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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인가?(2)

Joyfule 2014. 9. 12. 08:02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인가?(2)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복 

구약과 신약의 축복관이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준이 되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님의 복음으로 대체되어 율법의 행위보다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믿음이 하나님의 뜻으로 표현되는 무게의 중심축으로 옮겨갔음이다. 그렇지만 구약의 율법이 신약시대에 폐지되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승화되고 완성된 것(마 5:18)임을 알아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십계명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전반을 규정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하기위해 친히 세우신 법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기의 백성들은 모세오경으로 대표되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었으며 그 내용도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의 구분이 없는 전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율법의 행위를 준수하면서 이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찬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 것을 요구받았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 무지하였으므로 율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교나 생활의 행위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나누고 세세하게 표현하였다.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나이가 어리고 철이 없어 교육의 목표나 목적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자세한 행위를 교칙으로 삼아 가르치지만, 대학생이 되면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행동할 인격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므로 자율적으로 공부하도록 커리큘럼이 바뀌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갈 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위의 성경의 말씀처럼, 율법은 초등학교의 교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기초적인 규범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가르치는 데 불과하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축복관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들도 이해하고 깨달아 따를 수 있도록 실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개념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의 개념은 두말할 것 없이 일상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이 중심사상 이 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하는 축복은 지극히 현세적이고 지상적인 축복에 초점을 두어 육체적인 생존과 민족의 번영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의 소유자인 이방인들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위험에 상황에서 농업과 목축업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 처해있었으므로 하나님이 제시한 복이야말로 피부로 느끼며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축복관은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고 재앙과 질병에서 안위를 보장받아 걱정과 염려 없이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육체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을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으며, 자녀가 잘 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위험에서 지켜주시며, 손으로 하는 일마다 잘되고, 높고 귀한 자가 되는 명예를 조목조목 약속하고 있으며 인생을 통하여 하는 일마다 잘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말한다.

그렇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며 범죄 하여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였으며, 오랜 포로생활 후에 돌아와서 성전을 개건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기간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예전의 악한 행위로 돌아가 결국 로마의 침략으로 패망하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갖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을 거의 잊은 일반사람들과 율법의 행위에 전념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 구성되는 종교엘리트층의 두 그룹으로 양분되었지만 이 역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요청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으로 밝히는 신약시대의 복의 초점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율법으로 가르쳐진 상태였으므로, 초등학생의 수준인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율법의 복에서 수준을 높여 본래의 하나님의 뜻인 율법의 정신과 더불어 수준 높은 차원의 하늘나라의 복을 선포하시며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밝히신 복은, 영혼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복을 시작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그 분의 위로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다고 하늘나라의 복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의식주의 복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시고 넉넉하게 공급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다만 복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생각하기 쉬운 것은, 구약에서 밝힌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복이라도 무작정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복을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절박한 환경에서 언제 생명을 앗아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으므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안위와 보호가 절대적이었다.

 

또한 지금처럼 식량이 풍부하고 경제가 발달된 것이 아니라서 그날그날 먹고 살기에도 식량이 부족한 환경이었기에 배부르게 먹는 것이 최고의 복으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국가 간의 방위가 안정되어있어 전쟁이 드물고 치안이 확립되어 무고하게 생명이 위협당할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부지런하게 일하면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시대여서 그 당시의 경제나 치안의 상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과 동식물을 창조하셨을 때 충분히 생존하고 종족을 번식할만한 환경을 조성해 주셨지만, 우리가 바라듯이 무작정 쌓아두어 탐욕을 만족시키고 쾌락을 위한 재물로 방탕하게 사용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도 그랬고 신약시대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복은 당신의 자녀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풍족하고 넉넉하여 부족함 없이 형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로 쓰이는 것에 소용되고, 그 이상을 주신다면 하늘나라의 창고에 쌓아두어 의의 열매를 맺는 데 사용하길 권하고 있을 뿐이다.(고후 9:11)

그러므로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과 격차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차이가 없다. 단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 백성들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 때의 상황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성경지식과 믿음의 수준에 맞추어 지상적이며 육체적인 복을 포함한 하늘나라의 복을 선포하고 가르치셨을 뿐이다.  

지금은 신약시대이며 경제적인 환경이 풍족하며 하나님의 뜻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가르쳐진 시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약시대의 초등학생의 수준에 맞춘 복을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시기보다 성숙하고 완전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