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기독교자료

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Joyfule 2019. 8. 28. 06:38

 

    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찰스 스탠리 지음 - 최원준 옮김
    두란노/1999년 3월/372쪽/9,800원

 

 1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4. D-Day
금요일 오후 4시. 내가 맡은 클래스의 첫 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나는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책도 읽고 암기도 했으며, 금식도 했고, 기도도 드렸다. 뿐만 아니라 학교측과 협상도 해보고 호소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전과 다를 바 없이, 성령 충만한 삶을 이해하기엔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난 뒤에 나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 : 14~15)."

내 감정은 거의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게 성령의 힘을 경험토록 하는 게 주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포기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니시죠?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만 의지할 생각입니다. 그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끝내자마자 놀랍게도 자신감과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것은 지난 3개월 동안 내게 다가왔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내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고 또한 방언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외에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에 나는 성령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를 찾아 헤맸었다.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이 나는 무언가 볼 수 있는 것을 원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두 구절의 성경 말씀이 내 마음속에 다가왔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 : 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 : 2)."

하나님은 나보다도 더욱 간절히 나의 성령 충만을 원하셨던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오직 그분만을 믿고 그 믿음 위에 살아가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첫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성령과의 첫 만남은 내게 엄청난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불안감이 밀려올 때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심을 기억했다. 첫 수업을 한 그날 하루 동안 나는 내내 이런 기도를 했다. “성령님, 나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게 맡기신 일을 할 수 있도록 저를 채우소서.” 성령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강의실 분위기와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믿음으로 가득 찬 삶이다. 우리는 구원과 연계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사를 들여다보면 이상스럽게도 거기에는 믿음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다가온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 최선을 다해 풀어 보려고 한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우리의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부인하며, 성령을 보지 못하면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빌리 그래함 목사는 말한다.

“우리 신자들에게 들려줄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성령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속의 시대가 아닌 성취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과 에베소서에 나타난 성령 충만의 차이점은 반드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랬듯이 바울의 명령대로 행동해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 또는 성령에 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을 성령의 지배하에 놓는 것을 말한다. 마치 두려움이나 슬픔에 사로잡히는 것과 유사하다. 슬픔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외의 생각이나 감정은 뒷전으로 밀어 놓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이해하고 또한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이 선행돼야 하는데, 첫째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일이다. 내가 경험했던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깨어짐’이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절망’이라고 불렀다.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건 공통된 점은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정서적 어려움의 골짜기, 그 골짜기에는 우리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가장 비옥한 토양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어려움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아름다운 삶의 비밀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질병, 재정적 곤란, 자녀 문제, 직장 문제 등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신다.

둘째는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일이다. 의존과 항복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 탈출구가 보이는 한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칙은 그 사람이 붙잡을 수 없는 거리에서 기다리다가 그가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다가가는 것이다. 성령과 우리의 관계에도 똑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성령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의 의지를 버려야만 한다.

구원이 그러하듯 성령 충만한 삶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까지 이르는 길은 매우 좁다. 그리고 지름길도 없다. 모든 것은 시기에 달려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순례의 길에서 우리 각자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문제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막다른 길에 처해 있는가? 아직도 무언가를 잡으려고 허우적대는 물에 빠진 사람,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인가? 당신은 영적 성장의 행로에서 어디까지 왔는가? 내게 필요했던 것은 더 많은 능력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내게 맡겨진 매일매일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5. 주님은 포도나무요 나는 그 가지라
마이애미 교회로 옮겼을 때 그곳 상황은 아주 좋았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몇몇 신자들이 안수 기도 시간만 되면 앞으로 나와 기도를 청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똑같은 사람들이 나와 이전과 똑같은 죄를 고백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들이 싸우고 있는 그 대상과 나도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설교를 준비할 때나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할 때에는 성령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분명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면서 나는 매주일 저녁,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몇 주 후면 성령의 열매에 관한 구절을 강해해야 했다. “나 자신도 성령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부분에 대한 강해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한번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확히 6월 6일 토요일 오후, 집 뒷뜰에서 강해 준비를 해보려고 뒷문을 열려는 순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몇 주 전 아내가 산 책이었다. 아내는 내가 그 책을 읽어 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손에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책은 레이먼드 에드먼이 쓴 『그들이 발견한 비밀』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은 20개의 짧은 전기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각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의 이른바 ‘변화된 삶’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로 그 책의 첫 장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셨다. 허드슨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하나님은 테일러에게 성령 충만한 삶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해 존 매카시라는 인물을 쓰셨다. 역시 선교사였던 존은 테일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해 듣고 테일러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내 마음속에 전구가 하나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햇빛과 공기를 얻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도 아니고, 꽃에는 아름다움을, 잎에는 푸르름을 가져다 주는 생명의 기운을 얻고자 노력한 결과도 아니다. 단순히 나무의 본체에 순종해 그것과 하나가 된 결과이다. 꽃이나 열매는 자연적인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대가 없이 주어지는 열매를 노력과 투쟁을 통해 맺고자 하는가? 그래선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시켜야만 한다. 주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항복해야 한다. 주님의 관대하심에 의지해야만 한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처럼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 글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매우 행복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열매를 맺는 일은 나무가 하는 거야. 열매는 나무로부터 가지로 흐르는 수액의 산물이지.’ 나는 찬 바닥에서 무릎꿇은 채 세 시간을 울어댔다. 그리고 내 마음의 눈을 열어 나로 하여금 이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아주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이후 몇 주 동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이 내 뇌리에서 맴돌았다. 나는 내 어깨에 얹혀 있던 큰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갈라디아서 강해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내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프루트랜드에서 일어난 일이 나의 선교 사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던 중에 내게 일어난 일은 내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 삶에 모든 종류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성령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주체다. 변화, 그것이 바로 성령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우리 안에 거하는 새로운 생명에 의지하고 교류를 갖는 것뿐이다. 어떻게? 믿음으로써!