿐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장 15절)
진정 성경을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내 이웃 형제와도 서로 진정 사랑하며 지내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보지 말고, 주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보십시오.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으실 때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남이 아닌 나를 향한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 보관 자료 ━━ > 초돌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 바꿔보기... (눈치채지 못하는 엄청난 은혜의 비밀) (0) | 2018.09.04 |
---|---|
주님은 마음의 동기와 중심을 철저히 보십니다. (0) | 2018.09.03 |
거듭난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증거됩니다. (0) | 2018.09.01 |
성경 말씀을 생명으로 받는 방법 (중요) (0) | 2018.08.31 |
나는 참된 믿음 안에 있는지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0) | 201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